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항수 Mar 18. 2016

민주주의는 민주적인 곳에서만 배울 수 있다

2014. 4. 4.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두 번째 회장단 후보의 선언으로 회의가 시작됐다.


이번 회장단은 지난 회의가 끝나고 다수결의 원칙이 지닌 위험성에 대해 함께 공부한 것에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빠르게 의견을 모으고 결정하기보다는 많은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는 쪽에 무게를 두고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먼저 나온 안건은 다시 과자를 먹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안건이 나왔지만 토의를 통해 과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결정하였다.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각각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도록 하였다.


대다수의 군것질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몇 명의 반대하는 아이들이 팽팽하게 맞섰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지만 의견 차이는 크게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마음대로 먹자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빈자리에 앉아 한 명의 학급 일원으로서 회의에 참석했다.

아이들이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이렇게 군것질을 하고 싶었음에도 일주일 동안 규칙에 따라 스스로를 조절했다는 사실에 아이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해야 하는 법.

먼저 아이들에게 결과가 마음에 드는 지를 물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그렇다고 했지만 표정이 밝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다.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말하게 하고 발표한 내용을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예전에 공부의 원칙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기억해요?

그래요. 지금, 나중에도 모두가 행복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통해 여러분들이 정한 규칙을 돌이켜봅시다.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니 지금은 행복하겠죠.

나중에도 행복할까요?"

많은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강하게 마음껏 먹자고 주장했던 M 역시 손을 들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들이 먹는 주전부리가 몸에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모두가 행복할 것 같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아이들이 먹을 것 때문에 서운했던 경험을 발표했다.

친한 친구만 챙겨 자신은 먹지 못했던 일, 줄까 말까 하며 놀리던 얄미운 친구.

분명 먹을 것은 서로를 친하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오히려 멀어지게 하기도 한다는 것에 모두가 공감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번 규칙은 부족한 점이 많아요.

그렇다고 선생님이 이걸 없애자는 것이 아니에요.

이건 여러분들이 결정한 것이니까 당연히 존중되어야 해요.

세상에 완벽한 규칙은 없어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방금 나왔던 문제들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가 노력하면 됩니다."


이번 회의에서 잘된 점과 개선할 점을 이야기하게 했다.

판서 크기 등 자잘한 부분을 지적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S는 다수결로 결정하려 하지 않고 아이들의 생각을 모으기 위해 노력한 점을 칭찬했다.

나 역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불과 두 번째로 아이들이 진행한 회의였다.

따로 민주주의에 대해서 배운 적은 없지만 웬만한 어른들보다 민주적으로 의견을 정하는 아이들.

다음 회의에서는 또 어떤 성장을 보일지 기대된다.


추가.

개교기념일에 심은 토마토 모종.

아이들과 함께 심지 못해 아쉽지만 기르는 것은 아이들 몫이니.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인가.

이 물음에 아니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정치에서 민주적 절차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점은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받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상에서는 민주적인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권위에 눌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거나, 분위기에 맞춰 손을 들어야 하는 거수기에 불과한 신세인 경우가 많다.


학교도 그렇다.

교사회의는 교장과 교감의 일방적인 의사표현으로 가득하고, 아이들의 자치활동은 형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가운데 학교에서 민주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제법 큰 용기가 필요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익숙하지 않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그것이 더 나은 삶의 방식이라 믿고 시도할 뿐이다.

비록 그 과정이 힘들더라도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고 싶으니까.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햇살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