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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서의 신혼여행

by 송다니엘

결혼식이 끝나고 정신도 차리기 전에 바로 그리스로 떠났다. 내겐 항상 선망하던 곳이기는 했다.


공항에 도착해 버스를 타자마자, 낙후된 인프라가 눈에 띈다. 그리스가 유로존 경제 위기 이후에 최근에 경제가 살아났다는 뉴스를 어디선가 봤었는데, 적어도 내 눈엔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뭐 이것마저도 엄청난 경제 위기 이후보다는 나아졌다고 봐야하는 것인지는 그 전에 온 적이 없어 알 수가 없다. 너무나도 많은 차량과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교통수단은 기존에 내가 여행했던 여느 유럽의 국가들보다 훨씬 불편하고 낙후되어 있었다.

마라톤이라는 지명…!


한편, 가는 길에 보이는 마라톤이라는 지명이 눈에 띄었다. 마라톤 전투가 있었던 곳이 지척에 있다는 게, (물론 그렇겠지만) 신기했다. 역사책, 성경에서 보는 지명들이 계속 눈앞에 보인다. 코린트, 테살로니키 등등.


시내에 도착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수학ㆍ물리 시간에만 보는 문자가 온 곳에 널려 있다는 것. 몇몇 문자는 헷갈리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이해 가능하였다.


교통 체증 끝, 종착역은 신타그마, 아테네의 최중심부다. 육지에서 맛보기 어려운 해산물을 먹으려고 둘러보다가 한식당이 보여 들어갔다. 재밌는 건 종업원이 우리말을 모두 못하는 점이었다. 다만 식사는 제법 먹을만했다.




다음날, 아테네 여행의 백미인 아크로폴리스로 향한다.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조금만 걸어가니, 언덕 위에, 웅장한 자태로 이리로 오라고 손짓한다.


골목골목엔 고양이가 어찌나 많은지, 고양이 집사인 우리는 그 눈을 떼기가 어렵다. 여기 사람들은 밥그릇에 밥이 꼭 채워져있는 등 고양이를 사랑으로 잘 케어해주는 편이긴 한데, 고양이 개체 수가 너무 많아 보여 그들이 향후에 너무 많아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까지 한다. 10년 후, 20년 후엔 지금보다 두 배보다도 훨씬 더 많아지는 건 아닐까?


언덕을 오르는 과정에 수많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적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입장하는 곳엔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다. 그런 이유로, 2500년이 된 서양 문명의 시금석인 이곳에서 호젓함을 느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른 물가는 훨씬 싼데, 관광 입장료는 사악하기 그지없다. 물론, 입장할 가치는 분명히 있다.


그곳에서 한참 전에 읽었던 그리스 내지는 아테네의 역사, 전성기였던 페리클레스 시절의 웅장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 당시에 대다수 지어진 이 건축물이 후대에 로마에 정복된 이후에도, 이후 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그럭저럭 유지되던 이곳은, 오스만투르크가 정복하고 모스크로 변경되었는데, 이후 베네치아 공화국의 한 장군이 폭파하는 바람에 지금의 불완전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인들이 수많은 조각들을 떼어가서 영국 박물관에 옮겨놓았으니, 이슬람보다도 지금의 서구 국가들이 훨씬 탐욕적이었다는 걸 다시금 생각게 한다.

인류를 위한 최초의 극장이었던 디오니소스의 극장, 아테네의 신전, 로마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이자 최고의 장군이었던 아그리파의 흔적까지. 그 역사적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이 포로로마노에 대해 극찬하곤 하지만, 사실 아테네에 남아있는 유적이 더욱 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 찬란했던 문명이 지금 쪼그라진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관람을 마치고 해산물을 곁들인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종업원에게 바로 앞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가볼법 하냐고 물었다. 대답은 인상적이었다. 종업원이 하기 어려운 이례적인 반응이었는데, 그는 반드시 방문해야 한다고 했다 (“You must visit to know Greek history”). 그래서 가기로 했다.


박물관의 외관은 엄청나게 모던했는데, 그 안에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 내지는 도자기, 항아리, 그릇들이 있었다. 옛 그리스의 역사를 다시금 상기하고, 그리스 신화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지만, 가격 대비 훌륭했냐는 것에 대해서는 대답하기가 어렵다. 정작 그리스의 제일 아름다운 유물들은 프랑스, 영국, 이태리 등등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점을 다시금 생각게 했다. 이와 별개로 박물관에서 보는 아크로폴리스의 경치는 볼만했다.


그곳을 떠나 올림픽 경기장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보이는 로마의 오현제 중 하나였던 하드리아누스의 문과 제우스 신전도 잠시 살펴본다. 앞면에는 “This is Athens, the ancient city of Theseus”, 반대편에는 “This is the city of Hadrian and not of Theseus”라고 적혀있다.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이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를 구별하는 것처럼, 하드리아누스의 문도 고대 아테네와 본인이 건설한 도시와의 구분과 같은 개념이었겠거니 싶은 생각을 함과 동시에 정복자의 여유도 엿볼 수 있었다.


이후, 야경을 보러 언덕을 올라왔다. 마치 아테네의 남산 같은 곳이랄까. 저 멀리 아크로폴리스와 올림픽 경기장이 보인다. 대도시의 분주함 속에 고대의 흔적이 남은 이곳은 참 멋진 도시다. 다만, 이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다음날, 우린 시내 구경을 뒤로하고, 차를 빌려 바다로 향하기로 했다. 원래는 아테네가 속한 아티카를 벗어나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항구를 가려 했으나 렌트카 직원은 그곳엔 해변이 없다며 근처의 어떤 곳을 추천해준다. 처음 듣는 지명이라 오잉했지만, 알고 보니 그가 안내한 곳이 남쪽 끝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이 있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차량이 빽빽한 시내를 통과하니 엄청난 절경이 펼쳐진다. 프랑스 남부와 이태리 제노아 근처도 각각 프렌치, 이탈리안 리비에라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곳을 아테네 리비에라라고 부른다. 리비에라는 해안선이라는 이태리어로 이런 아름다운 바닷가를 부르는 말이다.

동해안 7번 국도처럼 아름다운 해안길을 달리니 운전에 대한 피로도는 느껴지지 않는다. 한 시간 정도 달려, 신전으로 향했다. 역시 입장료는 사악했지만, 바닷가 절벽 위에 있는 신전을 보니 참으로 멋지다. 오히려 파르테논 신전보다도 호젓한 것이 더 운치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곳이 지리상 육지의 끝인지라, 군사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요충지였던지라, 항구도 있었고, 심지어는 어떤 배가 가라앉은 잔해가 이 남아 있다고 한다.


역사적인 곳을 지나 다시 시내로 돌아오는데, 교통체증이 말도 못한다. 어쩜 이럴 수가 있나 싶다. 독일과는 너무나도 생경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짧은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더 많은 곳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들은 가보지 못한 것이 특히 아쉬웠다. 사실 신혼여행에는 많은 이들은 휴양만 하거늘, 내 욕심이 과한지도 모르겠다.


추후에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등 그리스에 대한 역사, 문학 등을 본 이후엔 괴테나 하이데거 같은 이들이 그랬듯, 이곳을 다시 오고픈 마음이 강렬해지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한편, 로마보다도 더 유서 깊은 역사와 서양 문명의 뿌리임에도 그 감동이 덜한 건 그들의 인프라가 낙후되었기 때문이란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본다.


그런 이유로, 다시 방문하는 그날엔 그리스가 지금보단 더 나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조그만 바람도 가져본다. 다만, 더 많아지는 관광객에 그럴 가능성이 더 없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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