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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Mar 02. 2016

습관은 강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2014. 03. 19.

우리반은 따로 규칙이 없고 권리와 책임에 따라 함께 살아간다.

당연히 스마트폰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 게임도 마음껏 한다.


혹자는 그래서는 안되지 않느냐 물을 수도 있겠다.

어른들의 통제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은 숨어서라도 한다.

진정으로 잘못된 중독을 막기 위한 최선은 인생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TED 강연 영상입니다. *중독에 대해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은 틀렸다 : https://www.ted.com/talks/johann_hari_everything_you_think_you_know_about_addiction_is_wrong)


우리반도 처음에는 쉬는 시간이면 많은 아이들이 게임을 하고 아이돌의 정보를 찾았다.

그랬던 아이들이 점점 친구들과 노는 즐거움을 알아가며 스마트폰 사용량이 현저히 줄었다.

그러나 여전히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몇 있다.


중간놀이가 시작하기 전,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심심했던 아이들이 어떻게 모여 놀았는지 알려주었다.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할 사람 여기 붙어라."

라고 외치면 너도나도 손가락을 잡고 함께 놀았다고.

중간놀이가 시작하자마자 몇 명의 아이들이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며 함께 놀 아이들을 찾았다.

다른 사람과 노는 방법을 모르던 아이들도 지금껏 여러 놀이를 배웠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했다.

어느덧 아이들 모두 자기가 원하는 놀이를 하는 편에 들어갔다.

중간놀이 내내, 스마트폰을 만지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살아가는 게 즐거울 때, 삶에서 의미를 찾을 때야 비로소 중독에서 벗어난다.

우리가 행복할 때, 기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린다.




수업을 하며 교실을 둘러보면 자세가 바른 아이는 거의 없다.

대부분 턱을 기대거나 몸이 옆으로 뉘어져 있다.

그렇다고 자세를 바르게 해라 라는 말은 아이들에게는 잔소리로 다가온다.

그래서 오늘을 참고 기다렸다.


아이들과 인간에 대해 돌이켜보며 동물과 인간에게 큰 차이를 가져온 조건이 무엇이냐 물었다.

불, 도구, 육식 등 여러 가지가 나왔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 하나의 이유, 직립보행.

그것은 인간에게 축복이었지만 불행의 시작이기도 했다면서 아이들의 주의를 끌었다.

왜 직립보행을 하면 허리 등에 부담이 갈  수밖에 없는지, 책상 위에 올라가 직접 몸으로 보이며 알려주었다.


이어 몸에 부담을 주는 자세를 직접 보여주며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척추측만증과 내 친구의 예화, 턱을 괴었을 때 피부의 영향 등을 이야기해줬더니

아이들의 자세가 조금씩 변했다.

그리고 서있는 자세에서 허리의 상태가 어떠해야 하는지 나의 엑스레이 결과를 바탕으로 이야기하였다.


아이들에게 바른 자세로 앉게도 서보게도 했다.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이내 잘했다.

이어 '미스코리아 워킹' 놀이를 했다.

미스코리아처럼 책을 머리 위에 얹어 이어걷기를 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지금은 자세가 좋지만 10년 넘게 만들어진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으니 일 년 동안 선생님이 도와줄까 물었다.

아이들은 크게 네! 하고 외쳤다.

그 이후로는 자세가 좋지 않은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서 '허리 아프겠다' 라고만 하면 얼른 바른 자세로 앉았다.


좋은 습관도 강제보다는 내면화가 먼저다.




'일기'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맞추기라도 한 듯 탄식에 불만 어린 목소리였다.

"일기에 대한 생각이 정말 좋지 않나 봐.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느낌에 대해 이야기해줄래?"

방학 숙제 일기를 밀려 쓰다가 결국 쓰지 못한 경험, 거짓말로 지어낸 경험,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혼났던 경험 등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도 학창 시절에는 혼나더라도 일기를 쓰지 않았다며 공감해줬다.

