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리지
어디에 살 것인가. 우리 삶을 관통하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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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정상적인 월급으로 꼬박꼬박 저축하여 수년이 지나도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바라는 ‘그 곳’에 집을 살 수 없다. 다른 한편, 나는 그 선망하는 지역이 왜 좋은지 알겠으면 서도 그곳보다 좋은 곳이 있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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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들어보았을 법한 책. 택리지는 마을선택의 지침서를 의미하는데, 원래 책의 이름은 사대부가거처, 즉 사대부가 거처할 만한 곳이란 의미이다. 저자는 살기 좋은 곳에 대하여 지리(地理),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지리는 풍수지리의 관점이, 생리는 먹고 사는 문제, 인심과 산수는 설명을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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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생리적인 관점을 21세기에 적용해보면 서울, 크게는 수도권보다 좋은 땅은 없어 보인다. 이에 대한 메리트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계속 되는데, 시장에 대한 정부의 유의미한 개입이 가능한 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그곳에 거주해보지도 못했지만, 좋으면서도 너무나도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은 평생을 ‘지방’에서 살아온 나는 그와 같은 삶을 따라가기조차 벅차다.
이에 대해 나의 주관적이면서도 저자의 힘을 빌려 반박해보고자 한다.
“생리가 지극히 훌륭하므로 도산이나 하회보다도 훨씬 좋다.”
“공주 동쪽에서 금강 남쪽 언덕을 따라서 계룡산 뒤에 자리 잡은 첩첩한 고개를 넘으면 유성의 넓은 들판이 나온다. 조선 초에 계룡산 남쪽 골짜기를 도읍지로 삼으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이 골짜기의 물이 금강으로 들어가니, 이름을 갑천이라 한다. 갑천 서쪽에는 유성촌과 진잠현이 있다. (중략) 청명한 기상은 한양 동쪽 교외보다 나은 듯 하다.”
“갑천은 들판이 지극히 넓고 사방의 산이 맑고 아름답다. 수량이 많은 냇물 세 줄기가 들의 복판에서 합류하여 다 함께 관개할 수 있다. 앞에 큰 시장이 있어 바다와 산지의 물자가 통해서 생활이 편리하므로 영원토록 대를 이어 살 만한 곳이다.”
한편, 산수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명당, 길지는 산천이 밝고 수려한 곳이 아닐까.
나는 부족한 내공으로 짧은 시간 돌아다녔기에 산수의 아름다움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저자는 강원도 강릉, 속초 일대를 저자는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
“이 지역을 한번 유람하면 저절로 다른 사람이 되고, 거쳐 간 사람은 10년이 지나도 얼굴과 몸가짐에 신선 세계의 산수 기운이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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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한편 산천이 밝고 수려하다 하여 현실적인 문제를 등한시하기는 어렵다. 당장 내가 자연인처럼 짐보따리를 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에 저자는 아래와 같은 예를 보여준다
“주자는 산수를 좋아하여 일일이 글을 지어 아름답게 묘사하기는 했으나 그곳에 집을 짓고 살지는 않았다. 그는 일찍이 봄철에 저곳에 가면 붉은 꽃과 푸른 잎이 서로 어우러져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
대관절. 단정적인 글이 되어버린 듯 하나, 이에 비해 아래와 같은 글이 편협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거주지는 내몸을 편안하게 하는 장소이므로 곧 외형이요, 마음속으로 기꺼워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곧 내면이다. 내면과 외형을 잘 분별하고 판단하여 몸을 빈 배와 같이 여겨 가는 곳마다 편하게 여긴다면 험난한 세상이라 해도 어느 곳이든 아름다운 장소일 것이다. 그리하여, 살려는 땅을 굳이 가릴 필요가 있으랴.”
모두에게 고향은 도시를 떠나 그런 곳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