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이야기
“산에 오르면 필요 없는 것들로 가득했던 마음이 깨끗해짐을 느낀다.”
내가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 건 군 생활 중 까마득한 선배에게서 우연히 들었던 가야산 국립공원. 쉬는 날 할 일 없이 보내는 것이 싫어 떠났던 그때의 산행을 되짚어본다.
4년 전, 10월 마지막 날. 새벽부터 부랴부랴 출발해 두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그곳. 가을 끝자락에 화려하면서도 위태롭게 나무에 걸려있는 단풍의 모습을 보며, 정점에 있는 만물의 끝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잠시, 이내 험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내가 오를 곳은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난코스였다.
헉헉대며 올라가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 살아있음을 느꼈고, 지독히 의미 없고, 고단하고 탈출구가 없게 보이던 내 삶에서 새로운 취미가 생김과 동시에 내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 깊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큰 사건이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고나 할까. 몸이 급경사에 적응하면서 탄성을 내지를 듯한 경치를 감탄하며 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니 도착한 정상.
“어떠한 일이든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이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내가 걸어온 길과 그 길 끝에서 마침내 도달한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지닐 때, 비로소 내가 이룬 성과에 대해 진정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을 가진 이래, 산다운 산을 자발적으로 오른 첫 번째 정상에서 성찰했다. 내가 그동안 이룬 것에 대해, 그리고 내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손꼽히게 아름답고 유명한 산을 제일 좋은 시기에 올랐던 것에 기뻐했다. 함정 근무에 대기 태세만 없다면, 전국 국립공원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 정상에서부터.
그리고 우연히 부모님 또래의 어머님과 같이 하산길을 함께 했다. 나는 반대쪽으로 내려가고 싶은데, 그곳에서 차가 있는 곳까지 택시비가 만만치 않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아는 지인이 있다고 흔쾌히 그곳까지 함께 해주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분과 함께 하는 몇 시간의 하산길 동안 전국 명산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계절마다 좋은 산들. 사람마다 맞는 산이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봄은 만물이 보이려고 해서 봄이고 여름은 열매를 맺어서 여름이며 가을은 옷을 갈아입어서, 겨울은 겨우 이겨내서 겨울이라는 계절의 유래를 덧붙였다.
내려오면서 우거진 숲, 단풍을 보며 만추의 정취를 느낌과 동시에 웅장하고 깊은 산세에서 볼 수 있는 풍부한 계곡의 수량까지. 또 법보사찰. 해인사의 멋진 가람 배치와 팔만대장경의 뜻에 대해 생각하니, 가히 최고의 산행이었던 생각이 든다. 이것이 산에 미치게 된 청년 뱃놈의 시작이었다고나 할까.
그 이후, 전국에 있는 국립공원은 물론이고, 누군가 붙여놓은 전국 100대 명산의 7할을 돌았다. 같은 산에 여러 번 오른 것까지 한다면, 3년이란 시간 동안 내가 산에 오른 날만 해도 100일은 족히 넘는다. 대충 잡아봐도 적어도 열흘에 한 번 정도는 산에 올랐다. 그렇다고 정상에 올라갔다는 것 자체에 의의로 삼고자 하진 않았다. 첫 시작은 말 그대로 좋아서 시작했고, 그 좋다는 느낌의 배경에는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인간이 만든 도구의 어떠한 도움도 없이 천천히 오직 나의 힘만으로 올라가는 숭고함과 우리 역사, 우리 국토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함과 더불어, 나의 삶의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간임에 있었다.
꽤 오래 전, 베네딕도회 수도원에 계신 안젤름 그륀 신부님의 책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성경에서의 인물을 빗대어 현대인의 어려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책이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신앙이 부족해서였을까. 와닿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이번에 ‘인생이라는 등산길에서’라는 책을 한 신부님께서 추천해주어 읽어봤다. 등산. 정말 인생과도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그동안 정말 많이 해왔기에, 제목부터 와 닿았달까.
살면서 어려운 일을 꽤 많이 겪었다.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문제에 봉착했기에, 훌훌 털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문득 생각날 때마다 원망스럽고 아쉬웠다. 이에 대해 일흔이 훌쩍 넘은 수도원에 계신 신부님은 책에서 이렇게 풀어놓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미 나는 무엇인가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고, 내 안에는 그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우회로를 걸어야 마을을 더 많이 본다.’라는 말도 있다.”
지금은 늦더라도 나중에 돌아보면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지인들과 함께 나누었던 생각을 다시 해보니, 단지 위로가 아니라 큰 틀에서는 다 도움이 되는 길이라는 확신이 든다.
“돌아서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바랐던 최종 목적지에 갈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한편, 그동안 난 이미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해오던 일을 박차고 나왔는데, 지금 와서야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하고 싶은지, 어떤 걸 진짜로 공부하고 싶은지 알게 됐다. 결국,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진짜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맞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그 목표를 향한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목표 설정은 삶에 언제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이미 먼 길을 걸어왔으며, 목표가 없었다면 이 길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
등산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정상에 오르고, 하산할 때까지 인생과도 너무 비슷하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만, 내가 산을 그렇게 다니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 건 내가 감히 아직 산을 논할 때가 될 정도의 내공은 없다는 걸, 또 신부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 고작 몇 년간 산행했다고, 산에 대해, 인생에 대해 논한다는 건 오만한 태도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시련과 고난은 앞으로도 계속 함께할 것이다. 그때마다 내가 산에서 겪었던 어려움, 그것을 어떻게 이겨나갔는지 잊지 않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리라 다짐한다. 우리 삶의 그늘이 우리 영혼의 풍미를 더 깊게 하고, 빛이 사라진 그늘에도 우리를 성장시켜 주는 그 신비함 속에 참 행복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