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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Feb 25. 2016

스스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

2014. 03. 13.

"애들아, 갈 준비 하자."

"어디로 가요?"

"도서관으로."

"도서관에서 수업해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즐거운 듯 아이들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번 시간에는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정리할 거예요.

어떤 것을 배웠나요?"

권리, 책임, 괴롭힘, 평화, 책, 지구, 인간, 소통...


"그래요. 그런데 우리는 왜 도서관에 왔을까요?"

"책을 읽고 정리하려고요."

"맞아요. 

선생님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직접 할 거예요.

지금까지 배운 내용과 관련한 책들을 찾고, 읽어가며 중요한 내용, 새롭게 알게 된 내용 등을 공책에 정리해봐요.

그리고 친구들과 나누세요."


자신의 관심 분야의 책을 찾아 읽고 정리하기.

생각보다 그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심 분야가 있어야 하고, 책의 소중함을 알아야 하는데 책은 지루하고 어렵다는 인식이 두텁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도서관을 서성였다.

그러나 하나 둘 책을 찾기 시작하자 다른 아이들도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자발적인 독서와 필기.

그 이후로 내가 한 일은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하는 아이와 함께 책을 찾는 일과 궁금한 것에 대답하는  일뿐이었다.


아이들은 정말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과 의지를 보였다.

쉬는 시간이 되어도  계속하는 아이들이 반이나 되었고, 심지어 두 시간이 지나 그만하자고 해도 시간을 더 달라고 하였다.

중간놀이 때 함께 놀이를 하기로 한 약속을 떠올리게 하니 그제야 아이들은 공부하기를 멈췄다.



오늘의 놀이는 '아메바'.

간단한 잡기 놀이지만, 이야기가 있고 집중하게 하는 장치들이 있어 아이들이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놀이를 하며 잘 지켜지지 않는 규칙은 그때마다 서로 이야기를 하며 고쳐나갔다.

우리들의 놀이는 이렇게 점점 더 우리 것이 된다.



이어진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학습신문을 만들었다.

정해진 틀은 따로 주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내용을 선정하고, 편집하고 꾸미기로 했다.

서로 역할을 나누고 진행하는 모습이 제법이었다.

한 시간에 다 마치기는 힘들어 점심을 먹고 이어가기로 했다.

나는 점심시간에 새 방송부원을 선출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점심시간 내내 교실에 가지 못했다.

시간이 다 되어 허겁지겁 교실에 들어서는데 모든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신문을 만들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모두가 몰입하던 처음과 달리 후반으로 갈수록 흔히 '무임승차'라고 표현되는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단활동을 할 때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을 뜻한다.)

사실 무임승차는 하기 싫다는 표현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인정받고 싶어 하니까.

그것은 내가 뭘 해야 할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표현일 뿐이다.

그런 아이들이 보이면 다가가 감정을 읽어주고, 모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주었다.



완성된 결과물을 뒤쪽에 게시를 했더니 아이들은 관심을 보이며 살펴봤다.

자신이 공부한 내용이 교실 가운데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주의를 기울여 바라본다.

이것만큼 공부에 대한 보상이 있을까.



이어 '작은 피아노 연주회'를 했다.

"이번 시간에는 피아노를 연주할 거예요.

잘하는 친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친구가 한 번씩 연주할 겁니다.

피아노 못 치는 친구들은 벌써부터 긴장되죠?

우리가 학교에서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나요?

아니죠. 그러니 못 쳐도 괜찮아요.

처음부터 잘할 수 없는 거잖아요.

와서 의자에 앉아 건반 하나만 누르고 가도 됩니다."


악보 하나 없이 수준급의 연주를 멋들어지게 하는 아이도, 건반 하나만 누르거나 마음이 가는 대로 치고 들어가는 아이도 모두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아마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아이들이 많을 테지.


"한 달이 지날 때까지 적어도 여러 손가락을 이용해 피아노를 칠 수 있게 연습해보세요.

누가 도와줄까요?"

"친구들이요."

"그래요. 꼭 잘하는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부탁하면 함께 연습할 수 있을 거예요."



오늘도 하루닫기가 시끌벅적했다.

아이들 마음에 생긴 힘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리라.




여전히 3월이면 교실을 돌아다니며 예쁘게 꾸몄는지 살펴보는 학교가 있다.

이를 대비해 교사들은 분주하게 종이를 오리고 붙이고, 각양각색의 조형물을 달아둔다.

아이들 역시  정신없는 건 마찬가지다.

교사를 도와 뒤를 꾸밀 만한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교실 뒷판은 예쁘게 꾸미는 공간이 아니다.

학교와 교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으로 채우는 공간도 아니다.

교실공동체가 각자의 삶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곳이다.

판 위에서 하고 싶은 말과 생각이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을 때야 비로소 그 공간은 우리들 것이 된다.




아이들은 예술적 표현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경우가 많다.

비단 아이만 그럴까.

어른도 그렇다.

나 역시 아직도 미술을 두려워한다.

어릴 때부터 주어진 시간에 작품을 끝내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 작품에 등급이 매겨지는 모습을 보며 더 높은 등급을 받는 데 집중하게 됐다.


예술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언어가 아닌 다른 형식으로 소통하는 것일 뿐이다.

표현 기법을 잘 따라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른 이와 소통하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두려움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




학창 시절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공부해라'와 '공부해야 한다'가 아닐까.

물론 공부는 중요하다.

심지어 나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 공부('진정한 공부란 무엇인가' 참조)는 필수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도 계속 들으면 지겹고, 하고 싶은 일도 누군가가 시키면 괜히 싫어지는 법이다.


공부는 본질적으로 즐거운 일이지만 동시에 그 과정은 힘들고 괴롭기도 하다.

누군가의 말이나 지시로 시작해서는 지속하기 힘들다.

무언가가 궁금하고 알고 싶고 그것을 깊이 이해하고 싶으면 공부는 절로 하게 된다.

그런 순간이 오면 공부의 참맛을 알게 되어 어려운 순간도 버텨낼 수 있다.

기타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싶어 손에 굳은살이 박일 때까지 연습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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