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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과 생각

역사는 반복된다?

그동안의 세계질서와 그것이 한반도에 주는 함의

by 송다니엘


냉전 당시 미중간의 정상회담을 성공시켰고, 오랫동안 계속되는 베트남 전쟁에 종전협정 타결을 이끌었으며 소련과의 데탕트를 주도한 미국 외교사 및 국제정치학의 거물, 키신저의 비교적 최근 저작인 세계 질서. 방대한 책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본다.


먼저 그가 이야기하는 세계질서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팍스 로마나로 대표되는 뛰어난 ‘제국’의 몰락 이후 유럽 내에선 잃어버린 보편성에 대한 향수가 커졌고, 교회는 그 빈자리를 채웠다. 이 교회의 권력은 샤를마뉴의 프랑크 왕국, 신성로마제국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이후, 로마 멸망 이후 무려 1200여년이 지난 17세기, 교회의 절대적 지위에 대한 반발이 표면으로 드러난 30년 전쟁이 발발한다. 구교 대 신교의 투쟁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프랑스가 신성로마제국에 대항하여 참전한 뒤에는 모두가 자기 이익만을 위해 동맹관계를 바꿔버리는 전쟁이 되어버렸다. 즉, ‘보편성이나 종파간의 단결을 외치는 가식적인 주장’들을 산산조각 냈다. 역설적으로 이 덕분에 새로운 국제관계 체계의 원칙이 형성되었다.


즉, 베스트팔렌 원칙은 ‘다양성을 체제의 출발점’으로, 본질이 아니라 절차에 관한 것이다. ‘서로 단호하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힘이 부족’했기에 성립할 수 있었다. 이는 20C 중반 모든 대륙에 확대되어 현재 국제질서의 기반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


다시 말해, 국익을 정책의 지도원리로 삼아 힘의 사용을 합리화, 제한했다. 이 원칙에 근거한 세력균형은 크게 나폴레옹에 의해, 1871년 통일된 독일, 그리고 1,2차 세계대전으로 다시 독일에 의해 무너진다.


“독일은 역사의 상당기간동안 유럽에 평화를 안겨주기에는 너무 약하거나 너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2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에 대한 그의 견해는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은 빈 회의에 패전국 프랑스를 받아들이는 조항을 포함시키는 것과 달리 독일을 유럽 질서에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영국은 잠재적인 위협을 미연에 방지하기보다, 세력균형을 위협하는 실제적인 세력에 반대하기 위해 유럽 문제에 관여하는 역사적 태도로 돌아갔다.”

“베르사유 질서는 정당성도 균형도 얻지 못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우리의 분단은 철저히 베스트팔렌 원칙을 따른 세력균형에 의한 결과였다.


각설.

하나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북의 군사적 도발이 있을 때마다 몇몇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냥 통일하지 말고 따로 살자.’, ‘전쟁하자.’ 등등. 그것이 그들의 속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실제로 그런다면 어떻게 될까. 또 혹자는 그런다. ‘선제적 타격’이라는 옵션을 제외한 것이 군사·외교적으로 큰 손해라고. 과연 그렇다면, 선제적 타격, 전면전을 나섰을 때 ‘북진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올해로 70년이 된 625전쟁. 최초 남침 이후, 낙동강까지 파죽지세로 내려오던 북한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의해 허리가 잘리게 된다. 이후, 전세는 역전되어 UN군은 11월 26일에는 함경북도 청진시까지 도달한다. 북한에게 남은 영토라고는 신의주 주변의 자투리땅과 개마고원, 두만강 유역밖에 없었다. 모두 전쟁이 쉽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그때부터 전세는 다시 역전되었다. 중국의 참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던 맥아더의 판단은 오판으로 드러났다.


625전쟁에 참여한 중국군은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에 참여한 베테랑들이었다. ‘중국인 이야기’에서는 총 지휘관이 펑더화이가 아니라 ‘전쟁귀신’ 린뱌오였다면 UN군이 몰살했을 수도 있다는 역사적 가정도 소개된다.


