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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Feb 17. 2016

믿어주는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

2014. 03. 05.

"신발장은 어제 정한 대로 마음대로 하자. 이름표 줄 테니 원하는 데에 붙이렴."

아이들은 각자 알아서 테이프를 이용해 신발장에 이름을 붙였다.

신발장이 충분히 넓어 서로 내 자리라며 다투는 일은 없었다.


"우리 반에 축하할 일이 있어.

이전까지 담임 선생님이 안내장을 갖고 오라고 했을 때 어떻게 됐니?"

"갖고 오지 않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선생님이 혼내거나  잔소리했어요."

"이번에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안내장 가져오라고 혼내거나 닦달한 적 있어?"

"아니요."

"짜잔. 그럼에도 약속한 날짜까지 우리 반 친구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가져왔어.

이게 너희들의 힘이야.

혼내거나 잔소리하지 않아도 너희들 스스로 할 수 있어."


첫 시간에는 교실 대형을 바꾸는 연습을 했다.

대형 운동장 대형과 의자 대형.

어려워할 줄 알았는데 제법 잘 한다.

의자 대형 상태에서 '오똥코' 놀이를 했다.

처음에 소극적이었던 아이들도 놀이가  진행될수록 활발해졌다.

두 명의 아이가 벌칙으로 춤과 노래를 부를 때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신나게 놀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모둠 세우기를 했다.

모둠 이름과 모둠원 역할을 먼저 정했는데 첫 모둠활동이었음에도 썩 훌륭했다.

이어 청소구역을 새로 정했다.

이때엔 T가 자신이 한 번 양보했음에도 친구들이 계속 자기 뜻을 받아주지 않자 토라졌다.

그래도 아이들이 계속 사과를 해서 금방 풀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진 미술 시간. 아직 아이들 사이의 관계가 끈끈하지 않아 다른 선생님 수업에 들어가는 것이 걱정됐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온 J의 표정이 어두웠다.

쉽게 가라앉을 상황이 아닌 것 같아 다른 아이들을 영어실로 보내고 J와 이야기를 나눴다.

미술 선생님이 자리를 지정해줬는데 짝꿍이 된 아이가 같이 앉기 싫다고 해서 한 시간 내내 구석에서 혼자 앉아 있었다고 했다.

계속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보다 싫었던 것은 선생님, 아이들 중 누구 하나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동생과 싸우면 자신만 혼나는 데 대한 원망,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서러움,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듯한 외로움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러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분노와 서러움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야기만 들어줘서는 힘들겠다 싶어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가도록 도왔다.

지금 J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사람.


"선생님 한 번 봐볼래?

 선생님은 J의 마음을 알아줄 거야.

항상 곁에 있을 거야.

네 편이 되어줄 거야."


조금씩 진정을 되찾자 두 가지 중 선택을 하게 했다.

5교시에 아이들과 이것에 대해 회의를 했으면 좋을지, 아니면 예정된 대로 피구를 했으면 좋을지.

J는 회의는 금요일에 하고 오늘은 피구를 하는 것을 선택했다.


"J는 선택한 것에 책임이 있어.

오늘 피구를 할 때는 즐겁게 참여하는 거야.

할 수 있겠니?"

고개를 끄덕이는 J와 함께 영어실로 아이들 마중을 갔다.


드디어 첫 피구 시간. 교실에서 미리 종례를 한 후 책가방을 메고 강당으로 이동했다.

교실을 나서며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굴자 옆 반에서 아이들이 나오며 물었다.

"너희들 벌써 집에 가?"

그 소리에 나는 아이들을 다시 교실로 들어오게 했다.


"누리보듬. 너희들이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어.

너희들은 일 년 동안 선생님과 다양한 활동을 할 거야.

그런데 그것을 본 다른 반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니?"

"부러워할 것 같아요."

"맞아. 그리고 담임 선생님에게 우리는 왜 저러지 않냐고 묻겠지.

그럼 선생님 입장이 곤란해져서 우리만 다른 활동을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너희들이 조심해줬으면 해."


두 번째로 이동할 때는 발자국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아이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


강당에 도착하고 피구공을 찾는 동안 아이들이 신이 나서 배구 네트에 매달리고 큰 공을 발로 차며 난장판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큰 소리에 화들짝 놀란 아이들은 나를 쳐다봤다.

"줄 서세요."

긴장한 아이들은 재빨리 줄을 섰다.

