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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Mar 01. 2016

남의 기준 말고, 자신의 속도대로

2014. 03. 18.

오늘은 첫 교통봉사일.

이른 시간에 학교에 도착했는데도 벌써 세 명이 와 있었다.

함께 깃발과 조끼를 챙기고 학교 앞 횡단보도로 갔다.

각자 맡은 위치로 흩어져 교통안내를 시작했다.

도와주러 온 경찰관이 교통봉사를 어머니들이 아닌 아이들이 직접 하는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해했다.

상황 설명을 하자 웃으며 도와주셨다.


나머지 셋도 많이 늦지는 않았다.

Y의 어머니는 아이가 걱정되었는지 옆에서 지켜보시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리셨다.

30분 정도 가만히 서있느라 힘들 만도 한데 처음 하는 경험이라며 즐겁게 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기념사진 한 장 찰칵!



어제에 이어 지구에 대해 더 알아보았다.

아직 아이들은 책과 교과서가 더 익숙한가 보다.

눈으로 직접 관찰한 결과에서 알아내기 보다는 자기가 원래 알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다시 실험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니 곧잘 했다.



2교시에는 여전히 글쓰기에 거부감을 가진 아이들을 위해 '훈민정음' 놀이를 바탕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초성으로 문제를 내면 빨리 단어를 생각해서 대답하는 간단한 놀이지만, 언어적 순발력과 어휘력을 키우기에 그만이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전체가 함께 지금까지 학습한 내용으로 '초성 맞추기' 활동을 하였다.

따로 필기를 하거나 복습하지 않았음에도 아이들은 매우 잘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호모 사피언스' 같은 전문용어도!



3~4교시는 연이어 수학을 공부했다.

간단한 설명 뒤에 스스로 문제를 풀고 모르는 것은 서로에게 물었다.

한 시간 분량을 20분 만에 마치니 다들 자신감이 대폭 늘었다.

이어 공약수에 대해서 함께 공부하는데 중간에 쉬는 시간이 됐음에도 반 정도는 자리에 앉아 계속해서 문제를 풀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속도에 맞춰 빠르게 풀기도, 매우 천천히 하기도 했다.

먼저 끝낸 아이는 조용히 독서를 하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에게 문제를 내기도 했으며, 어려워하는 친구를 돕기도 했다.

느린 아이들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내가 하는 일은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생각이 자랄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주는  것뿐.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성장하기 마련이다.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오늘로 마무리하였다.

오늘의 주제는 '어떻게 과거를 알아낼 수 있는가' 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룡과 옛 생명체들이 화석이 되는 과정을 시작으로 지질조사를 통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다는 점, 과학을 연구하며 지금도 계속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다는 사실 등을 배웠다.

(http://ebs.daum.net/knowledge/episode/25525 와 http://www.youtube.com/watch?v=95yxnCpCMeo 참고)


아침에 하루열기와 닫기를 할 때 잘 되는 점과 개선할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더니 오후에 하루닫기를 할 때는 조금이지만 나아진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 스스로 좋아졌다며 서로에게 칭찬을 했다.


첨언. 어제 점심시간까지 월요병에 시달리던 N은 저혈압인  듯하다.

최근 들어 아침에는 기운이 없다고 했다.

저혈압인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날씨가 따뜻해질수록 아침이 힘들어진다고 했다.

당분간 매일 아침 신경을 써야겠다.




스무 살이면 대학을 가고, 20대 후반이면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그다음 아이를 낳고 승진하고...

우리 사회에는 정해진 기간까지 해야 하는 '인생과업'으로 가득하다.

그렇지 못한다면 마치 인생이 실패한 것처럼 평가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그런 모습이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과업을 완수하지 못한 사람은 명절을 기피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기가 되면 몸을 뒤집어야 하고, 걸어야 하고, 말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는 혹시나 우리 아이가 잘못된 건 아닌가 걱정을 한다.

학교라고 다를까.

매 수업 시간마다 달성해야 할 학습목표가 있고, 진단평가 점수가 얼마를 넘어야 하고, 인증제도 통과해야 하고...

우리는 어려서부터 보이지 않는 압박에 익숙해진다.


돌이켜보면 정말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다 싶었던 기준이 어느새인가 사라지고, 그걸 지키지 않은 사람들도 잘 살아간다.

아이들은 느리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저마다의 속도로 성장한다.

차이를 인정하며 기다려주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든든한 지원자가 생기는 것이다.




제법 긴 시간 아이들과 함께 교통봉사를 했지만 한 번도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안전이라는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조차 기회를 뺏는 것은 아닐까.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더욱 성장하고 싶어 한다.

그 경험은 누군가가 제공하는 박제된 것이면 안 된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회 속에서 실제로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통해 자신이 사회 속의 일원이라고 인식한다.


아이들을 시민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마냥 보호해야 할 존재로 생각할 것인가.

아이는 기대만큼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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