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적지 않은 시간 공직에 머무르면서 느꼈던 사실이 몇 가지가 있다. 군이라는 사회의 한정된 경험일 수도 있지만, 바깥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곤 한다.
군에서 장교라는 직책이 현장에서 무언가를 실제로 운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현장엔 물론 있지만, 보고하는 사항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지휘 계통 의거 지휘관 및 상급 부대에 보고하고, 기타 관계기관과 협조하곤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다시 실무자에게 지시하기도 한다. 결과론적으로 직접 몸을 쓰는 일은 거의 없다. 막말로 기계가 고장 나도, 배에 불이 나도, 사람이 다쳐도, 작게는 페인트칠을 하거나, 청소할 때도. 가끔은 어느 순간 스스로가 말만 하는 게 싫기도 했고, 부대원들에게 나도 함께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몸을 쓰기도 했다. 직접 몸 쓰는 일을 많이 할 때면, 몇몇 상급자나 나이 지긋한 부사관들이 내게, 그건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곤 했다. 그 때마다 나는 그래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가끔씩 강한 어필을 하기도 했다. 말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서.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주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몸을 안 쓰면서도 장교가 부사관보다 월급을 더 받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과 달리 학사 학위가 있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고, 무엇보다도 그런 위치에 있다는 것은 이에 대한 책임이 따름이다. 책임이 따른다는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본인이 직접적으로 잘못하지 않았다고 해도, 결과에 대한 무게를 져야 한다는 것이다. 작게는, 그게 본인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질책이 될 수도 있고, 어떠한 잘못이 있을 때는 징계, 더 크게는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것도 의미한다. 이런 책임의 무게가 가끔은 너무나도 무겁고 억울한 순간도 많았고, 한편으론 군복을 벗어 이로부터 자유로워진 것만으로도 홀가분했다. 그게 책임지는 사람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나는 믿는다.
어제 일어난 참사.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안전에 대한 많은 정책, 조치는 예방에 훨씬 더 큰 비중이 있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에, 이미 그런 안전장치가 부족했던 점은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어쩌면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항상 큰 사고, 이러한 참사가 벌어져야지만 대책을 내놓는 우리 사회에 대해 역시나 실망감이 너무나도 크다. 사실, 압사 사고가 그 전에 일어나지 않았던 건 그 순간마다 개개인이 위험하다고 인식했고,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애초에 미는 상황이 없었기에 그랬을 거라 추측한다.
사고가 발생하고,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자 발 벗고 나섰고 처절하게 심폐소생술을 했다. 경찰과 소방관, 모든 인력도 다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그 전에 불법주차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것도 예방 차원의 문제니,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늦었다. 모두 예방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사실 그보다도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건 그 이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를 책임지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설사, 본인은 예방에 대한 조치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보고받는 위치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애초에 할로윈으로 많은 인파가 예상된다고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랬을 거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사람, 군대로 따지면 장교, 말을 하는 사람들, 정치인, 고위 관료들은 이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게 아니면 그들의 존재 가치가 없다. 그런 관점에서 “경찰 배치로 해결됐을 문제가 아냐.”라는 장관의 말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그 사람 본인은, 여기서 책임을 질 시에, 정치적 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얄팍한 정치공학적 셈법을 하는지 모르겠다. 말로 밥 벌어 먹고사는 사람이 며칠 전에는 경솔하게 말하고 “미안하게 됐다.”하고 말하는 모습 등이 떠오르고, 참 개탄스럽다. 그렇다고 모든 걸 망쳐놓고 내가 잘못했으니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해외로 가겠다고 하고,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기회를 보고 슬쩍 돌아오는 것도 싫다. 또,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도 참 싫다. 결국 다치는 것도 힘없는 개인이고, 이런 책임을 지는 것도 책임을 져아하는 이들이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되겠지.’ 싶은 선에서 책임을 지게 만든다.
즉, 우리 사회의 제일 안타까운 게 제일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항상 회피하고 힘없는 사람이 다친다는 점이다.
이로써 새로운 사회에서 외국인으로서, 30년 가까이 내국인으로 겪어보지 못한 많은 기이한 경험을 하며 한국 사회의 좋은 면들을 깨닫곤 했는데, 내가 근본적으로 공직을 떠나고 싶어 했던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관리자였지만, 줄 없고, 빽 없는 장교로서 언제든지 문제가 생기면 옷을 벗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이 떠오른다. 답답한 이곳에서의 행정을 보면서 훨씬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한국 사회가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갈려 나가면서 지탱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한다.
이태원을 적지 않게 방문했지만 이처럼 특정 시기에 많은 인파가 있을 때 가본 적이 없어 그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고, 5년 전에는 어땠고, 지금은 이렇다는 것도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명백한 책임에 대한 문제다.
또, 할로윈 자체에 대해 미국에서나 즐기는 자본주의 문화를 왜 우리나라에서 하느냐고 누군가는 비난 가까운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자유롭게 문화를 즐기고자 했던 젊은이들이 잘못한 것은 절대 아니다. 적어도 몇몇 이들이 매번 이야기하는 소위 말하는 미국 말고도 ‘선진국’에서 즐기는 문화인데, 전세계에서도 내로라하는 글로벌 도시인 서울에서 즐기지 못할 이유는 무엇일쏘냐. 하지만 앞으로는 해마다, 이 날이 무겁게 받아들여질 듯하다.
많은 청년이 목숨을 잃은 게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