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항수 Feb 26. 2016

네 곁에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어

2014. 03. 14.

방송 업무로 인해  정신없는 아침을 보내고 교실로 돌아오니 아이들끼리 하루열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없어도 저절로 진행이 된다.


1, 2교시는 미술 시간이라 아이들은 수업 준비로 부산한 모습이었다.

J 혼자 의자에 앉아 입을 삐쭉 내밀고 있었다.

지난 미술 시간의 감정이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J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미술실 가기 싫어요."

"지난 일 때문에 아직 기분이 풀리지 않은가 보구나."

"네."

"어떤 점이 가장 J를 힘들게 하니?"

"어차피 저랑 같이 앉지도 않을 거잖아요."

지난번에 T의 해명과 사과가 마음에 다가오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J가 기분이 좋지 않을 만하네.

J아, 선생님 봐볼래?

지금까지 우리가 뭐에 대해서 배웠지?"

"지구, 인간, 약속, 책, 놀이..."

조금씩 J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때 J는 혼자 있었니?"

"아니오. 친구들과 함께 했어요."

"응. 네 곁에는 친구도 있고, 선생님도 있어.

네가 마음 아플 일은 없을 거야.

미술실로 갈까? 선생님이 같이 갈게."

J는 다시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거부하지 않고 따라 일어섰다.


미술실에 도착하고 미술 선생님에게 J의 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그 사이 J는 또 친구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J에게 왜 거기 앉아 있냐고 물었더니

T가 자기랑 같이 앉지 않을 거라 대답했다.

T를 불러  지난번 사과를 J가 못 들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T가 미안하다며 같이 앉자고 연거푸 말했다.

그 말에 J는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지만 일어서지는 않았다.

눈치를 보니 준비물을 하나도 가져오지 않은 것 때문이다.

미술선생님이 챙겨주실 거라 달래고 원래 자리에 앉혔다.

J가 앉자마자 주변 친구들이 너도나도 준비물을 챙겨줬다.

그 모습을 보고 안심이 되어 미술실을 나설 수 있었다.


나중에 미술선생님께 J가 어땠는지 여쭤보았다.

미술선생님께서 준비물과 책도 챙겨주고 따스하게 대해줬더니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고 한다.

심지어 나중에는 다른 친구들을 도와주기도 했다고.

이제는 안심이다.


3, 4교시에는 약수에 대해 배웠다.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는 별로 없다.

그런데 사칙연산이 잘 안되어 못하는 아이가 많다.

모둠별로 곱하기와 나눗셈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충분히 익히면 칠판에 모둠딱지를 붙이라고 하였다.

서로 간단한 문제를 내주며 곱셈과 나눗셈을 익혔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약수에 대해 설명하였다.

"약수를 알기 위해서는 나누어 떨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해.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

"나누는 수가 어쩌고 저쩌고..."

"이해하기 쉽니?"

"아니오."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친구?"

"나누면 나머지가 0이 되는 것입니다."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친구?"

"나머지가 0이 되는 것입니다."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친구?"

"0입니다."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친구?"

"......"

"정말 쉽게 설명하자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야."

몇몇 아이가 아 하고 감탄한다.

몇 가지 예시를 들어주니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사탕 6개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싸우지 않을까?"

"한 개씩 나눠줘요."

"그래. 그럼 똑같이 나눠 가지니 싸우지 않겠지. 또?"

"두 개씩요. 세 개씩요. 여섯 개씩요."

"그럼 왜 넷과 다섯은 안되니?"

"한 명이 네 개 가지면 다른 한 명이 두 개를 가져야 하잖아요."

"그래.  이때의 1, 2, 3, 6은 6의 약수가 되는 거야."

여기까지 설명하고 나머지는 아이들 스스로 풀게 했다.

서로 돕고, 답을 비교하고, 이야기하며 해결해나갔다.


H와 Y는 곱셈과 나눗셈을 힘들어했다.

다행히 둘이 근처라 아예 옆에 붙어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게 질문을 했다.

H는 약수에 대한 감을 잡았고, Y는 끝까지 노력해서 다 풀었다.


아이들과 홀짝 놀이를 한 후 2와 5로 나누어 떨어지는 수에 대해 알아보았다.

놀이로 해서 그런지 쉽게 감을 잡는 모습이었다.


끝나고 Y에게 어땠냐고 물었더니 수학 시간이 즐거웠다고 했다.

H에게는 이렇게 일 년 동안 하면 충분히 잘할 거라며 하이파이브를 했는데 수줍게 웃으며 응했다.


체육 시간 후에 민방위 훈련이 끝나고 짧게 회의를 했다.

오늘의 안건은 교실 앞 액자 문구 바꾸기.

아직도 교실 앞에는 '규칙을 잘 지키는 누리보듬 4기'라고 적혀 있다.

지난 아이들의 작품이다.

그 모습이 부끄럽다며 얼른 바꾸자고 했다.

미래의 주인공, 이것이 청춘, 빠이아 등 온갖 의견을 제치고 '미래를 찾는 주인공, 누리보듬 5기'로 정해졌다.


아이들은 이 말의 무게를 알고 있을까.

아니,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꿈을 잃어버린 어른들보다도.




벌써 2주가 지났다.

어느새 우리 교실 특유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지난해와는 확연히 다르다.

교사는 그대로지만 아이들은 달라졌으니까.

교사가 주도하지 않고 함께 만들어가니 더욱 그렇다.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금방 적응하는 아이도 있지만 게 중에는 그렇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교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차근차근 아이들과 소통하며 함께 바꿔 나가면 된다.


어느 순간 교사가 말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아이들이 듣기만 하고 있다면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럴수록 여유를 찾고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쉽지 않기 때문에 교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스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