린뱌오는 전쟁 초기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겉으로 보기엔 북한이 유리해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곧 치명타를 입을 것이다. 북한군이 밀집된 낙동강 일대는 보급선이 길고 반도 중간이 텅 비어있어, 미군이 중부에 상륙하면 방법이 없다.”


한편 전해지기를, 맥아더는 중국에 대한 핵공격, 장제스의 국민혁명군을 중국남부에 상륙시키는 등을 계획했으나 트루먼 대통령과 정치적 갈등을 빚어 해임당하게 된다. 그는 당시 한반도의 전략적 통찰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맥아더와 다르게, 키신저는 미국인이라고 믿을 수 없는 혜안을 보여준다.

“역사는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히데요시의 침략 계획에 대한 중국의 저항과 거의 400년 뒤인 한국 전쟁 때 미국에 맞선 중국의 공통점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시아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와 같은 통찰을 보여주는 사람의 깊이를 감탄하면서 다른 한편,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현실 인식에 대해 반성도 해본다. 일본인이 아니었기에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을 쓴 것과 같은 이치일까.


이런 그도, 이미 실패하고 정당하지 못한 전쟁이라고 비판받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의 개입을 계속 옹호하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자신들의 방침이 인류의 운명을 형성한다는 확신에 차서 ‘모든 인간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미국인의 한계일까. 어쩌면 미국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건 역사가 없는 나라이자, 일견, 자국 영토에서 유럽과 같은 피 터지는 전쟁을 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미국이 21세기에 자신들이 치른 전쟁의 교훈을 검토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인간의 향상에 대해 그렇게 깊은 열정을 전략적 활동에 쏟아부은 그 어떤 강대국은 없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중략) 자유의 결실을 나누기 위해 승리를 추구해온 국가에게는 특수한 기질이 있다.”


미국이 과연 자유 민주주의를 기치로 한 도덕성 때문에 이라크, 아프간 전쟁을 시작했는가. 이는 가면에 불과하지 않는가. 중동문제가 개입해서 될 문제인가. 이와 같은 의문은 서구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의 확산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까지 이른다. ‘과단성 있는 미국의 역할’이 과연 당대의 현실의 영향을 받은 베스트팔렌 체제의 현대화인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 의해 성립된 세계질서는 그들에게는 평화를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신생국가들의 수많은 피를 낳았다. 남북한뿐만 아니라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이스라엘-아랍 국가들과의 분쟁, 이라크 무장집단,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아프리카 국가의 내전, 인도-중국, 인도-파키스탄, 코소보 사태, 터키-쿠르드, 크림반도 분쟁 등 이 모든 것은 그들의 베스트팔렌 원칙에 의한 결과물이고 그 국민들은 그 희생양이다.


“베스트팔렌 원칙은 힘을 분배하고 유지하는 방법은 다루었을 뿐, 정당성을 만들어내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앞으로의 세계질서는 저자의 글을 인용해본다.


“세계 질서는 여러 사회의 인식을 바탕으로 역사적 경험과 가치를 공통의 질서로 갖춰야겠다.

최초의 세계질서가 수립되기까지 인간의 위대한 업적인 기술은 높아진 인도적, 도덕적, 초월적 판단력과 융합되어야 한다.“


“우리 시대에 세계질서를 추구하려면 지금껏 대체로 독립적인 현실을 살아온 여러 사회의 인식을 다루어야 한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 경제력이 이곳 한반도에 집중되어 있다. 앞으로의 세계질서, 한반도 질서는 낭만적인 평화 구상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해 보인다. 이는 베스트팔렌 원칙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되어야 함이 분명하다. 여기서 독일의 사례를 보자.


“독일은 역사의 상당기간동안 유럽에 평화를 안겨주기에는 너무 약하거나 너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은 이와 같은 베스트팔렌의 구조를 뛰어넘어 새로운 유럽질서를 이끌고 있다. 우리의 모델은, 30년 전 독일의 모델에서 더욱 발전한 그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 답은 한 가지밖에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희망적인 미래는 요원해질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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