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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다니엘 Aug 14. 2022

염세주의와 이상주의 사이 어딘가에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개인의 삶을 차치하고 세상에 대한 문제점을 느낄 때가 많다. 특히 정치를 보면서. 그럴 때마다 이 나라가 망하려는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한다. 사실 20대 초반만 하더라도 그런 세상에 울분을 토하며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내 생각이 바뀐 걸까. 이제는 그 모든 일에 분노하지 않는다. 뉴스의 정치 섹션을 보지 않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 그냥 그러려니, 뭐 어떻게든 사회는 굴러가기 마련이고 나 개인의 삶은 변하는 게 없으니까.


친형은 대학 시절, 이런 나보다도 훨씬 더 급진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는데 재밌는 건 그런 형이 대기업에 입사했던 것. 한번은 시스템이 그렇게 문제라는 사람이 대기업을 갔냐고 이렇게 모순적인 인간이 있을 수 있냐고 공격적으로 물었는데, 형은 이런 말을 했다.


“어차피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그냥 돈 많이 벌고 배불리 살련다.”


그때는 그 말이 참 무책임하고 모순적이라며 혀를 찼는데 어느 순간 나도 형과 동일한 생각을 하게 됐다. 어차피 백날 천날 정치 욕하고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욕해봐야 바뀌는 건 하나 없다는 사실을.


좌우간에 사실 이런 생각을 맨날 하고 살았으니, 조직에 있는 것 자체가 내겐 너무나도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것도 한몫한 셈. 어차피 어디를 가나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군을 떠나는 것만으로는, 즉 한국 내에서는 해결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인간이 만든 최고로 합리적인 관료제. 자본주의. 이 시스템이 있는 어디에서나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게 된 계기는 잠깐 미군의 함정을 탔을 때와 전쟁연습 당시 미군들이 극도로 비효율적이며 멍청했다는 점. 솔직히 세계 최강 미국 해군, 시쳇말로 천조국은 뭔가 달라도 다를 거로 생각했거늘, 우리나라 해군이 훨씬 똑똑하고 일도 잘한다는 사실을 느꼈던 셈. 한창 그당시 미국 해군 내 항해사고가 잦았던지라, 이렇게 배를 모니까 사고를 내지 하고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독일은 좀 다르겠지 하는 생각도 솔직히 있었다. 하지만 나쁜 예상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안타깝게도 내가 생각하는 많은 문제점이 이곳에도 동일하게 있다. 다 똑같은 건 아니지만 분명히 꽤 많은 문제가 있고, 나는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변하지 않는 것의 성격이라는 걸.


거대한 문제가 있고 바뀌지 않는다고 한들, 그것 때문에 좌절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그냥 개인은 그런대로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인지  오래됐다. 그렇다고 개판 치고 악행을 저지르면 모두 본인에게 돌아오니, 착하고 양심적으로  뿐이다. 조금이나마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면  좋은 법이고.


너무 염세적인가?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건 아니지 않을까.


세상을 바꿔보겠다. 그런 큰뜻을 품은 이들을 조롱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이럴 뿐. 가끔은 나도 그런 이상주의에 감동하고 응원을 보낼 때도 많으니까. 어쩌면 나도 마음 한구석엔 이상주의를 품고 있다. 다만 그 이상주의가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게 슬픈 일이지만.


그게 나이가 먹으면서 바뀌는 건지 모르겠다.


와전된 말이긴 하지만. 젊은 시절 공산주의에 찬성하지 않으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노인이 되어서도 그렇다면 미친 거라는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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