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뭐니해도 머니
살다 보면 오히려 가까워서 더 방문할 동기부여가 떨어지는 곳들이 있다. 내겐 바젤이 그런 곳이었다. 스위스라지만 독일과 프랑스를 포함한 독특한 도시인 탓에 오히려 독일과 비슷할 거라 단정하고 가볼 생각을 하지 않고, 누군가 거길 간다고 하면 ‘거길 굳이 왜?’ 하곤 했다. 웃긴 건 정작 프라이부르크에 살며 다른 곳은 돌아다녀도 여긴 제대로 가본 적도 없었단 사실이다.
바젤은 프라이부르크에서 고속열차로는 40분 남짓, 완행열차로 1시간 내외로 도착할 수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바젤 내 대규모 기차역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Basel Bad Bf (Basel Badischer Bahnhof), 다른 하나는 Basel SBB (Schweizer Bundesbahn). 이름에서 알아차린 이가 있을까. 전자는 바젤 바덴의 역, 즉 바덴 지역이 독일이니 독일의 코레일인 DB (Deutsche Bahn)이 운영하는 역이고, 후자는 스위스 철도회사 SBB가 운영하는 역이다. 전자인 독일역에서 내리면 내리자마자 국경을 상징하는 Zoll, 세관이 있는데 즉 이곳이 이 두 나라의 국경이다. 이곳에 내려 시내로 향하는 트램을 타본다.
사실 여행으론 처음 가긴 하지만, 수차례 지나가 보긴 했다. 그때의 첫인상이 ‘독일이랑 별로 다를 거 없네.’였는데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꽤 낭만 있어 보인다. 시내를 진입하기 전, 웅장한 크기의 Messe, 전시장이 눈에 띈다. 이곳이 그 유명하다는 세계에서 제일 큰 아트페어인 아트바젤이 열리는 곳이라는걸 생각해보게끔 한다. 풍문으로 듣기론, 이곳에 세계 최대규모의 전시회가 열리게 된 계기가 이 바젤의 위치가 유럽 대륙 내에서 제일 모이기 좋았기 때문이란다. 물론 그 이유도 있었겠지만, 여기에 더해 스위스의 자본력이 더해졌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겠냐는 생각을 해본다. 올해 6월에 열리는 이 아트바젤의 입장료만 해도 1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탓에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내겐 보기 좋은 떡에 불과하다.
이제 강을 건넌다. 명실상부 유럽 대륙 내에서 제일 중요한 라인강이다. 라인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스위스의 호수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르다 이곳 바젤에서 방향을 바꿔 북쪽으로 흘러 독일을 지나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거쳐 북해로 빠져나간다. 즉 그말인즉슨, 유럽 대륙 내 최대 항구 중 하나인 로테르담의 화물이 선박을 통해 바젤까지 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스위스의 유일한 항만이 이곳에 있다. 길고 길었던 변덕스러운 유럽의 겨울철이 지나 화창한 날씨 덕에 많은 사람이 강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선 이렇게까지 날씨에 영향을 받았었나 싶지만, 위도가 높은 유럽 대륙은 그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이제 강 건너 바젤의 구시가지를 살펴본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Money, 수많은 은행이 눈에 띈다. 취리히가 스위스 내 제일 큰 은행 도시이긴 하나, 바젤에는 각국의 중앙은행의 중앙은행, 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IS)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은 연합국에 전쟁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는데, 이를 위한 국제기구로 출발했던 게 국제결제은행의 출발이다. 재밌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발 대공황으로 인해 독일이 배상금을 지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이 최초의 목적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 은행이 자금으로 이용하는 건 금이었는데, 지금도 각국 중앙은행의 금을 이 은행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세계 금 시세를 조정하는 건 이 은행이다.
이 은행과 나치와의 연관성은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이다. 1939년, 나치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강제 병합한 후 그들 중앙은행의 몫으로 갖고 있던 23톤의 금을 독일은행에 옮긴 것부터 해서, 나치 독일의 전쟁자금을 직간접적으로 공급했다는 게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전쟁 이후 이 은행은 문을 닫을 뻔했는데, 각국 중앙은행 위 은행의 역할, 즉 국제 금융 거래를 위한 기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살아남았다. 썩 바람직한 역사는 아니다.
이외에도 정말 많은 박물관이 눈에 띈다. 사실 그보다는 사악한 입장료가 더 기억에 남는다. 사악한 입장료와는 무관하게 이곳이 예술의 중심지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다. 꼭 박물관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인상 깊은 건축 양식과 공원, 심지어 구석구석 있는 남성들을 위한 화장실도 예술적인 감성을 지녔다. 꽤 흥미롭다.
