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빈 (Vienna; Wien)을 가본 것이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가이드북만 보고, 1박 2일 동안 아주 짧게 훑고 베네치아로 떠났던 기억이 있다. 그때가 유럽 여행에 대한 열풍이 불던 시기의 초창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이때부터 언젠가 이런 곳 어딘가에 살고 싶다는 꿈을 품기 시작한 듯하다. 그래봐야 당시, 만 열아홉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그 유명한 클림트의 키스가 빈에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왜 이걸 보지 않았지 하며 참으로 오래간 아쉬워했다.
그리하여...
본격적인 학회가 시작하기 전날, 프라이부르크에서 새벽 일찍 출발해 빈에 가서 관광하기로 마음먹었다. 꼭두새벽부터 출발한 이유는, 12년 전에 보지 못했던 클림트의 키스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
연착까지 포함해 장장 10시간이 걸려 빈에 도착했다. 적어도 내가 왔을 땐, 빈의 중앙역이 이렇게 세련되었었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너무 배가 고팠지만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캐리어를 끌고 클림트의 그림이 있는 벨베데레로 향했다. 10분 남짓 걸었을까. 표를 끊으려는데, 직원은 캐리어를 들고 갈 수 없다고 말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여기 라커 있지 않냐?”고 하니, 방침상 안 되고, 역으로 돌아가서 짐을 맡기고 오란다. 허허..
울며 겨자 먹기로 숙소까지 서둘러 갔다. 마음이 너무 급해 뛰어서 짐을 던져놓고, 다시 뛰어서 버스를 잡고 돌아오니, 원래 왔다 갔다 1시간 걸릴 걸, 30분 만에 돌아와, 마침내 클림트의 키스를 보러 갔다.
웬걸. 적어도 내겐 그 어떤 감동도 주지 않았다. 왜 이 그림이 그리도 유명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5분 정도 지켜봤다.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이 돈을 주고, 프라이부르크 새벽에 출발한 것까지 고려하면, 이게 과연 의미가 있었을까 싶지만 한 번이라도 봤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해봤다.
내겐 적어도 모네나 고흐의 그림, 그리고 나폴레옹이 말을 타고 있는 유명한 그림이 훨씬 좋았다. 에곤 쉴레의 그림도 있었지만, 그의 예술을 내가 이해하기엔 소양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마음이 불편해서 더 보고 싶지 않았다고나 할까.
미술관을 둘러보고 정원을 걷는데, 참 좋다. 예전엔 몰랐는데 오스트리아가 한때 중부유럽의 패권을 가졌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하는데, 그 어느 독일의 도시보다 건축물이 웅장하다. 예전에 왔을 땐 이런 생각을 전혀 못 했지 싶다.
식사를 마치고 한때 도나우강에 살았던 기억을 회상하고자 도나우강변으로 향하는 버스를 잡아 탔다. 도나우 강변에 도착하니 자전거가 있다. 원래는 피곤해서 별생각이 없었거늘, 빌려 보기로 한다.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자전거와 똑같은 회사다.
도나우강 변을 쭉 돌고, 비포 선라이즈의 촬영지였던 Prater 놀이동산에도 도착한다. 내가 에단 호크도 아니고, 이젠 애 아빠가 될 몸이니 로맨스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많은 관광객에, 이게 그 유명한 관람차인데, 별로 낭만은 없다. 아이랑 같이 오면 좋겠지 싶다. 그 큰 놀이동산은 공원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공원을 또 따라가니 이번엔 도나우강을 끌어온 운하에 도달한다.
적어도, 이 운하에서 바라보는 시내의 풍경만큼은 얼마나 낭만적인지, 순간 빈이 독일 그 어떤 도시보다 좋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해봤다. 젊은이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대마 냄새도 진동한다. 사실 그 어떤 독일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긴 하다.
자전거를 한 시간 넘게 달렸을까. 이제 자전거를 다시 세우고, 시내로 들어갔다. 시내엔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관광객도, 현지인도 많았다. 화려하게 꾸민 사람들을 보며 이곳은 되게 ‘서울’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대도시에서의 유흥이 맞는 표현이겠다. 호젓한 분위기를 느끼기엔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시내 중앙에 있는 슈테판 성당이 문이 열려 있다. 이 늦은 시간에도 문을 열다니 감사하다고 마음으로 들어가 잠시 앉아있었다.
다음날 학회라고 생각하니 아침부터 일찍 준비해 조식을 먹고 학회장으로 떠났다. 프라이부르크처럼 내내 자전거만 타고 다녔다. 그렇게 하니 마치 내가 빈에 사는 현지인 (Wiener)가 된 느낌이다. 학회에 아는 사람이 거의 전무했는데, 그래서 별생각 없이 앉아있었다.
첫날 세션 발표가 끝나고, 대절버스를 타고 빈 외곽에 있는 와이너리가 있는 식당으로 갔다.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다음날, 충분히 여유를 부리고, 또 자전거를 빌려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한다. 원래는 베토벤을 비롯한 많은 음악가들이 묻힌 묘지를 가볼까 싶었는데, 한 시간 넘게 가야 하는 걸 보고, 경로를 틀어 시내로 가게 됐다.
시내도 사실 오랜만에 제대로, 보니 참으로 멋졌다. 이곳저곳 가보지 않은 성당부터 예전에 봤던 왕궁, 도나우강까지. 한 시간 알차게 달려 학회장으로 돌아오니 땀이 뻘뻘 났다.
빈은 좋은 도시였다. 꽤 살고 싶은 도시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사실 오스트리아라는 나라가 살기에 독일보다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독일처럼 기차가 늦진 않는다.
빈 공대 (TU Wien) 부총장의 발표에서 짧게 느낀 점은, 오스트리아는 동유럽 국가들이 성장하면서 예전의 합스부르크 제국 때처럼 그들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싶은 듯하다.
절대 제국주의를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그 자체가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이다. 독일도 EU 창설 이래 다른 유럽 국가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데, 뭐 오스트리아라고 그러지 못할 건 무엇인가 싶기도 하다.
학회는.. 적어도 내겐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큰 경험을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끔 했다. 꼭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연구가 아니라, 새로운 연구 아이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였다.
내년에는 모르겠고, 다음부터는 아이와 가족들과 함께 매년 다른 국가에 놀러 올 겸 오는 게 어떨까 싶다. 이렇게 한번씩 유럽의 다른 국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참으로 좋은 경험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