그러면서 2005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기 검사'가 인권 침해라고 했다고 하니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화제를 돌려 선생님은 어른이 된 후에도 몇 번이나 일기를 쓰려고 했지만 매번 일기(日記)가 아니라 연기(年記)가 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다 지난 2월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교단일기를 썼다고 하니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일기 중 하나를 읽어줬다.

지난 13일에 쓴 '스스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 (https://brunch.co.kr/@sumsame/19)


읽는 동안 아이들은 옛 생각에 까르르 웃기도 하고 그땐 그랬다며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고작 며칠 전 일인데 말이다.

다 읽고 나서 느낌을 물었더니 너무 재밌고, 예전 일이 생각난다며 좋아했다.


"선생님도 써보니 정말 좋더라고.

이렇게 일기 쓰기는 엄청난 장점이 많아.

그런데 우리는 왜 일기를 쓰기 싫어할까?"

아이들의 의견을 정리해보니 1. 강제로 해서 / 2. 사생활 침해(누군가가 확인하니까) 라는 이유였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한 해 동안 일기 숙제는 없고, 부모님들께 일기장을 보지 말아달라고 편지를 써주겠다고 했더니 반 이상이 일기를 써보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과 소통하고 싶거나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은 친구는 책상 위에 올려두면 선생님이 읽고 밑에 짧게 적겠다고 하니 그것도 좋다고 하였다.


시간이 남아 일기를 한 편 더 읽어줬다.

지난 10일에 쓴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가'. (https://brunch.co.kr/@sumsame/16)

아이들은 이것을 부모님께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약간의 편집 후에, 일기에 대한 아이들에 생각을 추가하여 아이들 편에 편지를 보냈다.


부모님들은 읽고 어떤 반응을 하실까 궁금하다.




금요일에 선생님들이 함께 전교실 '환경순회'를 하기로 예정되었다.

그전까지 환경 정리를 마쳐야 하는 상황.

매번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재료, 구상, 꾸미기 등.

쉬는 시간과 방과 후를 이용해 자발적으로 모인 아이들의 작품들이 점점 늘어난다.

나는 아이들이 하기 힘든 부분이나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정한 부분만 한다.

그걸로도 충분하다.

교실 환경은 교사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가꾸는 것이니.




아이들이 공배수를 생각보다 어려워했다.

그래도 서로 도우니 시간이 끝날 때까지 대부분 마칠 수 있었다.

다 못한 아이는 쉬는 시간 등을 이용해 자발적으로 마친다.

느린 아이에게 누구도 비난이나 놀림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모두가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필요할 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다.




오후에는 '꼴찌를 위하여' 를 불렀다.

작곡가가 어떤 경험과 마음으로 노래를 지었는지 듣고 노래를 들어보니 아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http://youtu.be/rDpuFKMMsBk 참고)


"일등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 생각해요."

"꼴찌라도 자랑스러울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진정한 일등도 꼴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술기운에 친구와 마라톤을 뛰기로 약속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밤이 될 때까지 달려 결승선도 없어진 상태에서

마라톤을 마친 한 사나이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의 이야기, 몸짓, 표정에 아이들은 웃고 몰입하며 함께 했다.

진정한 꼴찌는 없다며 하나 된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환하게 웃기도 있었다.


우리는 세상이 요구하는 바에서 점점 자유로워질 것이다.

모든 이의 삶, 그 자체로 소중하기에.




잠시만 거리를 돌아다녀도 스마트폰에 얼굴을 붙박고 걸어가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식당과 카페, 지하철과 버스에서도 스마트폰이 발하는 빛은 사람을  집어삼킨다.

떼를 쓰고 우는 아이도 스마트폰만 쥐어주면 금세 해결된다.

왜.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스마트폰의 세상이 즐거우니까.


그렇다면 이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스마트폰의 세상보다 삶이 더욱 즐거워지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눌 때.

운동을 마친 후 땀으로 범벅인 몸을 씻을 때.

내 머릿속을 잠시 스쳐 지나간 생각이 명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인 책을 읽을 때.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에 절로 몸이 리듬을 탈 때.

품에 안은 아이의 체온과 심장 고동소리를 느낄 때.


이런 시간이 우리를 중독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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