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산임수의 명당?
학회의 공식일정이 마무리되고, 잠을 고작 세 시간쯤 잤을까. 일어나서 이미 예매한 기차를 탔어야만 했다.
두 시간 반 정도 지나니, 아름다운 잘츠부르크를 지나, 멋진 풍경이 나오며 목적지인 인스부르크에 출발한 지 네 시간 정도 후에 도착했다. 일단 짐부터 숙소로 끌고 가는데 저 멀리 해발 2300m의 알프스의 봉우리가 도시 뒤에 배경으로 자리 잡는다.
예전엔 잘츠부르크가 도시 뒤에 있는 산 풍경으론 제일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인스부르크가 그보다 자연광경만큼은 더 위인 듯하다 (그야말로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최초 계획은 다음 날 등산하는 것이었는데, 불확실한 기상예보 때문에 그냥 당일에 저 산만 올라가는 것으로 계획을 틀어잡았다. 이럴 거면 등산화를 괜히 들고 왔나 싶다가도, 아예 안 쓰면 정말 괜히 들고 온 것이 되어 버리니, 한 번이라도 쓰기로 한다.
일어나고 온종일 제대로 먹질 않아서 해장할 겸 식사할 곳을 찾는데 한국 식당이 보인다. 국물 있냐고 물었는데, 국물은 없고 밥을 시키면 미소 된장국을 준다고 했다. 매콤한 불고기를 시켰는데, 밥도둑이어서 추가 공깃밥까지 시켜서 싹싹 긁어먹었다.
한 시쯤 됐을까. 조금이라도 빨리 올라가려고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가, 미리 끊어놓은 인스부르크 여행 카드를 잘못 이해하는 바람에 다시 시내로 돌아가야만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10분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꽤 무리가 됐다.
마침내 푸니쿨라를 거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사실 처음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왜? 벌써 이런 알프스의 광경을 본지 이미 여러 번이고, 내겐 독일의 최고봉인 Zugspitze의 풍경이 훨씬 더 장엄했고, 이건 그걸 진입하는 것 자체가 정말로 황홀한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시내 바로 앞에 있는 인스부르크의 알프스는 그보다 감흥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막상 올라가서 도심 쪽도 바라보고, 도심 뒤쪽의 알프스의 봉우리들도 바라보니 꽤 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이곳저곳을 이리저리 돌다가 원래 가려고 했던 하이킹 길을 떠나기 직전에 알게 됐다. 원래는 그냥 가려고 했다가, 다시금 이곳을 걸어가 보기로 한다. 이름도 Goetheweg이다. 괴테가 이 길을 걸어서 그런 건 아니고,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다.
걷다 보니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더 펼쳐졌다. 다만 한 40~50분쯤 걸었을까. 몸은 정말 피곤한데, 바람까지 아주 세차게 불어오는 상황에서 비바람이 올 것이라는 예보에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그 당시 인터넷도 안 됐는데, 사실 조금만 더 걸으면 Zugspitze가 보이는 전망대도 있었는데... 아쉽게 됐다.
사실 10월에 회사에서 인스부르크 근처로 워크숍을 가게 되는데, 그때 올지도 모를 일이다.
저녁 먹기 전 낮잠을 자러 간 숙소에서 한 친구가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군대 갔다 왔냐고 하여, 꽤 오래 있었다고 하니 본인은 미군이라고 한다. 아프간, 이라크 파병도 갔다 왔다고 하여 그렇구나 싶었다. 조금의 휴식을 취하고 갔던 이탈리아 식당은 꽤 괜찮은 피자를 팔았다. 시칠리아에서 온 이태리인들이 하는 식당이었는데, 사람이 정말 많았다.
숙소 아래에 Bar도 있어 맥주를 한잔하러 갔더니, 그 미군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어떻게든 여성과 대화를 시도하려고 했는데,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전형적인 미국인처럼 대화하는 것이 영 매력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 친구를 뒤로하고, 밤거리를 걷다가 하루를 일찍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꽤 일찍 일어나 한국의 광장시장 같은 곳에서 빵과 딸기를 사서 먹는데, 그 가격이 사악했다. 시장이 가격이 합리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덤탱이를 씌우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이외에도 아주 좋은 식재료가 많았는데, 아무래도 이탈리아와 가깝다 보니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아침을 그렇게 먹고, 9시부터 개장하는 박물관 투어를 시작했다. 비가 오락가락했고, 내 컨디션이 또 등산을 허락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다지 구름에 가려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그다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첫 번째 행선지, 왕궁부터 가본다. 수도인 빈 말고도 인스부르크에도 왕궁이 있다. 꽤 크고 나름 웅장했다.
이는 막시밀리안 1세 때 만든 것이어서 그런지, 그에 관련된 이야기가 꽤 많았다. 예전에 Speyer에 갔을 때, 그 성당에 그와 관련된 조각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얼핏 봤던 것 같은데, 이에 관련해서 영주의 옛 집주인 할머니가 말하기를, 그는 황제였지만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던 게 기억났다.
