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행 III

로마를 떠나며

by 송다니엘

외국인과 이 정도의 교감을 가진 적이 있었던가. 일주일 간 24시간 붙어 있으니 적지 않은 의견충돌도 있었지만, 속깊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정이 많이 들었다.


또,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 항상 말이 많은 줄 알았는데, 친구 아버님은 정말 말수가 없으시고 감정 기복이 없다. 사실 친구를 볼 때도 이태리 남자애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차분했는데, 이는 아버지 성격을 꼭 빼닮아서 그렇다.


출근하시는 친구 아버님에게 작별 인사를 하니, 아버님은 잘 지내고 만나서 반가웠다며, 한 마디 덧붙였다. ‘다시 놀러 와라. 네가 오고 싶을 때 언제든’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동안 과묵하고 영어로는 잘 대화를 안 하시는 친구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두고두고 생각난다.


또, 어젠 친구에게 ‘믿고가는 00픽’이라는 표현을 알려줬다. 근데 갈 술집을 결정 못 하고 우유부단하길래 내가 정하고, ‘믿고가는 원선픽’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 김광석, 이문세, 송골매 노래 들려주면서 간주 때마다 가사를 대략적으로 설명해주는데 아름답다고, 믿고가는 원선픽이란다. 젊은 세대에게 K팝도 먹히겠지만, 일반적인 외국인들은 오래된 한국 음악을 더 좋아한다는 걸 느꼈다.


언젠가 독일인은 기계를 잘 만들고, 이태리인들은 예술적인 감수성이 풍부하고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고 이번에 친구와 오랜 기간 있어 보니 그들 안의 예술적 재능을 옆에서 느끼기도 하고, 친구들의 친구들의 작품을 보면서 감탄하기도 하고, 또 사람들이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며 실제로 그렇다는 걸 느낀다. 일례로 친구는 스케치를 꽤 자주 그리며, 사진에 대한 감각도 있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여자애도 아주 평범치 않게 감각이 뛰어나다. 그러면서 한편, 나도 이곳에 오래 있으니 그런 나의 잃어버렸던 감수성을 찾는 느낌을 받는다. 신기한 일이다. 독일에선 한없이 효율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면, 이태리에선 게으르면서도 예술적인 감성이 살아난다고나 할까.


짧지 않은 시간이라 신세를 너무 많이 지는 것 같기도 하고, 더 많은 걸 보고 싶은 마음도 들어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거늘, 그들을 떠나 로마 한복판에 혼자 남으니 일주일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경계심은 물론, 그 빈 자리가 느껴진다. 그들과는 모든 게 자유롭고 현지인 같이 느껴졌던 게 이젠 철저한 이방인이자 여행자로 느껴진다. 복잡미묘한 감정이다.


여러모로 나랑은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친구로서 무한히 사랑할 수 있겠단 생각을 받는다. 아마 독일에 돌아가서도, 두고두고 이곳에서 있었던 이야기, 하다못해 1유로짜리 에스프레소에 대해 이야기할테다.


한인마트에서 음식을 사서, 된장찌개를 미리 끓여놓고 친구에게도 레시피를 전수했다. 된장과 김치가 있으니 가끔 생각나면 해먹지 않을까.


독일에서 반갑게 인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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