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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을 따라 남쪽으로

미식과 역사의 도시 리옹

by 송다니엘


아내에게 가족 여행에 관해 동의를 구하는 건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다. 내가 수백번 말로 이야기해서 해결이 될 문제가 아니고, 무언가 강한 임펄스가 있어야만 한다.


한편, 대부분 독일의 직장은 공식 휴가가 무려 30일인데, 군 생활을 할 땐 연가가 21일이어도, 21일은커녕 열흘도 쓰지 못하고 연가 보상비를 받았던 걸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대단한 복지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휴가 안 쓴다고 연가보상비를 주는 것도 아니니, 휴가를 안 쓸 이유가 있나. 뭐 여기서 걱정이라면, 놀러가기 위해선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


그리하여 나는 아내에게 나의 연가가 아직도 20일 가까이 남았으니, 놀러가자고 했으나 아내는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과 아이를 배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고양이를 데리고 어딜 가냐며 내게 핀잔을 주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일 최근에 가족여행으로 갔던 몽블랑에서 등산은커녕 제대로 된 하이킹 하나 못 하고 집으로 돌아왔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내의 지인이 액상프로방스 이야기를 하는 걸 기회 삼아, ‘우리도 거길 가서 잘난척하지 못하게 해주자.’고 했더니, 나의 이 전략은 들어맞았다. 수백번의 이야기에도 요지부동이던 아내가 갑자기 흔쾌히 가자고 하니 나도 놀라서 진짜? 라고 연신 다시 되물었다.


그렇게 우린 내 회사의 오스트리아에서의 워크숍이 끝나는 다음주, 프랑스로 떠나기로 했다. 프라이부르크가 프랑스 국경이라고는 하지만, 프랑스 땅덩어리가 얼마나 큰지, 원하는 프로방스까지 가는 건 7~8시간이 족히 걸렸다. 그래서 우리가 삼은 중간 지점이 리옹이었다. 사실 우리가 삼았다기보단, 내가 거길 이번 기회에 꼭 가보고 싶었다.




당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짐을 꾸려 기쁜 마음으로 떠나는 길. 원래는 프랑스 고속도로로 가려고 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가 국경 앞에서 차량이 정체되어 있는 걸 보고, 충동적으로 스위스쪽으로 차량을 돌렸다. 내비에서는 계속 다시 유턴해서 돌아가라고 했으나, 무시하고 가다 보니 어느새 바젤, 루체른, 베른. 그 중간에 휴게소에 쉬었더니, 네비가 그전까지는 다운되어 있었던 지도로 안내하더니, 이후에는 인터넷이 끊겼다...


그렇게 네비 없이 표지판을 따라 제네바까지 갔다. 이게 20세기에 여행하는 방식이 아니겠는가. 스위스 로밍하는 것 만원 정도 아껴보겠다고 미련하게 행동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아무튼, 네비 없이 가보니, 몇몇 지명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등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이 되기도 했다.


사실, 이 길은 이미 몽블랑 갈 때 똑같이 지나가봐서 그런지, 그 풍경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 스위스는 비싸고 가성비가 떨어지는 행선지일 뿐.

제네바까지 향하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그곳에서 리옹을 향하는 건 꽤 헷갈렸다. 프랑스 고속도로 표지판만 보고 따라왔는데, 그리고 조금 더 가니, 다시 문명의 세계로 돌아왔다.

리옹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가 남았는데, 사실 이렇게 가는 게 30~40분 돌아가는 거라는 걸 깨달았는데, 그 이유는 집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위로 올라갔기 때문 (아내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진 않았다. 이 글을 보면 화를 낼지도 모를 일이다.)


제네바에서 리옹을 가는 길은 알프스에서 이어진 작은(?) 정맥들이 이어진 곳이어서 그런지, 고속도로임에도 꽤 길이 꼬불꼬불하고, 그 풍경은 장엄했다.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지명에 멋진 풍경들을 보며 연신 감탄했는데, 아마 유럽인들도 잘 모를 지명들이 분명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니 대도시 리옹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대도시에서 운전하려고 하니 헷갈려서 길도 한번 잘못 들어 10분 가량 시간을 허비했다. 서울의 외곽순환도로나 올림픽대로 같은 느낌이랄까. 너무 헷갈렸다.


도착한 숙소는 사실 리옹이 아니고, 리옹의 베드타운이었다. 첫 인상은 사실 좋지 않아서 무슨 할렘가에 왔나 싶었다. 알고보니 꼭 그런 건 아니었다만..


도착하고 저녁 장을 보러 전설적인 셰프 폴 보퀴즈 (Paul Bocuse) 이름을 딴 식재료품점을 갔다. 얼마나 먹을 게 많던지,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여기에 프랑스 전역, 아니 유럽 전역 최고이자 제일 신선한 식재료들이 모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건 잘 모르겠고, 가격은 꽤 셌다.

여행객이 가격 따질 때인가. 육지에서 절대 맛 볼 수 없는 신선한 홍합과 조개, 소라와 함께 맛난 치즈, 말린 소세지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그 모든 것 하나하나가 정말 황홀한 맛이었다. 배고파서였을까. 정말 맛있어서였을까.



그렇게 리옹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이튿날.

아내는 남은 홍합탕을 아침에 마셨는데, 배탈이 났다. 홍합이 상한 걸까 아니면 임신한 몸으로는 어패류를 먹으면 안 좋은 걸까. 적어도 난 아무 문제가 없었다. 혼자 약국에 가서 임산부에게 맞는 약을 샀지만, 아내는 끝내 먹지 않았다. 원래는 약을 달고 사는 사람이 아이를 가졌다고 절대 안 먹는 모습이 짠했다. 아내는 내게 혼자 나갔다 오라고 하니, 그렇게 점심 먹을 때즈음 나갔다.


