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쓴 편지
자기야. 우리가 결혼한 지 올해로 벌써 20주년이 되었네.
나는 지금도 누가 결혼을 한다고 하면 덕담 아닌 덕담으로 이렇게 말해주곤 해.
'부부는 절대 일심동체가 아니다'
라고.
서로 다른 점을 ‘틀리다’라고 생각하고 상대를 본인이 원하는 대로 바꾸려고 하면 계속 싸울 수밖에 없잖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생길 테니까. 그래서 나는 이 말을 들려주고 싶더라.
나는 그걸 너무 일찍 알아서 빨리 많은 것을 포기해 버렸고, 자기는 너무 늦게 알아서 나를 바꾸려고 애쓰느라 서로 참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 논리적인 자기와 감성적인 나. 우린 서로 다른 면에 끌렸던 것일까. 그러나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린 이제라도 알게 된 것 같아 다행이야.
친구들과 달리 어른이 되면 꼭 결혼할 거라 이야기하던 미니가 요즘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더라. 내가 결혼은 좋은 거라고 했더니 자기와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괜찮아. 엄마·아빠도 정말 많이 다르지만 지금 이렇게 잘살고 있잖아” 하고 이야기해 줬더니 씩 웃더라. 제 눈에도 우리가 많이 달라 보이긴 했나 봐.
결혼 전 바람같이 자유를 누리던 내가, 나무 같은 자기를 만나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더 이상의 자유를 포기해야 했을 때 나 힘들었어. 그래서 가끔 미혼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했어.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에겐 황금보다 빛나는 두 열매를 가졌더라고. 혼자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 두 아이 말이야. 자식이란 존재는 정말 대단하지? 우리 삶에 참 다채로운 행복을 주는 것 같아. 아이들이 없었다면 세상사는 기쁨을 절반도 모르고 살았을 것 같지 않아?
얼마 전에 <원더풀 라이프>라는 영화를 봤어. 살아생전 가장 행복한 기억을 선택해야 하는 장면이 나오더라. 영화를 보며 나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을까 생각해봤어. 우리가 13평 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해 몇 년 후 둘째를 낳을 때쯤 17평 아파트로 이사했던 날. 미끄럼틀, 장난감 등으로 어질러진 집을 청소를 하지 않아도 상 펴고 밥 먹을 자리가 있다며 너무 좋아 서로 마주 보면서 우리 활짝 웃었잖아. 그때가 제일 먼저 떠오르더라. 그 후로도 알뜰살뜰 아껴가며 차츰차츰 집을 조금씩 넓혀가면서 우리 매번 그렇게 행복하게 마주 보고 웃었지.
전업주부인 나는 아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도 늘 자기가 벌어오는 돈의 반은 다 내가 번 거라고 이야기해줘서 고마웠어. 이제는 우리 집도 생기고, 아이들은 하고 싶은 공부 할 수 있고, 먹고 싶은 것도 망설이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해. 코로나 끝나면 앞으로는 그동안 못 다녔던 여행도 자주 다니자는 약속도 꼭 지키자.
인생 뭐 있겠어. 우리에겐 마주 보고 웃을 수 있는 가족도 있고, 아직은 뭐든 할 수 있는 건강도 있잖아. 남들 부러워하다 인생 보내지 말고,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이 점점 더 기대되는 우리 결혼 생활에 집중하면서 건강하게 살자.
20년 동안 늘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 앞으로 20년도, 그리고 그다음 20년도 항상 함께 하자.
- 결혼 20주년을 함께 축하하며.. 당신의 아내로부터 -
이렇게 써서
시청으로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편지 쓰기 행사에 당첨이 됐다며 결혼기념일 날에 얼추 맞춰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남편 앞으로 꽃다발이랑 편지가 도착했다.
별 감흥 없을 남편이지만 그래도 나는 나 대신 기념일을 기념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에게서 톡으로 답장이 왔다.
"그래 여행 많이 다니자."
오예~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코로나만 끝나 봐라.
[ 그래 여행 많이 다니자 ]
가훈처럼 액자에 넣어 딱 걸어놓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