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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과 코블렌츠

독일 경제의 젖줄

by 송다니엘


임신 극초반기를 지나게 되면서 아내의 컨디션도 조금은 올라오고, 서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작년 연말에 가보고 못 갔던, 아내가 예전에 살던 할머니 집에 다시금 가게 됐다.


도착하고 다음날, 나는 내 논문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이 들뜨기도 했고, 그날만이 비가 오지 않을 거라는 날씨 예보에 나들이를 떠나고 싶었다. 목적지는 코블렌츠. 한 번도 가보지 못했고, 라인과 모젤이 만나는 그곳에 꼭 가보고 싶었다…!


그곳까니 가는 길도 그냥 고속도로로 제일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한 시간 남짓 걸리는 마인츠까지는 고속도로로 가고, 나머지는 라인강을 따라 쭉 올라가려고 했는데.. 이는 내가 사는 곳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보이는 풍경이 아주 멋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그만 마을들을 지나치며 올라가는데, 아내의 컨디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여기 어딘가에서 점심 먹고 돌아가자고 이야기했지만, 아내는 내게

“네가 그렇게 하면 나를 얼마나 또 원망하겠냐. 그냥 가.”라고 하니,

마음 한 구석 불편한 마음으로 운전하니, 풍경에 감탄하고 조금 더 기쁜 마음으로 가고 싶었지만 마음이 그렇지는 못했다.


라인강 풍경에 있는 와인밭과 여러 고성들을 보니, 기차로 보며 저긴 어딜까 하며 아쉬워하는 것보다 더 좋았는데, 이는 내가 움직이는 차량으로 직접 컨트롤할 수 있었기 때문일 테다.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좋았다!


그렇게 배를 굶주리며 한 시간 반 정도 달리니 목적지인 코블렌츠에 도착했는데, 사실 도시에 들어가는 것부터 도시의 풍경들이 내가 차량으로 지나쳤던 다른 곳보다 전혀 좋지 않았다. 다소 실망한 마음으로, 이걸 보겠다고 아내를 그렇게 고생시켰나 싶은 회의감도 꽤 많이 들었다.


도심으로 합류하는 길은 어찌나 복잡한지, 여러 강이 합쳐지는 곳이다 보니 다리도 많고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길을 꽤 헤매다가 결국 차를 세우고 어디선가 식사를 하는데, 내가 사는 남부 독일의 정서보다 차갑다고 느껴졌다. 외국인의 비중도 훨씬 많은 듯하고, 정말 큰 대형마트나 아주 화려한 백화점들은 있는데, 모든 게 차량 중심이고 도시 자체는 정말 살기 좋지 않아 보였다. 라인강을 지날 때는 그렇게 많아 보이던 와인밭과 팔츠의 좋은 리슬링은 다 어디로 갔는지 내 눈앞에 보이는 건 공업도시일 뿐이었다.

그래도 몇몇 것들은 흥미로웠다.


먼저 여성 속옷이 시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코블렌츠 시내의 어느 광장

이게 무언가 찾아보니, 매년 10월 1일 세계 유방암 날에 맞춰 이에 연대하기 위한 것으로, 2017년부터 이렇게 속옷을 걸어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사는 곳에선 본 적이 전혀 없어 흥미로웠다.

source: koblenz.de

그곳에서 제일 볼 만한 건 역시 라인과 모젤이 만나는 그 꼭지점, 독일의 모퉁이라는 이름의 곳이다.

원래는 프로이센의 군국주의적인 상징물로 만들어진 큰 동상이 지금은 독일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보여주려는 듯했다. 2차세계대전 당시 폭격당했던 걸 복원했다고 한다.

왼쪽이 모젤, 오른쪽이 라인. 프랑스 보스게스에서 발원한 모젤은 이곳에서 라인과 합류해 북해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라인강을 슬쩍 걷고 금방 돌아갔다. 정작 시내에 있었던 건 정말 짧은 시간인데, 집에 돌아오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엔 세계 최대 화학 회사인 BASF에서 무언갈 태우는 걸 볼 수 있었다. 엄청나게 많은 송전망과 공장 등을 보며, 이곳에 수많은 산업이 있다는 걸 실감케 한다.


저녁식사의 양이 많지 않아 출출해하던 와중, 이 대도시엔 한국 식당이 꽤 많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시내에 있는 BBQ 치킨에 전화하니 바로 가지러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치킨을 픽업해서 가지고 오니, 이 삶이 한국에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만하임이나 프랑크푸르트 같은 곳엔 이런 삶이 가능하겠거니 싶으면서도, 이를 제외한 부분에 있어서는 별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치킨도 이렇게 때때로 먹어야 괜찮지, 한 번 먹고 나니 한동안 다시 먹지 않아도 되겠거니 싶다.




다음날. 게으름을 피다가 갔던 Weinheim.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원래는 동물 가죽들을 파는 곳이라고 하는데..


독일의 소도시엔 이렇게 기대하지 않게 아름다운 곳들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패키지 여행으로 가는 몇몇 도시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은데, 사실 관광지라고 가는 곳들이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독일에도 이렇게 구석구석 볼 만한 곳들이 있는데, 정작 휴가 행선지로는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아름다운 도시 내지는 알프스나 바다의 자연만이 생각날 뿐이다. 이것도 내가 독일에 살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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