박물관에 있는 평가들도 다 그러했는데, 후대에 마케팅이 잘 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있다.
뭐 사실, 황제로 엄청나게 많은 전쟁을 치뤘는데, 그를 휴머니스트에 가까운 사람처럼 평가하는 게 마케팅이 아니고 뭘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부터, 그의 손자인 카를 5세까지가 합스부르크의 최전성기였으니 그런 후대의 성공적인 평가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각설.
그의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자가 황제가 되면 당나귀보다 못하다는 이야기였다.
Wie meine Mutter immer sagte: Ein König ohne Bildung ist nicht mehr als gekrönter Esel.
이런 말을 비롯해 그가 꽤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면모가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으나, 전반적으로 그의 좋은 면모만을 부각시키려고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의 삶을 조금 더 알아보자.
그의 첫 아내는 부르고뉴, 버건디의 공주였다. 그 당시 부르고뉴가 게르만, 프랑스의 어느 국가보다도 발전된 국가였다고 한다. 그 영토가 지금의 네덜란드, 벨기에까지 아우르는 큰 국가였고, 막시밀리안의 아버지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그를 그곳과 혼인하게 했는데, 그럼에도 실제로 그는 아내를 무척 사랑했다. 하지만 그 공주가 스물다섯에 요절했는데, 그 공주가 본인의 자식들에게 본인의 영토를 다 주기를 원했다. 근데 이제 그곳에 사는 귀족들은 그 영토를 빼앗기기 싫어 아버지의 양육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키우지도 못하게 하는 게 무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다음 부인은 밀라노 출신의 귀족이었는데, 본디 높은 귀족이 아니었던 그들은, 그와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꾀했고, 그는 그 가족의 부를 얻으려 했다. 지금 밀라노에 있는 많은 궁, 성들이 그 가족의 이름 Sforza이다. 원래는 그냥 닉네임이었는데, 그게 귀족 가문의 이름이 되었다.
그와 관련된 역사는 인스부르크 곳곳에 있었다. 왕궁 옆에 있는 교회 (Hofkirche)에는, 그의 무덤이 있었는데, 그의 실제 시신은 이곳에 없고, 무덤만 있다. 거기에 24개의 실제 사람 사이즈의 조각품이 서 있다. 이걸 보고, 나폴레옹이 본인의 무덤을 화려하게 지으라고 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인스부르크에서 그를 지금까지 추앙한 이유 중 하나는, 시내 중앙에 지금도 인스부르크의 랜드마크인 황금 지붕 건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볼 때는, 저게 왜 유명한 거지 싶었는데, 지나가면서 보면 볼수록 꽤 매력적인 건축물이었다. 건축물 뒤로는 알프스가 보이는데... 서울로 따지면 광화문 같은 셈이다.
지금은 그곳에서 결혼식을 하기도 하고, 일요일 오전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이들이 트럼펫을 불고 공연을 하기도 했다.
다시 왕궁으로 돌아간다.
궁전 위층은 모두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 자식들에 관련된 것이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것에 그다지 흥미는 가지 않았지만, 지금 보니 모두 비슷하게 생긴 게 눈에 띄었다. 모두 마리아 테레지아 쪽의 유전을 세게 받았는지, 그녀의 남편 얼굴은 후손에 거의 없는데, 그녀의 얼굴만 모든 자식들에게 강하게 남아있었다. 아니 워낙 합스부르크가 근친혼을 많이 해서 그런지 비슷하게 생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강력하던 권력이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완전히 망해버린 걸 보며, 그게 근친혼 때문에 지능이 떨어져서 그랬나 싶은 생각도 잠시 해봤다.
그렇게 궁전을 비롯해 왕의 무덤이 있는 성당과 그곳에 딸린 민속박물관, 황금지붕, 대성당까지. 거의 볼 수 있는 건 다 봤다. 이 정도면 인스부르크 카드를 뽕을 제대로 뽑았다. 그리고 이 인스부르크 카드로 자전거도 빌릴 수 있다 하여 그곳으로 가는 길에 이곳의 개선문과 2차세계대전 때 자유를 위해 희생한 오스트리아인들을 추모하는 공간도 지나가면서 본다.
그 메인 스트리트의 이름이 마리아테레지아 거리이고, 이를 가로지르는 게 막시밀리안 거리이니, 이 둘이 인스부르크 역사의 거의 8할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자전거를 막상 빌리려고 하니... 사실 너무 피곤해서 쉬어야 하나 싶었는데, 막상 청바지를 벗고 반바지와 가벼운 티셔츠로 갈아입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Inn 강을 따라 쭉 달리는데, 알프스의 봉우리가 쭉 펼쳐지는 게 보기 참 좋았다.
이 Inn은 스위스에서 발원해 독일의 Passau에서 도나우와 합류한다. Passau의 전망대에는 세 강이 모이는 지점이라고 예전에 봤던 게 떠오른다.
각설.
생각보다 자전거가 좋지는 않아서 속도가 잘 나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 컨디션 때문일 수도 있고. 그렇게 가다 보니, 4년 전 유럽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던 스키장 (Kühtai)의 표지판도 보였다. (그때는 몰랐는데, 꽤 유명한 스키장이었다. 우리로 따지면 용평 스키장, 하이원 같은 것이었을까?)
