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와 보관
컴퓨터 용량이 어느새 거의 다 찼다. 드라이브의 막대가 빨간색으로 변해, 비명을 지른다.
파일을 살펴보니, 중복된 것들, 필요 없는 문서들, 언제 찍었는지도 모를 사진과 동영상들… 어느새 가득 차 있었다.
삭제 버튼을 자꾸만 누른다. 그런데도 여전히 빨갛다. 많이 지웠음에도, 용량은 조금밖에 비워지지 않는다.
‘언제 이렇게 가득 찼을까.’
쌓이는 것은, 쌓이는 줄도 모른 채 차곡차곡 쌓여 간다.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쌓였을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다 차서 폭발 직전이 되어서야, 그 존재를 눈치챘다.
삭제 버튼은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나하나 다시 들여다보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속 감정도, 기억도, 그렇다.
비워야 하지만, 뒤죽박죽 엉켜 있는 파일들이 가득 찬 마음이 떠오른다. 정리하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이 들면 쉽게 버리지 못하는 습관, 새것보다 낡은 것에 마음이 가는 성격. 그래서 자꾸만 모으고, 보관한다.
하지만 비우지 않으면, 결국 컴퓨터가 멈추듯, 우리도 언젠가 폭발해 버릴 수 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지나간 시간과 추억,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을 하나씩 놓아주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공간이 생기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들을 채울 수 있다.
‘그러니까 다 기억하려고 하지 말자.’
'떠나간 사람들은 놓아주고,
과거는 돌아보지 말고,
지나가 버린 일들은 잊어버리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정리할 때도 작은 팁이 있다. 작은 파일 여러 개를 지우는 것보다, 큰 파일 한 개를 제거하는 것이 훨씬 많은 공간을 비우듯, 마음속에서도 큰 짐부터 내려놓어야 한다.
‘나에게, 그건 당신이지.’
'아주 큰 용량을 차지하고 있는 당신'
이번 겨울에도 흰 눈이 쌓이겠지.
그 눈이 쌓이는 동안 ‘당신을’ 천천히 덜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