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결혼식

by 송다니엘

수없이 큰 노력과 준비를 쏟아부은 결혼식은, 여느 행사에서의 퍼포먼스, 발표와 같이 순식간에 끝났다. 물론 외국에서의 결혼식은 순식간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그 결과물이 하룻동안 녹여 나왔다.


우리의 결혼식은 전통적인 방식과는 꽤 거리가 멀었다. 한국 관점에서나 독일 관점에서나.


먼저, 한국 관점으론 두말할 것도 없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선 식이 끝나고, 식사로 바로 이어져 행사가 끝나는 것과 달리, 유럽 대륙에서의 결혼식은, 예식은 시청이나 교회에서 진행되고 그 이후에 한두시간 남짓 샴페인을 마시며 진행되는 축하의 시간, 이후 밤 늦게까지 피로연이 진행된다. 요즘은 이 모든 과정을 간소화해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즉, 피로연을 아예 생략하거나 가족들과의 소박한 결혼식만을 진행하는 등등. 어찌됐든 거의 삶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오고, 적어도 모든 결혼식은 한국에서만 가 본 내겐 쉽게 그려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편 독일 관점에서, 우리는 보통 많은 이들이 그렇듯 마음에 드는 결혼식장 내지는 피로연의 장소를 예약하고, 결혼 일정을 잡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프라이부르크의 대성당에서 결혼식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확인 이후에 일정을 계획했다. 그렇게 지금으로부터 약 반 년전에 성당으로부터 받은 연락으로 결혼준비를 시작했는데, 하나둘씩 주변 친구, 직장 동료들에게 물어보고, 확인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한 가지 재밌는 일화는, 올 연초에 피로연 장소를 물색하러 ‘혼인 박람회’를 갔는데, 그곳에 있는 부스의 담당자들에게 5월 10일에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그들은 ‘몇 년도?’라는 답변을 했다. 우린 그때마다 ‘올해!’라고 대답했지만, 5월 10일엔 그 장소들이 모두 예약되어 있었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은, 독일인들은 피로연 장소를 대개 최소 1년, 길게는 2~3년 이전에 예약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로선 '예약을 그렇게 하고, 결혼한다는 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여러번 해보게끔 했다. 물론 그것이 그들의 약혼이라는 개념이겠다만..) 유일하게 개중에 예약이 가능한 곳이 있었는데, 그 당시엔 너무 좋다고 했거늘, 막상 시간이 지나니 시내에서 꽤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피로연을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았다. 결혼식 두 달을 앞두고도 다른 장소를 물색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의견 조율, 때로는 갈등과 충돌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나 역시 이미 선배 장교부터, 인생의 선배들로부터, 또 나의 친구, 동기들, 심지어 후배들까지, 이미 꽤 많이 결혼을 올린 이들이 많은지라 이런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음에도 그것이 나의 일이 되니 그다지 현명하게 처신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새로 시작한 직장과 더불어, 말도 잘 안 통하고, 잘 알지 못하는 독일 성당과의 의사소통과 처음에는 소박하게 하려던 결혼식에 그래도 꽤 근사하게 해보겠다는 생각들, 그리고 풍족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 웬만하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자는 생각들이 여러 선택지를 더욱 고민하고,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마지막 1~2주일은, 살면서 그때만큼 피곤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심신이 지쳤다. 힘들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응원들이 꽤 힘이 되곤 했다. 결혼식 전날까지 피로연에 올 손님들을 위한 선물 포장을 부랴부랴 하는 등 고됐고, 결국 몸이 퍼졌다.




결혼식 당일.

원래는 독일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독일어가 어눌한 내가 아닌 반려자가 대부분 담당해왔다면, 당일에는 그럴 수 없었다. 사람은 정말 많았고, 우리의 결혼식은 고작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 우리의 행사는 약속한 대로 대성당 디지털 안내 화면에 뜨지 않는다거나 미리 주문한 꽃이 없는 등 계속 뛰어다닐 일만 있었다. 무엇보다 한 시간 넘게 혼자 관광객 사이에서, 대성당 정문 앞에서 혹시나 올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니,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결혼식 시작 30분 전을 기점으로 꽤 많은 사람이 오기 시작했고, 믿을만한 친구들에게 내가 맡은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놓을 수 있었다. 다만 결혼식이 시작하는 시간, 불과 2~3분전까지, 아니 시작할 시간이 조금 지났음에도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빼먹기도 했었다.


그렇게 대성당을 혼자 뛰어다니다 마침내 예정된 시간에서 5분 남짓 지연된 채로 나는 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예식 1~2분전까지도 얼굴이 보이지 않던 오르가니스트는 시간에 딱 맞춰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멘델스존의 결혼 행진곡에 맞춰 신부가 입장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라도 이제는 심드렁해진 나였음에도, 내 결혼식의 신부의 입장은 퍽 크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대성당 앞의 줄을 가득 메운 우리 결혼식의 하객들을 보니 정말 내가 결혼하는 게 사실이란 걸 실감케 했다.

성당에서의 예식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니 더 근사하게 진행됐다. 이곳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공부하시는 우리나라 신부님들의 우리말로 진행되는 미사를 이 대성당에서, 수많은 국적의 사람들과 진행되었다는 게 참으로 뜻깊기도 하다. 음악도 아름다웠고 800년이나 된 이 거대한 성당을, 미사 때 때때로 천장을 쳐다보거나 멀리 쳐다보면 엄청나게 느껴지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되묻듯, “정말 프라이부르크 뮌스터에서 결혼을 한다고?” 하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내가 그 순간에 되되묻기라도 하듯.


미사를 마치고, 이 아름다운 성당에서 사진을 찍고, 바로 이어진 출구에서 우린 미리 준비된 샴페인으로 축하했다. 이런 과정들이 매끄럽게 될 수 있었던 건 나의 친형의 도움이 굉장히 컸다. 살면서 형을 합법적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날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테다.

그렇게 두시간 남짓, 아주 훌륭한 와인으로 취기가 오를 때즈음 축하의 시간이 지나고, 피로연 장소로 이동하게 됐다. 도착한 피로연장은 검은숲과 더욱 가까이 있고, 한적한 이 시민 문화회관을 통째로 우리가 쓸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성당과 더불어 이 피로연장에 대한 감탄을 연발했다. 결혼식 며칠 전까지도 변덕스럽던 날씨는, 적어도 그 날만큼은 환상적이었다. 운이 좋다면 좋다.



계속 생각하지만, 우리의 결혼식을 보러 수없이 먼 거리를 와서, 5월 10일이라는 하루의 통째를 오직 우리를 위해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더불어 계속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어준 사진작가, 그리고 많은 고생한 가족들까지. 그렇게 우리의 결혼식은 끝났고, 다음날 그리스로 여행을 떠나 다시 돌아왔다. 이전에도 고양이 녀석과 함께 가족이랑 생각했거늘, 이 많은 시간을 함께 겪고 나니 그 애틋함이 더 깊어지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신부님의 강론, 아가서 3장 4절이 생각난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과정이 성경에서 서술된 내용이다.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나 그이를 붙잡고 놓지 않았네"


꽤 심드렁했던 교회에 대한 믿음도 이번 계기로 많이 변하게 되었음을 느낀다. 20대 초반에 꽤 순수했던 시절처럼, 성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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