원래는 근처 마을까지 가려다가 시간이 애매할 것 같아 다시 돌아오기로 한다. 돌아오는 길은, 어쩌다가 산 쪽으로 올라와 찻길로 달리는데 꽤 아찔했다. 꽤 스릴이 넘치기도 했는데, 다만 속도가 너무 나지 않아서 재미가 조금 덜했던 건 사실이다.
시내에 진입할 무렵, 인스부르크 공대도 보였다. 학위 논문과 그 이후의 모든 연구에 제일 참고가 됐던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저기 어딘가에서 연구하겠구나 싶다. 여러모로 자연, 도시의 규모, 대학 도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등 모든 점이 프라이부르크와 비슷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시내로 진입해서 이번에는 강을 따라 인스부르크를 또 벗어나 보았는데, 반대쪽은 처음에 갔던 곳보다 그다지 좋진 않았다. 공장이 꽤 많았고, 올림픽 선수촌이 있기도 했다. 그렇게 이곳저곳 쭉 타다 보니 도시 안팎으로 구석구석 보지 않은 곳이 없게 됐다.
저녁엔 강가 바로 앞에 있는 다른 이태리 식당을 갔는데, 주인장이 독일어 못하고, 영어도 못하면서 이태리어로만 말하는 게 참으로 웃겼다. 나의 broken italian에, 그는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그걸 옆에서 보던 미국인은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듣냐고 물어 이태리 친구 때문에 이태리어를 아주 조금 안다고만 했다. 그렇게 먹은 아마트리치아나는 아주 훌륭했다. 빵으로 소스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먹었는데, 그가 그릇을 치울 때 스카르페타라고 말하니, 기특해 했다.
다음날.
이번에도 아침에 푹 자고 떼우고 좀 걷다가 도저히 더 이상 볼거리가 없어서, 성당에 다소 일찍 들어갔다. 한참을 기다리면서 오랜만에 매일미사와 독일어로 된 미사 내용까지 보고도 시간이 남았다. 그렇게 보고 독일어를 유심히 듣다 보니, 미사의 이야기가 훨씬 더 잘 들린다.
그러고 보면, 며칠 전 미국인과 영국인이 하는 이야기도 100% 다 들리지는 않았는데, 독일인들의 대화를 듣는 것도 이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차이는 내가 아는 단어가 훨씬 적다는 점과 내가 말을 더 못한다는 점. 독일어 자체도 독일인들은 똑바로 말을 안 한다거나 슬랭을 섞으니 더 어려운 셈이다. 영어도 오히려 제2외국어로 쓰는 이들과 대화하는 게 훨씬 쉬운 것처럼, 독일어도 그런 이들과 소통하면 무슨 말인지 대충 다 알 수 있다. 여러모로 독일어에 대한 노력을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밌는 건 빈에서는 식당에서 독일어로 하면, 못 알아듣는 이들이 꽤 많다는 점이었다. 빈도 베를린처럼 오히려 영어가 더 잘 통하는 것이다.
그런 한편, 관광지에는 워낙 관광객이 많으니 현지인들이 내게 당연히 영어부터 쓰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독일어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반겼다.
일례로 왕궁에 들어갈 때 표를 받곤 팜플렛을 독일어로 주길래, 팜플렛은 영어로 주면 안 되겠냐고 하니, 독일어가 워낙 완벽해서 당연히 독일어를 줬다고 했다. 기분이 좋기도 했는데, 이젠 팜플렛도 불편해도 독일어를 보려는 노력을 조금 더 해볼까 싶다.
밥때가 되어 어제 갔던 이태리 식당을 다시 갔다. 이태리 사장에게 그냥 아무거나 달라고 했는데, 풀리아 (바리가 있는 지방) 스타일 파스타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빵도 세 조각 서비스로 줬다.
나는 그에게 기차 오랫동안 타야 하니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빵을 조금 싸가겠다고 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가 내가 한참 지나서 빵을 사가겠다고 할 때야 알아들었는데, 역시 이 아저씨는 두 가지 언어를 못 하는 게 분명히 맞다.
점심을 먹고서도 한참 배가 풍족했던 게 덕분이었다는 생각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차레를 그로부터 샀는데, 이걸 처음 사봤고 아내와 먹을 생각에 꽤 신났다. 막상 이걸 먹은 아내는 속이 안 좋아 탈이 났다… 슬프다.
그렇게 인스부르크에서 기차를 타고 취리히, 바젤을 거쳐 집에 가고 있다. 인스부르크에서 취리히를 가는 길엔 알프스가 멋졌고, 취리히에 가까워질 때부턴 스위스 특유의 호수가 참으로 좋았다.
이젠 한동안 그쪽에는 놀러가지 않아도 갈증이 없을 듯하다. 아내의 몸이 회복되고 아내가 원한다면 이태리에 가서 맛있는 걸 먹는 게 제일 좋은 여행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