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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과 생각

옳고 그름. 악의 평범성에 대해

Jojo Rabbit

by 송다니엘



얼마 전 배철수 음악캠프의 코너 ‘김세윤의 영화음악’에서 이 영화를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내가 극장에 갈 때 기대하는 것들 웃음 눈물 스릴 공포 슬픔 액션 풍자 반전 사랑 우정 희망 행복 음악 댄스 귀여움 따뜻함 사랑스러움 카타르시스 등등 무엇이 됐든 내가 영화에서 보고 싶어하는 모든 것이 이 영화 한편에 담겨 있다.”


나는 이 중에서 한 나치 꼬마가 본인이 믿던 것들에 대한 그릇됨을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과정을 보며 옳고 그름에 대해 곱씹어본다.


영화 거의 시작 장면에서, 멀쩡한 토끼를 ‘살(殺)’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집단의 잔인함과 비인간성에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떠올려 본다. 사실 우리 학창 시절에도 공공연하게 있었던 왕따, 학교폭력도 이와 궤를 함께한다고 느낀다. 집단 구성원 모두 스스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물리적인 힘이 두려워 앞에서는 그러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악한 행동을 저지르거나 방관하는 사람들. 성인이 되면 이것이 육체적인 힘에서 자본, 권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무튼, 꼬마 조조가 놀림을 받으면서도 옳은 행동을 한 것은 집단이 누군가를 악인, 괴물로 만들 수도 있지만, 사람 스스로 이를 자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어쩌면 어머니가 그 좋은 본(本)을 보여서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다시,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녀는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한 다. 그는 평소엔 매우 '착한' 사람이었으며,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매우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의 수행 과정에서 어떤 잘못도 느끼지 못했고, 자신이 받은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아마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에리히 프롬은 '관료주의적 인간'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누구를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았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유대인들을 죽일 때 그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는 그들을 독일로부터 단지 신속히 이주시키는 책임을 맡았을 때도 똑같이 의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었다. 그는 규칙을 어겼을 때에만 죄의식을 느꼈다. 그는 단지 두 가지 경우에만, 즉 어릴 때 게으름 피웠던 것과 공습 때 대피하라는 명령을 어겼던 것에 대해서만 죄의식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아이히만의 죄는 '생각하지 않은 죄'였다. 아이히만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 즉 기술적인 일만 성실히 수행했다. 이게 곧 아이히만의 대답이기도 했다.

- 강준만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인물과사상사(2014)


한편 영화 속 독일군 대위는, 본인 스스로 나치에 동조하지 않지만 목숨을 걸고 옳은 행동을 하고, 군인이기에 지는 것을 알면서도 연합국에 총을 겨눈다. 어쩌면 그동안 수없이 영화화된 홀로코스트 산업의 클리셰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곱씹어볼만 하다.


무엇이 옳은지 항상 고민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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