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의 위기와 기회
왜 우리나라에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규모의 사교육 시장이 만들어진 것일까.
짧게 요약하자면 희망과 불안, 책임의 오묘한 조합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 언제 낙오될지 모르는 데서 오는 불안, 자식의 삶에 대한 부모의 책임 의식.
이를 바탕으로 도발적인 제목에 대한 답을 이어가 보려 한다.
왜 공교육은 사교육을 이길 수 없을까.
사회에서 교육은 크게 두 가지 역할을 담당한다.
하나는 한 사람의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다른 하나는 한정된 자리와 기회를 차지할 사람을 선발하기 위함이다.
편의를 위해 전자를 교육의 본질적 역할, 후자를 부차적 역할이라고 하자.
공교육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는 본질적 역할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부차적 역할이 훨씬 강조된다.
하지만 공교육은 그 자체만으로는 부차적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국민 모두를 위한 교육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발의 공정성을 위한 노력을 할 수는 있지만, 선발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교육은 민첩하게 시시때때로 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제 기능을 톡톡히 해낸다.
최근 들어 사교육을 키워낸 희망과 불안, 책임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
상위 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사회 전체에 생존과 실존에 대한 불안이 만연하고 그 파장은 개인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친다.
그에 따라 부모의 책임 의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나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은 갈피를 못 잡고 작디작은 선발의 기회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그들을 잘 알기에 사교육은 화려한 수사와 장식을 바꿔가며 매번 새롭게 등장한다.
덩치가 큰 공교육을 비웃듯이.
단순히 법으로 사교육을 억제할 수 있을까?
그런 대처가 아예 효과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교육의 본질적 역할이 무시되고 부차적 역할이 강조되는 한 사교육은 위세를 떨칠 수밖에 없다.
결국 노동구조의 모순이 그대로고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어떤 대책도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사회가 변할 때까지 교육계는 손만 빨고 있어야 하는가.
언제나 혼란 속에 기회가 있는 법이다.
위에서 언급한 균형의 변화를 이용한다면 오히려 교육의 본질적 역할에 무게 중심을 둘 수 있다고 본다.
선발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포화된 상태가 되면 교육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게 되고 어느 순간 변혁의 임계점에 도달할 것이다.
그때 땜질 식의 처방을 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다른 나라의 사례를 무작정 가져오지 않고, 우리 상황에 맞는 교육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계 세우기, 경계 옮기기, 경계 허물기.
이게 내가 주장하는 교육개혁의 핵심이다.
이 글에서는 간단한 설명만 덧붙이려 한다.
경계 세우기- 교육법에 맞게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각 기관의 업무를 관리한다.
학교에서 행정 업무를 최소화하고 교육지원청은 학교 및 지역사회를 지원하며, 교육부는 교육과 관련되지 않은 사업을 벌이지 않는 것이다.
경계 옮기기- 교육법을 현 실정에 맞게 바꾸고 각 기관의 역할을 조정한다.
이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으면 왜곡될 수 있으니 추후에 따로 설명하려 한다.
경계 허물기- 기관별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교육기관(학교, 교육지원청, 평생교육기관 등)의 경계를 넘어 다른 행정기관(주민센터, 복지기관 등)과의 연계를 유연하면서도 두텁게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개혁이냐고 하는 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분에게 우리나라는 이것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아울러 여기까지 달성하는 데 최소한 10년이 걸린다고 본다.
그것도 교육과 교육현장에 해박한 인재들이 교육부를 장악한 상황에서.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보면, 사실 공교육과 사교육은 누가 이기고 지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공교육과 그 부족한 측면을 채워주는 사교육은 서로 공존할 수 있다.
다만 공교육을 일그러뜨리는 사교육이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일그러진 사회 그 자체다.
이제 경쟁의 시대에서 공존의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걸음을 내딛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