우리가 묵는 베드타운과 다르게, 리옹 시내는 정말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베드타운만 보고, 리옹을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페라 극장에 주차하고 시내부터 리옹의 위인들이 그려진 건물의 벽화, 그리고 구시가지까지. 참 인상깊었다.

리옹의 위인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어린왕자의 생택쥐페리, 시네마토그라피, 우리가 보는 시네마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 전류의 단위이기도 한 앙페르, 그리고 위대한 셰프 폴 보퀴즈 등이 있다. 이 도시가 이렇게까지 유서깊은 곳인가 하고 갑자기 공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세히 보면 오른쪽 두번째 줄에 영사기를 옆에 있는 뤼미에르 형제, 그 위에 어린왕자 옆에 있는 생택쥐페리, 그 옆에 책을 들고 있는앙페르, 맨 아랫줄에 폴 보퀴즈가 있다.


또 리옹에는, 큰 두 가지의 강이 흐르는데 하나는 스위스 알프스에서 발원해 제네바를 거쳐 지중해로 빠지는 론 강, 그리고 보스게스에서 발원해 이곳 리옹에서 론강과 합쳐지는 손강이 있다. 강이 두 개나 있고, 그 사이에 있는 일종의 섬에 정말 많은 관광지가 있고, 또 손강을 넘어 있는 육지에 구시가지와 그 언덕 위에는 고대 로마의 유적과 거대한 성당이 있다. 이 역사는 따로 다루도록 한다.

손 강의 풍경.


프랑스 대도시답게 화려한 건축양식은 파리나 낭시 이후, 내가 갔던 프랑스의 대도시는 이렇구나 싶은 느낌과 함께 역시 프랑스구나 싶은 생각을 낳게 했고, 로마시대 프랑스의 수도부터 이어진 그 유구한 역사와 대단한 위인들이 거쳐갔던 이 도시에는 품격이 있었다.



거기에 훌륭한 음식까지. 점심에는 전통적인 리옹 음식을 먹어보고자 구시가지에 어떤 곳에 우연히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리옹식 샐러드와 코코뱅, 그리고 아주 단 치즈까지 코스요리를 먹어보았다. 파리에서 먹었으면 50유로도 나왔을 것 같은데, 이곳은 이 훌륭한 식사가 25유로 정도다.

옆에 있던 미국인 노부부는 원래는 하루만 있다가 가려고 했는데 너무 볼게 많아서 최소 이틀은 더 있어야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도 공감했다.


점심식사 이후,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쯤 언덕위를 올라가 위에 있는 성당에서 알프스와 리옹의 시내 전경을 보고 고대 로마 유적지 박물관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그럼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고, 보고 싶었던 원형극장은 바람이 많이 분다는 이유로 열지 않아 보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어쩌랴.

언덕 위의 성당.


내려와서 대성당을 보는데, 시계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몇몇 정각 시간마다 뻐꾸기 시계처럼 있는 게 흥미로웠다. 운이 좋게 그걸 볼 수 있었다. 사실 언덕 위에 있는 성당보다 아래에 있는 성당이 훨씬 고즈넉하고 관광지느낌이 덜했다.



그리고 다시 손강을 건너 메인광장인 벨쿠르 광장에서 루이14세의 동상을 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걸어가는 길에 얼마나 많은 상점이 있는지, 역시 프랑스구나 싶었다. 쁘렝탕 백화점을 보며 들어가면 또 옷을 사고 싶겠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지나가다가 몇 가지 흥미로운 벽문을 봤다. 이곳에서 프랑스 대통령 사디 카르노가 피살됐다는 것. 카르노라면 열역학의 아버지가 아닌가? 의문이 들어 찾아보니, 열역학의 아버지는 피살된 대통령의 삼촌이다.

프랑스 대통령이 피살된 곳과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상영한 곳

또, 같은 거리에는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로 영화를 상영한 곳이라는 안내가 있다. 그 역사적인 건물에 지금은 중국은행이 들어서 있다. 중국의 자본이 무시무시하다.



다음날


몸이 호전된 아내와 함께 내가 다녔던 루트를 아주 효율적으로 보고, 다시 폴 보퀴즈의 식료품점에서 삼겹살을 사서 집에서 구었다. 우리 모두 연신 어찌 삼겹살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느냐고 말했다. 제주 흑돼지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보다도 맛있다고!!! 최고급 고기에는 아무런 양념 없이 소금만으로도 간이 된다는 어떤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말 그랬다.



마지막 날 아침, 리옹의 유명한 공원에서 산책을 했다. 리옹에서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곳이다. 정말 이곳 빼고는 더 보고 싶은 것이 없었다.


Parc de la Tête d’Or. 황금머리의 공원인데, 황금머리는 공원이 생기기 전부터 구전되던 전설에 따른 것인데, 중세 십자군 전쟁 당시 예수의 머리 일부를 많은 보물과 함께 이곳에 묻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원이 생기기 전부터 론강이 범람하고, 늪지대인 이곳에 탐정이 고용돼 보물찾기를 했다고도 한다. 어쨌든, 일종의 버려진 공간을 19세기 대규모 공사를 통해 정비되어 현재 프랑스 내 최대 규모 중 하나인 이 공원이 탄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뛰곤 했는데, 리옹에는 유난히 운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곳에 사는 삶도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도시에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이곳이 그런 곳이지 싶다. 프랑스 내에선 최고의 도시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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