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적인 연말 연휴

by 송다니엘

새해가 밝았다.


연말엔 같이 사는 고양이 녀석의 고향을 가게 됐다. 사실 이 고양이의 첫 집사는 그 집주인이기도 하다. 역사는 이렇다.


아흔 살의 할머니는 어느 날, 인생이 무료했는지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나선다. 하루는 노묘를 어디선가 데리고 와서는 한동안 있다가, 그 노묘가 떠나고는, 같이 사는 세입자인 유학생에게 고양이를 데려올 것을 이야기한다. 유학생은 그 말처럼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오는데..


노묘와 다르게 에너지가 넘치는 새끼 고양이를 노인은 감당할 수 없었다. 그건 고양이도 마찬가지. 청각장애를 가진 노인이 본인과 놀아주기는커녕, (고양이 기준) 윽박지르고, 제대로 된 케어를 해줄 리가 만무하니 이 고양이도 처음부터 주인인 노인과는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고양이를 제대로 보살펴준 건 역시 세입자. 고양이는 정원이 딸린 큰 집에서 노인의 방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그만 세입자의 방과 정원에서만 지낸다.


유학생이 떠나는 날 (고양이와 함께), 노인은 정말 많이 슬퍼했다고 한다.


이젠 이 할머니와 떨어져 지낸 지 어언 2년 반. 이 이야기의 모든 시작이 된 곳을 나도 한번 가보기로 한다.




두 시간을 달려 만하임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는 아주 반갑게 맞이한다. 거의 눈물을 글썽이는 듯했다. 고양이는 반면, 빛의 속도로 노인을 피해 예전 유학생이 살던 아랫방으로 꽁지 빠지게 도망갔다.

할머니를 처음 본 나는 왠지 나의 할머니들이 생각났다. 아흔 두 살 치곤 정말 정정했다.


시장하냐고 물으니, 항상 배고프다고 하여 바로 가자마자 밥을 했다. 옆에서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더니 맛있겠다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할머니는 사람이 참 좋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집은 아주 흥미로운 것 천지였다. 할머니가 워낙 오래 살았다보니, 특히 책 컬렉션이 어마어마했다.


수많은 책 중에서도 특히 처칠의 2차세계대전사가 제일 눈에 띄었는데, 무려 1949년에 쓰였다. 할머니에게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 이 책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니, 본인이 역사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한다.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닌 그녀는 영어를 배우러 고등학교 때 영국으로 건너갔는데, (집이 꽤 살았던 모양이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처칠 책을 읽으라고 주었다고 한다. 그 책을 아무도 읽지 않았는데 본인만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여, 원래 본인이 받을 수 있는 졸업 성적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며 뿌듯하게 이야기했다.


이외에 괴테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집에 있는 기압계가 괴테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한다. (토리첼리의 수은계와 비스무리한) 지금 생각해보면, 방 곳곳에 돌이 많은 것도 괴테처럼 돌을 모은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는 온도만 보는 게 아니라 기압을 보고 날씨가 흐릴지 맑을지 보고 판단하는 게, 요즘처럼 디지털 기기로 다 들여다보지 않아도 본인 나름대로 세계를 다 바라보는 게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매일 같이 여러 신문을 보니, 세상 돌아가는 일은 다 꿰뚫고 있다.


알고 보니 소싯적에 할머니는 변호사였다. 스위스, 영국, 미국에서도 13년. 그리고 북극여행을 하던 중 만난 남편과 만난 이래로 독일에서 살고 있다. 우리에게 한국인으로 계속 살아가라며, 본인도 독일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도 스위스인으로, 독일에서 투표하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대통령을 탄핵한 우리 국민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며. 한국은 더 위상이 높은 나라가 될 것이라며.


우린 할머니를 생각해 아펜젤러 퐁듀를 샀는데 (독일 슈퍼마켓 어디에 가든 있다.) 막상 먹으려고 하니, 양이 이것밖에 안 되냐고 한다.


‘그래서 내가 바로 나가서 사 올까?’ 물어보니, 전혀 격식 차리지 않고 다녀오라고 한다. 우리처럼 괜찮다며, 사양하는 건 전혀 모르는 할머니다.


어쨌든, 그렇게 6인분 어치의 퐁듀와 뱅쇼, 맥주를 배불리 먹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이제 집에 가서 너희가 해먹을 수 있겠지?’ 했는데, 그럼 우리한테 이 퐁듀 집기류 다 줄 거냐고 물으니, 너희가 직접 사라고 한다. 스위스 할머니라 그런지 쉽게 다 내어주진 않는다. ^^

다음날, 아침으로 빵에 버터와 치즈를 발라 먹으며, 우리가 가져온 카망베르 치즈를 가져가라고 한다. 우리야 항상 마트 가서 살 수 있으니, 할머니 보고 먹으라고 하니, 본인은 이 치즈가 물렁물렁해서 싫다고 한다. 그리하여, ‘왜 스위스 치즈는 맛있고, 프랑스 치즈는 별로야?’ 물으니, 할머니는 똑같은 에멘탈 치즈도 독일 Allgäu 것이 있고, 스위스 것이 있는데, 스위스가 두 배는 비싸지만 훨씬 맛있다고 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어, ‘아니 둘 다 알프스에서 온 건데 왜 독일 건 맛이 없다고 하는 거야?’ 물으니, 할머니는 세 가지 이유를 댄다.


