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라면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그때까지, 나는 기억하고 있을게.
너를 만나, 글을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펜을 잡았지.
하지만 너로 인해, 다시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갖게 되었지.
그 우연한 시간 동안
너는 내 모든 세상이었고, 내 전부였으며, 나보다 더 사랑했던 존재였다는 뜻이야.
남겨진 나는 이제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았다가, 노트를 펼쳤다가 펜을 잡았다가 우물쭈물,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했지.
어쩌면 그동안 내가 매일 써왔던 글들은 너에게 보내는 연서였던 가봐.
이제 나는 너에게 더 이상 편지를 보내고 싶지 않아 졌어.
너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야. 나는 인연을 믿어. 내가 너를 만난 일은 어떻게 설명해도 논리적으로 맞지 않지만,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난 거니까. 인연과 운명을 믿는 나는, 우리가 진심이었다면 지금은 아니더라도, 몇 달 뒤, 몇 년 뒤, 아니면 몇십 년 뒤에라도 다시 만날 거라 믿어. 그리고 처음처럼 서로에게 다시 매료되겠지.
사실,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어.
대신 창문을 열고 떨어지는 소리와 개구리가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어. 그 소리들 위로 가을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 속에는 너의 이름도, 우리의 대화들도, 내가 쓰지 못한 문장들도 스며 있었어.
내 안을 가득 채웠던 초록빛 향기들은
그 바람을 타고 흩어지더라.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아.
잊는 게 아니라,
흐려지는 일이라는 걸.
풍경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말했지,
'당신, 지금 행복한가요?'
그리고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수없이 여러 번 안녕을 말할 수 있었어.
이제는 너에게 연서를 쓰지 않을 테지만,
나는 여전히 너를 쓰고 있는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