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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Apr 14. 2016

울다 웃고, 싸우다 응원하고

2014. 5. 1.

아침부터 교실에 "멈춰!" 소리가 울렸다.

A와 B가 다툰 모양이었다.

약 2개월 만에 평화회의가 시작됐다.


긴 공백에도 불구하고 첫 상황 재연부터 아이들이 잘 참여했다.

아직 기분이 가라앉지 않은 B를 대신하여 C와 D가 연기를 했다.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되자 아이들은 둘을 향해 질문을 하기도 했고, 감정을 읽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잘 되나 싶더니 쉽게 상황이 해결되지 않자 점점 답답해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그 와중에서도 반짝이는 생각들이 돋보였다.

마음이 차분해지도록 노래를 들어보자고도 했고, 함께 놀이를 하면 어떠냐고 설득(?)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친구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조금씩 둘의 마음은 풀렸고 나중에는 자기들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협의실로 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온 A의 표정은 밝았고, B도 나쁘진 않았다.


오랜만에 열린 평화회의 치고는 잘 진행됐다고 생각한다.

다만 둘의 마음을 다독여주기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은 아쉬웠다.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 평화회의로 인해 못한 못한 수업은 숙제로 돌리고 곧장 자리를 바꾸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처음 약속대로 제비뽑기를 통해 한 번, 원하는 대로 한 번 한 달씩 앉아보았다.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이 좋냐고 물어보니 두 번째 방식이 좋다고 했다.


걱정되는 점이 많았지만 아이들이 정한 것이니 그렇게 하자고 했다.

다만 두 가지 주의점을 지켜달라고 했다.

첫 번째, 원하는 대로라지만 지난번에 경험했던 것처럼 자신이 원치 않는 자리로 갈 수 있으니 이해할 것.

두 번째,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자리로 가게 되면 모둠활동에 잘 참여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책임을 지킬 것.

모든 아이들이 그러겠다며 다짐했다.


원하는 자리를 선택하고 겹쳐지게 되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결정하기.

그것이 우리 반의 자리를 정하는 규칙이 되었다.

막상 자리가 결정되니, 4명의 아이가 울었다.

Y와 M는 서로 떨어진 것이 서운하고 억울했고 N와 J는 원하는 대로 앉지 못한 것이 아쉬웠나 보다.


예상했던 터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모둠활동을 진행했지만 계속 신경이 쓰이고 속상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울다 만 J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떼를 쓰는 모습이 보여 한 차례 따끔하게 말을 했다.

"자리를 바꾸기 전에 어떤 상황이든 모둠활동에 참여하기로 약속했잖니!"


얼마 후 J는 조용히 내게로 오더니

"선생님, 제가 부끄러워요."

라며 고백을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지난번에도 H랑 짝이 됐는데 이번에도 못할 게 뭐가 있어요.

별 거 아닌데 울고 고집부려 죄송해요."


먼저 그리 말해주니 내 속도 편해졌다.

네가 성장한 것 같아 선생님이 기쁘다고 칭찬을 했다.


모둠활동이 끝날 즈음 분위기를 살폈더니 모두가 모둠 자체에는 만족한 표정이었다.

다만 Y와 M는 아직 감정이 다 풀리지 않았다.

복잡한 상황이라 좀 더 지켜봐야겠다.


오후에는 예정된 운동회를 축소하여 학년별 체육대회를 하였다.

5학년은 피구를 하기로 했다.


처음 종목을 이야기해줬을 때는 시큰둥하더니

막상 시작하니 긴장감이 엄청났다.

모든 반이 이기기 위해 온 힘을 다하였다.



기쁘게도 우리 반은 남녀 모두 예선을 통과했다.

아이들은 환한 표정으로 달려와 안기며 자랑했다.

결과보다 기뻤던 점은 남녀 모두 서로 열심히 응원해준 점이었다.


이어 진행된 결승전.

결승전인 만큼 아이들의 몰입도가 대단하였다.

팽팽한 접전 끝에 모든 경기가 끝이 났다.


놀랍게도 우리 반이 모두 우승을 하였다.

아이들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서로 쳐다보다가 이내 환호성을 질렀다.


교실로 돌아가 학부모님들이 마련해주신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먹으며 맘껏 승리에 취했다.

한 아이가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선생님 덕분이야."

라고 하자 몇 명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참 쑥스럽고 동의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기분은 무척 좋았다.



하루닫기를 할 때에도 온통 체육대회 이야기로 가득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승리의 기쁨에 대해 말했다.

마치며 내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역시 정말 기쁘다.

그러나 선생님이 기쁜 이유는 남녀 모두 우승을 해서가 아니야.

서로 진심을 다해 응원해주는 모습과 끝까지 최선을 다한 모습에 감동했어.

그 점이 선생님은 참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친 하루였다.

울다 웃고, 싸우다 응원하고.

그래도 마무리가 행복했으니 됐다.


5월의 첫날이 이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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