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술부심
같이 술 먹을 때마다 독일인 친구는 피곤해하며, 집에 가고 싶은 티를 팍팍 낸다. 오후 열시쯤 되자 눈치를 보기 시작하더니, 내일 아침에 수업 있다고 갈 거라고 한다. 그래서 “너 어리잖아. 내가 너 나이 땐 말야, 새벽까지 마시고 다음 날에 쪽잠 자고 출근했어.”라며 라떼를 시전했다. 그러더니 옆에 있던 친구들이 포복절도하며, 한국인들 장난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인의 매운 맛을 보여주고 있나? 여기서 꼰대 노릇을 하고 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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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일본인 친구를 좀 아는데, 일본인들은 술 잘 못 먹던데~’ 하니, ‘같은 아시아라고 같이 생각하면 안 돼. 우린 새벽까지 술 먹고 다음 날 바로 출근하는 게 일상’이라고 말해줬다. 그러면서 술은 멘탈, 정신력이라고 덧붙였다. 정말 술 잘 먹는 한국인이 왔다면 볼 만 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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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가 돼서 Irish Pub이 문을 닫자 남은 최후의 6인이 본인 집 가서 2차를 가자고 한다. 이제 피곤해서 가려고 하니까, ‘헤이 원선. 너가 술은 멘탈이라고 했잖아.’라고 꾀어내어 2차까지 갔다. 4시쯤 되니까 4시간 후에 있는 아침 수업 생각에, 가야겠다고 하니, 또 멘탈 이야기를 한다. 후회할 소리를 했다. 자승자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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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들은 아무래도 자기들끼리 뭉쳐있으면 독일 말로 한다. 그러면서 옆에서 내가 듣고 있으면, 독일어로 말해서 미안하단다. 난 독일어 수업 듣는 것처럼 좋다고 하며, 10퍼센트 정도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음식 주문하는 걸 보며 ‘너 독일어 잘한다.’ 한다. ‘난 이거 밖에 못해~’ 하고, 옆에 있는 독일어 까막눈 이탈리안 커플에게 ‘봐, 내가 너희보단 좀 낫지?’ 하며 놀려준다. 그때부터 독일인 친구는 독일어를 쓸 때마다 ‘헤이 원선, 10퍼센트 정도 이해했어?’라고 하면, 지금은 20프로쯤 된다며 그들이 말하는 단어를 따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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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지방의 시골이다 보니, 특히 억양, 사투리도 좀 있다. 다른 독일 지방에 살다 온 사람이 이곳에 처음 오면 하나도 못 알아먹는다고, 독일어가 아니라 바이에른어를 배우는 것과 똑같은 거라고 이야기한다.
처음 축구팀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뛰곤 있는데, 하나도 못 알아 먹겠고, 몇 개의 단어만 들렸던 게. 매번 훈련 시작 전에 모여서 코치가 지난 경기 디브리핑, 앞으로 할 훈련 브리핑과 선수들과 문답하는데, 처음엔 1도 못 알아 먹었는데, 대충 이제 ‘잔소리 하는구나.’ 혹은 ‘칭찬하는구나’ 하고 겐또로 알아듣는다. 4주가 지났으니, 4달이 지날 때쯤은 좀 더 나아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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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클럽 내 독일인 친구들이 나를 배려해준다고 영어를 쓰는데, 이 때문에 벽이 생기는 것 같아 일부러 짧은 독일어라도 하려고 노력한다. 노력이 가상했는지 며칠 전엔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 ‘헤이 손, 맥주 한잔할래?’ 해서, 오 끼어주나? 하고 알았다고 했다. 펍에 가는 줄 알았더니 바로 옆 클럽하우스로 간다. 클럽하우스에서 맥주를 먹는데 전형적인 바이에른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앉아서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며 맥주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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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한 잔 하며, 요 몇 주간 승리가 없다며, 클럽 단장쯤 되는 사람이 주말에 경기 잘하자고 이야기한다. 주장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알아들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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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옆자리에 앉아서 짧은 독일어를 하는데, 3주 만에 이정도면 훌륭하다고 격려해준다. 본인은 학교 졸업하고, 바이에른에 살다보니 영어 쓸 일이 없어서 다 까먹었다고 한다. 주장한테 여기서 얼마나 뛰었냐고 물으니, 5살 때부터 축구 했다고 한다. 90년생이니, 26년간 이 클럽에서 뛰었던 셈이다. 특출난 건 아니지만, 오래 있다보니 주장까지 하는 올드맨이라고 소개한다. 처음 왔을 때부터 서글서글 웃어주는 게 사람이 좋아 보였는데, 훈련할 때 같은 조로 몇 번 뛰다 보니, ‘손, 잘했어.’하고 엄지척을 날려줬다. 성은이 망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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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어느 팀 좋아하냐고 해서, 원래는 아니었는데 여기 와서 뮌헨 팬 한다고 했더니 웃으며 ‘난 뮌헨 너무 정 없어서 안 좋아하고, 도르트문트 좋아해,’라고 한다. 그러면서 원래 어디 팬이냐고 해서 첼시라고 하니까, ‘첼시 작년에 UCL 우승하고 잘나가잖아. 거기 좋은 코치 있지, 토마스 투헬.’ 이라고 한다. 투헬이 알고 보니 바이에른 출신이더라. 무튼, ‘저 루마니안 우리 코치보다 좋아?’ 하고 했더니 ‘둘은 좀 결이 달라.’하고, 서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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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바이에른 숲 갔다 왔다고 하며 나 산 타는 거 좋아한다고 하니까 ‘그럼 너 암벽등반도 하니?’해서 그건 안 해봤다고, 쫄보라 무섭다고 했다. 그러더니 본인이 알려준다고 다음에 같이 가자고 한다. 좀 무섭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안전하다고 한다. 그동안 갔던 산들을 보여주는데 많이도 다녔다. 독일 산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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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쯤 되니까 가려고 하길래 ‘손, 너도 갈래?’해서 얼른 바이에른 할저씨들을 뒤로 하고 빤쓰런했다. 그리고 어떻게 가냐고 하길래 자전거 있다고 하니까, ‘너 술 먹었으니까 내가 데려다줄게.’ 한다. 차는 BMW. 모델은 모르겠지만 좋다. 바이에른인들은 BMW 좋아해서 이 차 타냐고 하니, 그냥 할아버지가 추천해줘서 탄다고 한다. 차 태워줄 때, ‘우리 팀은 최고의 주장이 있어서 좋아.’라고, 다소 정치적인 멘트도 했다. 앞으로 이곳 생활이 조금 수월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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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소개한 독일인보다 잘생긴 독일인이다. 올린다고 이야기를 안 해서 얼굴은 못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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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내가 스물일곱이라고 하니, 엄청 어려 보인다는 이야기를 한다. 역시 동양인 얼굴이 어리게 보이긴 하나 보다. 한국에선 서른으로 본다고 하니까 말도 안 된다고 한다. 재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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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이야기한다. 대학 가서 기억 남는 게 술 먹은 거밖에 없다고. 나는 멀리까지 와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하루에 최소 맥주 두병은 기본으로 먹는데, 그러고도 살이 빠지니, 정말 많이 움직이고 있단 걸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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