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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Feb 24. 2016

세상은 교과서 밖에 있다

2014. 03. 12.

아침밥을 먹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빵을 챙기고 갔다.

먼저 온 아이들은 다들 아침을 먹고 왔다고 했다.

빵이 남을 것 같으니 먹고 싶으면 그러라고 해도 괜찮다고 했다.


등교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몇몇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지각한 아이들은 아침을 먹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핀잔을 주며 하나씩 나누어줬는데 몇 조각이 남았다.

"남은 빵 먹을 사람?"

이전과는 다르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요 녀석들.

아침 못 먹은 친구들을 위해 배려했던 거구나.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를 껴안는 아이들이 있다.

포옹하지는 않더라도 접촉하는 것을 좋아한다.

쉬는 시간에 함께 이야기하며 장난도 쳤는데 한 아이가 정말 아빠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아이들도 맞장구를 쳤다.

가깝고 편안하다는 말처럼 들려 기분이 좋긴 하지만, 이제야 서른인데 아빠 소리는 이르지 않니?


오늘 시간표는 지구, 지구, 영어, 인간, 인간.

아이들은 여전히 특이한 시간표가 신기한가 보다.

한 아이가 지구는 과학이냐고 물었다.

"말 그대로 지구에 대해 배우는 거야.

지구를 과학이다 아니다 라고 나눌 수 있을까?"


모둠별로 지구본을 하나씩 나눠주었다.

"너희들은 책이나 TV, 인터넷 등을 통해서

이미 지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을 거야.

오늘은 너희들의 눈으로 직접 찾아보렴.

지구본을 보고 알게 된 점을 공책에 적어보자."

처음에는 지구본을 돌리며 이쪽저쪽을 살펴보더니 이내 관심 가는 부분에 집중하며 필기를 했다.


바다가 매우 넓다.
우리나라가 큰지 알았는데 정말 작다.
세계에는 6개의 대륙이 있다.
신기한 지명을 가진 섬들이 있다.
지구가 둥글다.
조금 기울어져 있다.
색깔을 이용해 높이를 표현했다.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과학적인 요소를 많이 찾아내기도 했고, 사회적인 것에 집중하기도 했다.

심지어 미적인 부분에 주의를 기울이는 아이도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지구에 대한 소중한 '통찰'이다.

서로가 발견한 것들을 공유하게 하고 국가교육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을 한 번 더 짚어줬다.



그리고는 지구와 달이 태어나는 과정을 짧게 압축한 영상을 보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XbJAd5mtH-s)

아이들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본' 표정이었다.

지구가 엄청나게 뜨거웠다니.

지구의 파편이 모여 달이 모인 거야?


아이들의 궁금증이 극에 달했을 때, 좀 더 자극을 줬다.

지구를 만든 힘을 이해하기 위해 뉴튼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만유인력의 법칙까지.

펜을 교실 가운데로 던지며 말했다.

"왜 모든 것은 땅으로 떨어질까?

공중에서 가만히 놔두면 옆으로 갈 수도 있고 하늘로 갈 수도 있잖아.

왜 하필 땅으로 떨어질까?"


지구가 잡아당겨서 떨어진다는 모범답안도 나왔지만

일부러 더 궁금증을 자아내도록 질문했다.

"지구 말고 다른 것들은 잡아당기지 않을까?

사람도 펜을 잡아당긴다면 사람 쪽으로 날아갈 수 있잖아.

꼭 땅으로 떨어져야 하나?"


그러면서 만유인력의 첫 번째 변수 무게에 대해 설명했다.

(정확히는 질량이지만 의도된 오개념은 오히려 배움에 도움이 된다.)

"너희도, 나도, 지나가는 똥개도 다 잡아당기는 힘이 있어.

그런데 왜 땅으로 떨어질까?

지구에서는 지구가 가장 무겁기 때문이야.

그런데 태양은 지구보다 훨씬 무겁잖아.

그럼 물건은 하늘로 날아가야 하지 않나?"


아이들의 무수한 답을 듣고 두 번째 변수에 대해 말했다.

"무게만큼 중요한 것은 거리야.

가까울수록 힘이 강하지.

그래서 지구에서는 태양보다 지구의 당기는 힘이 강한 거야."


아이들이 자연의 신비로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비로소 사람은 배움을 즐기는 것이 본성이라는 것을 느끼는 첫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지구에 이어 인간.

둘은 멀어 보이지만 가깝다.

그것을 이어주는 것이 오늘의 내 역할이다.


지구의 탄생에서부터

바다의 생성,

땅의 갈라짐,

단백질의 합성,

해상 식물의 탄생,

오존층의 생성,

육상 식물의 탄생,

동물의 탄생,

인간의 탄생까지.


아이들은 재밌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이 편안히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인간의 진화를 다룬 영상을 보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g1vaR_98H0w)

아이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의 모습이란.

그러면서도 긴 시간에 걸쳐 진화하는 인간은 그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아니?

상상력이야.

지금부터 너희들은 초기 인간의 생활을 상상할 거야."


인간이 어디에서 살았을지, 어떻게 살아남았을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서로 생각을 공유한 뒤 그 모습을 직접 몸으로 표현해 보았다.


가장 많이 나온 장면은 사냥하는 장면.

아무래도 제일 익숙하기 때문이겠지.

나무에서 생활하는 장면이나 도구를 사용하는 장면도 제법 나왔다.



이렇게 세상을 이해하는 눈이 점점 더 넓어진다.

간단한 도구와 상상력만으로도.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체육, 음악, 미술, 실과, 도덕.

초등학교에서 다루는 '과목'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렇게 과목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다.

각 과목은 세상을 바라보는 한 가지 시각에 불과하니 그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아우를 수는 없다.


과목마다 다루고 있는 어마어마한 지식과 그 안에 담긴 사고의 형식은 훌륭하다.

그러나 서로 간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한 사람의 머리 속에서 통합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빼어난 능력이 있지 않는 한 이를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이 요구된다.

아직 추상적인 사고가 어려운 아이들에게는 더욱 구체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지식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책에 박힌 것으로 인식하기 쉽다.




한편, 과목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효과적인 교육을 위한 과목은 시대마다 달랐고, 같은 시기에도 지역별로 다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와는 다른 분류의 과목으로 교육을 한다.


과목은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도구지,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다.

교사가 집중해야 하는 점은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 즉 다양한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이런 원칙 위에서 교육을 한다면 국가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물론 주변의 시선과 평가가 교사를 압박할 것이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불안에  끊임없이 흔들릴 것이다.

어느 순간 털썩 주저앉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교사가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당신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아이들이 곁에 있을 것이고, 어딘가에서 같은 방향을 걷는 동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확신을 가지고 당당히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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