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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Mar 16. 2016

햇살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2014. 4. 2.

'시험공부'를 배우기 위해 도서관으로 갔다.

국어책을 보면서 시험문제에 나오는 내용을 찾아내는 연습을 했다.

일반적으로 교과서에서 나올 수밖에 없으니 그 안에서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5분 정도의 설명 후에 아이들은 스스로 정리를 했다.

30분 만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한 단원의 지문을 다 읽고 중요한 내용도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빠른 경우는 두 단원을 하기도 했다.

느린 아이는 쉬는 시간에도 열중하여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도 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시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그렇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마음 깊이 새겨져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정한 공부'를 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사회와 타협할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중간놀이 때 두 편으로 나누어 '박수놀이'를 했는데 한 쪽은 마지막까지 잘 진행이 되었고, 다른 쪽은 중간에 흐지부지 되었다.

둘의 차이는 '서로의 의견을 얼마나 잘 수용하고 조정했는가'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조금 더 성장했겠지.



오후 수업은 '스마트폰'.

이제는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을 쓰는 아이들이 매우 적어졌다.

그러나 몇 명은 중독 수준까지 간 상황.

우리 반에서 가장 스마트폰을 많이 쓰는 아이를 모둠별로 세 명씩 뽑아보라고 했더니 내가 생각하던 아이들과 같았다.


명단을 보고 한 아이가 외쳤다.

"어? H가 없는데?"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최근에는 H가 스마트폰을 하는 모습을 못봤죠?

사실 H가 며칠 째 학교에 스마트폰을 가져오지 않고 있어요.

스스로를 조절하기 위해서 라네요."

아이들을 우와 하며 박수를 쳤다.


떠오르는 신예, K는 부끄럽다며 사용량을 줄여야겠다고 했다.

부동의 2위였으나 H가 은퇴(?)하는 바람에 1위가 된 W이는 집에서 하지 못하니 여기서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두 표만 나왔다고 좋아하던 J이는 이제부터는 하지 않겠다며 만약 자기가 한다면 친구들에게 인디안밥을 맞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상황이 정돈되자 며칠째 벼르던 활동을 했다.

아이들에게 햇빛을 받으면 행복해지는 것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햇빛을 쐬지 않는다고.


아이들과 함께 교정의 긴 의자로 가서 일광욕을 하기로 했다.

따스한 햇살 밑에서 앉아 아이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나 나눌까 했는데 아이들은 광합성을 했는지 기운이 넘쳤다.

몇 명이 얼음불을 시작하더니 기차놀이, 술래잡기, 무릎 담요 깔고 일광욕 하기,

심지어 최근 유행하는 게임을 직접 놀이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한 달 전만 해도 밖에 나가 놀라고 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이 이제는 스스로 놀 수 있는 몸과 마음이 갖추어졌나 보다.



내일은 개교기념일.

너희들을 하루 못보는 게 너무 서운하니 선물을 주고 가라고 했다.

교실을 나서며 선생님 꼭 안고 가기.


평소에 나에게 잘 안기던 아이들도 주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안겼다.

요녀석들.

친구들에게 놀림 받을까 걱정인가 보다.


당분간은 대놓고 아이들과 애정 행각을 해야겠다.

금요일이 기대된다.

후후후후후후.




한 학자가 인간을 '호모 루덴스'라고 명명했다.

놀이하는 인간.

놀이가 뭐길래 인간 활동의 중심으로 뒀을까.

무료한 시간에서 벗어나 상상을 통해 세상을 달리 보는 것, 그것이 놀이다.

어찌보면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에는 놀이가 그 바탕을 이룬 경우가 많았다.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즐거워서 한 일로 인해 세상이 변했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여유는 점점 사라지고, 무료한 시간도 사라지고 있다.

상상을 통해 세상을 달리 보지 않고 누군가가 만들어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면을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만들어낸 병든 사회를 바꾸는 힘은, 아이들의 상상력이다.

아이들이 더 병들기 전에,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삶을 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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