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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Feb 29. 2016

아이들에게도 월요병은 있다

2014. 03. 17.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날이었다.

아침열기가 활발히 진행된 터라 별 생각 없이 첫 시간을 글쓰기로 잡았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공유한 뒤 글짓기와 글쓰기의 차이점을 생각하며 즐겁게 글쓰기 놀이를 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반응이 기대했던 만큼 나오지 않았다.

재미있게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평소보다 축 쳐진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을 따라 나도 조금씩 늘어져갔다.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리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을 도덕선생님께 보내고 급한 업무를 처리하며 수업을 되돌이켰다.

아침에 지나가며 봤던 N의 글 안에 실마리가 있었다.

'월요일 짜증나.'

그래, 아이들에게도 월요병은 있겠지.

주말에는 자신의 신체 흐름에 맞게 늦게 일어날 수도 있고 한껏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월요일에는 일찍 일어나야 하고, 우리나라 학생의 막중한 책임 - 학교와 학원 가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한 데다가 지금껏 학교 = 싫은 곳 이라는 등식을 내면화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도덕실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며 느긋하게 책을 읽었다.

아이들과 함께 애국주회에 참석하기 위해 강당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방송부 애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강당 방송실이 잠겨 있었던 것이다.

3년 째 잠겨본 적이 없는데!


급히 행정실로 아이를 보내 열쇠를 받고 방송실 문을 열어 방송 준비를 했다.

덕분에 행사가 몇 분 지연됐다.

끝나고 교실에 가니 이미 3교시 시작 시간이었다.

곧장 수업을 하기엔 집중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5분을 쉬게 하였다.

여전히 생기를 잃은 채로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위해 월요병을 간단히 설명하고 '공동묘지' 놀이로 기운을 북돋았다.

다행히 원활히 배수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4교시에는 영어 시간이었지만 다른 선생님의 부탁으로 서버 컴퓨터를 세팅해야했다.

환기도 잘 안되는 전산실에 한 시간 있었더니 탁한 공기과 강한 전자파로 머리가 아팠다.

그 때문이었을까.

오후에 지구에 대해 다루는데 나도, 아이들도 헤맸다.


그런 분위기를 정리해보려 했는데 J와 H가 몇 번째 낄낄대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J!"

하고 크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아이들도, 나 역시도 깜짝 놀랐다.

곧장 아이들에게 소리쳐서 미안하다고 하고 J와 H를 밖으로 불러내 다시금 사과하고 다독였다.

그리고 나의 입장과 마음을 설명하였다.

수업을 마치며 전체에게 사과하고 종례할 때 또 사과했다.

아이들조차 그럴 필요 없다 했지만 나는 너무나 미안했다.

그렇게 대응할 필요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으니.


아직도 나에게는 아이들이 내 생각대로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나 보다.

그들은 그들일 뿐인데.

갈등은 삶에서 당연한 요소이고 나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존재란 것을 안다.

여전히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나 보다.

난 아직 멀었다.


내일은 다시.




교사든 아이든 수업에 집중할 수 없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수업 중에 울리는 전화와 아직 못다한 학원 숙제, 등교 전에 체할 만큼 들은 잔소리, 공문 작성 독촉 메시지......

온갖 모순과 희노애락이 섞인 것이 삶이지만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있다.


내 삶은 행복으로 가득찼으면.

파랑새가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런 커다란 바람이 아니더라도 날 힘들게 하는 상황 중 하나는 사라졌으면 하는 작은 소망.


인지상정인 마음이건만 이것이 되려 자신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내려놓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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