1. 독일 건 물컹물컹하고 숙성이 제대로 안 됐어.

2. 소들이 사는 환경이 좋지 않아.

3. 애국심.


애국심 부분이 인상 깊었다. 그러고 보면, 이 할머니가 독일 사람인 것 같지만, 완전히 생각하는 게 스위스인이다. 처음 나를 만나고 내가 재생에너지 쪽으로 일한다고 하니, ‘돈 많이 벌겠네!’ 하고 박장대소했다. 할머니 같긴 하지만, 돈 계산이 철저하다는 점도 생각해보게 한다. 뭐 다른 말로 하면 조금 짠순이긴 하다. 괜히 스위스 사람들이 돈이 많은 게 아니다. (스위스 은행에 알고 보면 엄청나게 많은 재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결정적으로 스위스인인 증거는, 할머니가 독일어를 제일 편하게 쓰는 줄 알았더니, 본인은 스위스식 독일어가 모국어인지라, 독일어나 영어나 모두 똑같은 외국어라고 말해준다. 사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워낙 영미권에 오래 살았고, 수많은 책을 양쪽 언어로 다 읽다 보니 모든 언어가 유창하다. 할머니의 서재에는 심지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외에도 북유럽 국가 언어의 기초적인 사전도 있었다. 이 할머니는 소싯적에 안 다녀본 데가 없는 듯하다. 남편을 북극 가는 도중에 만났으니, 물어보진 않았지만 정말 다 가보았을 테다. 살아 있는 백과사전 그 자체.


유서 깊은 집에 흔히 가면, 우리가 영화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림이 많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할머니 집이 꼭 그렇다. 그래서 그 인물 하나하나마다 물어보기로 했다. 본인은 취리히 근처 작은 마을 출신이고, 본인의 할아버지가 초상화의 주인공, 스위스 교회의 목사였고, 다른 사진은 본인의 할머니라고. 당시 농장이 있었는데, 와인을 매번 사던 어떤 화가가, 어느 날 그 부부를 그려주겠다고 그린 그림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다른 벽에는 찢어진 여자아이의 초상화가 있다. 이건 본인 남편의 할머니 그림인데, 나치가 남편 집에 들이닥쳐 저 초상화에 총을 쐈다고 말한다. 남편은 유대인이었고, 그래서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갔는데, 남편의 부모님은 이곳에 남아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한다. 그러고 남편이 미국인이 되고, 전쟁 이후에 그분들을 미국으로 모셨다고. 홀로코스트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관련된 인물을 내 인생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정말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있는 듯했다. (어쩌면 내가 다른 이들에게 그들의 속사정을 깊이 물어볼 일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이제 갈 때쯤 되니, 할머니는 너희가 가는 길에 가다보면, 유명한 수도원이 있다고 하니, 내가 ‘Maulbronn’ 아니야? 하니, 모르는 게 없다고 한다. 나는 더 알려달라며 자주 오겠다고 했다.


또 기특했는지, 갖고 가고 싶은 책은 다 가져가라며, 하늘나라에서는 모든 책을 돌려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면 네 소중한 처칠 책도 가져가도 되냐고 물으니, ‘요 녀석’ 하며 웃더니 허락했다. 책을 찾아 보여주니, 한참이나 들여보다가 본인이 70년 전에 쓴 본인의 이름을 보여준다. 정말 유서가 깊은 책이다.


‘독일어로 번역된 것으로 보면, 네가 책 내용도 알고 있으니 독일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라고 하니, 나는 ‘이건 영어로 보고, 네가 준 괴테 책을 또 독일어로 볼게.’ 했다. 나도 지금부터 원문으로 더 보다 보면, 언어의 수준이 오르지 않겠는가.


갈 때까지도 고양이 녀석은 할머니와 완전히 벽을 허물고 잘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조금이나마 만지고 간식을 주기도 했다. 사실 할머니는 고양이를 자기 세입자에게 원치 않게 뺏긴 것에 굉장히 속상해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본인은 사랑을 주는데, 반대쪽에서 싫어하니 또 얼마나 상처받겠는가. 그래도 우리 모두에게 좋은 여행이 되었다고 느낀다.

그나저나 할머니가 준 반지를 옛 세입자가 잃어버렸다. 어제 놀러 간 Speyer에서 빠트린 건지, 집에 흘린건지. 출발했다가 차를 돌려 주차한 곳에 갔는데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건대 할머니가 아주 진귀한 물품을 주진 않았다고 결론 짓기로 했다. 스위스 할머니니까. 그래도 진귀한 책을 받아온 난 아주 행복할 따름이다.


할머니는 유학생에게 성공을 좇는 아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름대로 우린 고양이와 함께 성공해서 돌아가게 되었다. 할머니도 이 모든 게 잘 된 일이라고 한다. 불편한 몸에도, 결혼식에 오고 싶어하는 듯하다. 두고 보자. 그녀의 아들과 함께 프라이부르크에서 만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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