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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토끼 Feb 10. 2020

나의 작은 브뤼셀 My Little Brussels

#1. 내가 벨기에를 간다고?


일에 치여서 살다,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30대에 들어서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는 내 삶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지 몰랐다. 탄탄대로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모든 것을 순조롭게 이뤄왔기에 방심했던 탓일까.

대학원을 수료하고 나서도 어찌된 일인지 매번 계약직을 전전하는 삶을 살고 있었고, 이렇게 직장을 여러 번 옮겨 다니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이골이 났다.

학위를 가지면 내 삶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맘에 미뤄둔 논문을 썼고 대학원 졸업장을 받았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고, 어김없이 이번 직장도 계약만료 기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평소에는 계약직으로 만근을 하고, 한두달 쉬다가 다시 일을 구했다. 모든 열정을 소진하고 텅 빈 채로 다시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내 삶의 패턴이 좋았다. 아니, 좋았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쉬는 기간이 조금씩 늘어났고 나는 조바심이 났고 불안했다.


"한 살 더 먹으면 이제 서류통과도 어렵겠다.."


이런 생각이 들자, 이번 직장 계약이 만료될 시기에 맞춰 바로 옮길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그날도 평소처럼 출근길에 구직사이트를 기웃대고 있었는데, 눈에 띄는 단어가 있었다.



국제교류인력 양성사업



3개월간 해외로 인턴을 파견하는 국가사업이었다.

이미 대리급 혹은 그 이상의 업무를 하고 있는 경력자인데, 내가 이걸 지원해도 될까?

다시 인턴으로 돌아가 일을 배울 필요가 없는데, 이게 맞는 선택일까?

기간이 너무 짧은데, 이걸 다녀온다고 해서 내 이력에 도움이 될까?


등등의 다양한 고민이 앞섰다.

하지만 그 고민들과 함께 궁금한 것들이 생겼다.



다시 외국으로 나가서 살면 어떤 기분일까.

내 전공으로 해외에서 밥벌이를 하며 지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섰지만, 나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20대 초반에는 이민을 생각했었지만, 한국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래도 해외 유학을 가거나, 외국에서 내 전공을 살려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뤄지지 않을 일이라고 여겨서 마음 한 편에 숨겨두었을 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포기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일단 기간이 맞지 않았다.

직장 계약은 10월 중순까지였는데, 해외 파견이 될 기관에서는 적어도 9월엔 일을 시작해야 했다.

고로 6주 정도 일찍 관둬야 하는 것. 일이야 바짝 당겨서, 할 수 있는데 까지 끝낸다 쳐도 자발적인 퇴사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것. 언제나 그랬듯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비는 월셋집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오랜 기간 떨어져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이는 괜찮을지,

해외 파견을 다녀온 이후에 내가 다시 취업할 수 있을지 등등.



하지만 무엇보다 벨기에라는 나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6년 전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 방문한 것이 전부였으니까.

루벤에서 하는 락페스티벌을 가기 위해서 브뤼셀에 갔었고, 르네 마그리트 전시를 보았던 나라.

브뤼헤라는 아기자기한 마을을 당일치기로 다녀온 나라.

초콜릿과 와플이 유명하고, 맥주 종류가 무척이나 많은 나라. 딱 이 정도였다.



많은 고민들이 밀려왔지만, 일단 합격한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지원을 했다.


서류마감 이틀 전에 공고를 발견해서, 퇴근 후 급하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다.

서류 통과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합격 연락을 받았고 뒤늦게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나름 대학생들의 대외활동 같은 느낌이라 온라인으로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후기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동안의 짬빠(?)를 살리는 방법 뿐이겠다 싶어서 평소처럼 준비해 면접을 보았고,




정말 믿기지도 않게 합격을 했다.




이게 바로 내가 벨기에로 가게 된 이유다.

브뤼셀에 거주하면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나누고, 종종 추억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시작했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풍성했던 나만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나의 작은 브뤼셀을

소개합니다.



3개월동안 지냈던 숙소에서의 풍경






My little Brussel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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