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과 생각

자산어보

병든 세상에 대항했던 그 시절 사람들

by 송다니엘

조선 후기, 최고의 엘리트였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


1791년(정조 15년). 명문가(해남윤씨) 자제인 윤지충과 그의 외종사촌 권상연이 제사를 거부하고 부모의 신주를 불사르는 일이 벌어진다. 이를 이름하여 진산사건. 이로 일어난 것이 신해박해. 주인공 둘은 참수, 몇몇 인물은 귀양을 가지만,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는데, 이는 “정도(正道)인 유학은 ‘사학’(邪學)인 천주교를 소멸시킬 것”이라는 말처럼, 천주교에 대한 온화한 정책을 펼치는 정조의 역할이 컸다. 문제는 정조의 사후(1800년).


이듬해, 정조의 총애를 받던 정약용 형제에게 화가 불어닥친다. 정약용의 작은 형 정약종은 참수. 큰 형 약전과 본인은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난다. 이 때, 정약용의 유배지도 물론 땅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먹을 것이 섬보다는 많았을 것이고, 외가(해남윤씨)에서 적지 않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예가 녹우당을 모티브로 하여 다산초당도 짓고, 제자도 많았다. 여담으로, 다산은 ‘다성(茶聖)’이라고 불리는 초의 의순 스님의 스승이기도 했다.


”초의는 23세 때인 1809년 당시 47세로 강진에 유배 중이던 다산과 첫 대면을 한 후 정신적 사제 관계를 맺는다. 1801년 강진으로 유배된 다산은 해남 윤씨 집안의 도움으로 1808년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온 상태였다.“


그렇다면 섬으로 유배 간 형은 어떠한가.

이 영화는 아우 정약용보다 덜 주목을 받는 형 약전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두 인물이 주인공이다. 정약전(설경구)과 흑산도에 사는 가난한 청년어부 창대(변요한).

창대는 본인의 스승인 정약전이 정약용처럼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글을 쓰기를 바랐으나, 본인의 사상이 시대에 받아들여 질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고독한 섬에서, 해양생물에 대한 책을 쓰기로 한다. 지금 우리에겐, 약용처럼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그는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최초의 ‘해양생물도감’을 만들었다. 현실 정치에서는 받아들여지지 못하겠지만, 이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공헌하고자 하는 그의 뜻이 아니었을까.


‘털끝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는’ 사회로 진단하여, 지금까지도 공직자의 모범이 되는 수많은 저작을 남긴 정약용.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다가 이 시대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판단하여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 약전. 끝내 종교를 버리지 않고 죽은 정약종과 수많은 순교자들.


강진과 남양주 마재, 그리고 그들이 묻힌 경기 광주 천진암.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한 흑산도까지. 그들의 발자취를 밟았던 일을 회상하며, 그들의 고귀한 삶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목민심서의 문장을 인용해본다.

‘무릇 재해와 액운이 있으면 서둘러야 한다. 늦춰서는 안 된다.’



여담으로, 영화에서는 동생의 유배가 풀린 다음에 약전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그려졌지만, 실제로는 동생이 풀리기 전에 유배지에서 16년 만에 목숨을 잃는다.


여기서 알랭드 보통의 글을 인용해본다.

“아름다움의 감상은 예술에서 현실세계로 옮겨질 수 있다. 처음에는 캔버스 위에서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들을 발견하지만, 나중에는 캔버스가 그려진 장소에서 그런 요소들을 환영하게 된다.”


실화보다 더욱 감동적인 영화. 꼭 사실과 다르다고 이를 비판할 필요까지는 없다. 필름메이커가 선택을 하고, 강조하여 현실의 귀중한 특징들을 살려냈을 때, 비로소 찬사를 받는 법이니까.


훌륭한 영화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꼴값. 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