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신비로움
소싯적부터 빠른 시일 내에 한 아이의 아버지, 가장이 되고 싶었다. 성가정을 이루는 게 어쩌면 인생의 제일 큰 의미이자 목표라고도 생각했다.
나의 친형은 이런 나와 정반대였다. 연애의 공백이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지만 그러면서도 아버지는커녕 결혼도 매번 하지 않는다고 생떼를 부렸었다. 그의 논리는 결혼해서 나 같은 자식 낳으면 싫을 것 같다고. 그런 그가 3년 전에 결혼할 때만 해도, 이게 실화인가 싶었던 순간이 많다. 작년에 이사갈 집을 구하면서 집이 있어야 아이도 키우지 않겠냐 해서 이게 뭔 소리인가, 드디어 미쳤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개인적으로 카페에 노키즈존을 보며 문제가 있다고 싶고, 언젠가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옆에서 끊임없이 우는 아이를 보면, 나는 정말 아이를 안 좋아하나 싶었다. 그런 건 모두 나의 착각이었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다는 말이 와닿는다. 그 작은 손이 꼼지락거리고 나를 보고 깜박거리는 눈이 흡사 천사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이 친구가 걸어다닐 것이고, 학교에 가게 될 거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우리 모두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았겠나 싶어 특이한 일이 아닌 것만 같은데 보면 정말 신비롭다.
한편, 매번 티격태격하던 형이 가정의 가장이 되고, 아버지가 되는 걸 보면서도 난 신기할 뿐이다. 또 그런 과정을 거치며 이젠 진짜 형 같은 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 같다고나 할까. 남자는 군대 다녀오면 철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결혼하고 아버지가 되어서야 어른이 되는 거 아닐까.
아이 옷, 장난감을 고르는 일이 많아지면서 여러 생각이 오고 간다. 불과 유럽에서는 돈 없는 유학생으로 젊게 살았다면, 돌아와서는 더 현실적인 생각은 물론이고 이를 직접 체감한다.
전역 후, 그런 소망이 현실적으로 몇 년간은 불가능해지면서 한편으론 잘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꼭 그렇게 급한 나이는 아니었다는 걸 사회에서 느끼면서도, 절반 가량의 군대 동기들이 결혼하고 아이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더라도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젠 일뿐만 아니라 가정이 생긴 친구들이 많아 만나기도 미안한 경우도 많으니까. 이런저런 생각 덕분에 더 무언가를 이루고 돌아와야겠단 결론을 내리게 된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존경하고, 장차 자라날 아이의 삶이 행복하고 희망이 넘치는 사회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