식당에 들어갔는데, 웬걸. 스위스의 독일어가 독일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많이 듣긴 했다만, 적는 것조차 꽤 다르다는 사실에 퍽 놀랐다. 몇몇 단어는 뜻을 유추할 수도 있었지만, 어떤 건 아예 해석이 불가했다. 한번은 동료가 스위스 독일어는 언어 발전과정이 더딘 결과라는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는 독일을 비롯한 오스트리아는 근현대에 접어들면서 언어를 더 현대적으로 바꾸는 과정을 거쳤는데 스위스 독일어는 그 과정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이것이 어쩌면 알프스의 험준한 지형 때문에 그렇지 않겠냐는 추측을 했는데, 그 이유를 떠나 정말 이건 다른 언어였다. 바이에른어의 방언 정도의 수준을 넘어선 그 무언가.
스위스는 역시 Money, 돈이 많다는 것이 느껴진다. 예전에 독일 내에서 이사한다고 차를 빌려 이사하는 김에 여행한다고 취리히에 잠시 들렀던 걸 기억해본다. 나는 당시 여긴 같은 말을 쓰지만, 독일의 상위 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차가 최소 독일 3사이고, 모든 건축 양식부터 물가가 훨씬 비싸고 세련되고 고급스럽다는 점이었는데 바젤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이는 독일의 두 배 가까운, 비싼 식비가 한몫했다. 그런 한편 비싼 물가와 더불어 그들의 높은 생활 수준이 부럽기도 하며 이곳에서 일하고 살면 더 좋진 않을까 하는 상상도 다시금 해본다.
이런 경제 여건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 또 세속화라고 뽑을 수도 있겠다. 독일에선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 보였는데, 이는 도심 내 교회가 카페가 된 모습이었다. 스위스 내 교회의 영향력이 얼마나 적고 위태로운지 볼 수 있는 사례였다. 물론 언제까지나 유럽 내 교회가 그 본래의 역할만을 고집하고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향후 10년, 20년 내엔 그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어 가톨릭, 프로테스탄트를 떠나 모든 교회의 생존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 말로만 듣던 풍경이 시내에 있으니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다.
라인강을 따라 걷다가 이번엔 페리를 타보기로 했는데 그 페리를 타고 언덕 위로 올라오니 이곳의 뮌스터, 대성당이 웅장한 모습으로 맞이한다. 당연히 가톨릭이라고 생각한 바젤의 뮌스터가 프로텐스탄트라는 걸 깨닫고 새삼 놀라면서도 방문객들에게 제대 위까지 올라갈 수 있게 배려한 모습을 보며 역시 가톨릭보단 형식에 덜 얽매이는 건가 싶은 생각을 했다. 아니 어쩌면 이는 스위스 교회의 세속화와도 연관이 있는 걸까.
이 뮌스터 옆 광장을 지나다 보니 대학 건물들이 눈에 띈다. 바젤 대학은 여러 석학, 에라스뮈스, 베르누이, 오일러, 니체, 융 등이 거쳐 간 스위스 내 제일 오래된 대학이다. 공학을 전공하는 내겐 이곳보단 취리히 공대에서 훨씬 더 감흥이 깊었지만, 이곳의 유구한 역사를 생각해보게끔 한다.
이렇게 반나절 간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이번엔 종점이 독일 도시(Weil am Rhein)인 트램을 타본다. 먼저 바젤 시내를 벗어나자 빽빽한 원룸 내지는 조그만 아파트형의 주택들이 보인다. 그렇게 세련되고 좋아보이던 시내와 다르게 이곳의 모습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트램 내 가득한 탑승자는 이곳이 서울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들게 했는데, 경제활동 내지는 생활반경이 바젤 시내인 반면, 그들의 주거지는 이곳이 아니라 독일인 경우가 많다는 걸 유추해보게 된다. 스위스 내 국경 도시의 경우엔 비싼 생활비로 인해 거주지가 독일이나 프랑스인 경우가 많은데 그 사례를 직접 마주하게 된 셈이다. 이를 마주하니 좀전까지 이곳에 살면 좋겠단 생각이 쏙 들어간다.
그렇게 다시 독일로 돌아오니 여권 검사를 한다. 재밌는 건 스위스로 넘어갈 땐 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독일로 돌아올 때만 한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국경 쪽이야 동유럽 내지는 중동의 난민이 넘어오는 경우를 대비한다는 핑계가 있다지만 스위스는 굳이 왜?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바젤 여행을 마친다. 한때 테니스 황제라 불리던 로저 페더러(이제 황제는 조코비치가 아닐까)의 고향으로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한 이 도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으나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임엔 분명하다. 뭐 페더러만큼 돈이 많으면 어딜 가나 다 좋지 않겠냐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