"누리보듬. 혹시 아까 선생님이 소리친 이유를 알겠니?"

"저희가 장난쳐서요."

"말을 안 들어서요."

"예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너희들의 안전에는 선생님이 엄격하다고 했어.

그리고 너희들이 계속 장난치고 있으면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되겠니?"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요."

"그래. 강당은 넓으니 여기에 오면 신이 나는 거 알아.

그래도 우리의 시간을 위해서 얼른 준비해줬으면 좋겠어."


이미 놀이를 통해 익숙해져서인지 규칙을 설명하는 동안 집중도가 대단했다.

공정하게 편을 나누는 것도 금방 끝나 곧장 피구를 할 수 있었다.


"피구를 할 때는 주의사항이 있어.

첫 번째, 얼굴을 향해 던지지 말 것.

두 번째, 공에 맞았네 안 맞았네 하며 싸우는 일이 있는데 우리는 놀이를 왜 한다고?"

"재밌으려고요."

"즐겁기 위해서요."

"그래, 그러니 우리는 양심에 따라 할 거야.

자기가 맞은 것 같으면 나오면 되고 다른 친구들이 맞았다고 하면 나오면 돼.

서로 싸우지 않아도 즐겁게 할 수 있어."


처음이라 부드러운 공으로 시작했다.

익숙하게 하는 아이도, 긴장한 아이도 있었지만 하는 모습을 보니 다들 기본 규칙은 알고 있었다.

연습 활동을 두 번 하고, '물귀신 피구'를 설명했다.


처음 듣는 이름에 아이들은 호기심을 보였다.

아웃된 아이가 상대편을 선 밖으로 끌고 나오면 그 아이 역시 아웃이 되는 간단한 규칙이 추가된다.

이 피구의 장점은 공을 잘 던지지 못하는 아이도, 일찍 아웃이 된 아이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얼굴이 상기되도록 아이들은 뛰고 또 뛰었다.

평소에 잘 움직이지 않는 아이들조차.



끝나고 좋았던 점, 힘들었던 점을 공유하게 했다.

정신없어서 싫다는 아이도 있었고, 자신은 공을 잘 못 던지는데 계속 참여할 수 있어서 좋다는 아이도 있었다.


"오늘 우리는 선을 좁게 그렸어.

다음에는 넓게 그리면 덜  정신없겠지?

이런 식으로 우리는 놀이를 조금씩 바꿀 거야.

재미없다고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욱 나아질 수 있도록."

"네!"


쉬는 시간도, 활동 시간도 아이들의 표정이 점점 자연스러워진다.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이 이제 조금씩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일 년 후, 꽃은 활짝 필 것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함께 뒤엉켜 노는 것에 익숙했던 아이들이다.

이젠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편해문 선생님의 말처럼 '아이들은 놀이가 밥'인데 말이다.

놀이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힘, 그리고 지혜까지 자연스럽게 길러준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발달 수준을 고려하면, 신체를 움직이는 활동을 자주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학교는 그렇게 하기 어렵게 만들어졌다.

아이들에 비해 운동장은 작고, 그마저도 이용하려면 긴 복도와 몇 개의 층을 지나야 한다.

그래서 교실 안에서 활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위해 미리 책상과 의자를 빠르게 정리하는 훈련을 하면 좋다.

신체 활동을 하기 전 아이들에게 놀이의 힘과 중요성, 그리고 주의할 점을 알려주고 마치고 난 뒤 서로 생각을 공유하게 되면 효과가 배가 된다.




J는 돌봄시설에서 지낸다.

아버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을 하고, 누나 역시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 먼 곳에서 산다.

덩치와 나이에 비해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나 순수한 품성을 지녔다.

정이 많지만 정이 필요한 아이다.


교사가 아무리 채워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이 있다.

부모의 사랑, 보호자의 안정감.

안쓰러운 마음에 아이를 끌어안으려다가 교실에서 중심을 잃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믿을 수 있는 사람,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닮고 싶은 사람.

이 정도면 교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


그 밖의 아이가 살아가는 환경을 바꾸는 것은 교사 개인의 몫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몫이다.

아이의 어둠에 눈을 돌릴 수 없는 사람이라면, 사회를 바꾸려 노력하는 것이 낫다.

사회안정망이 갖춰지고, 다양한 공동체가 공존하며, 인간에 대한 존중의 태도가 사회에 깃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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