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으로 아파해 본 적 있는 이들을 위한 위로
눈과 집과 달
- 유선미
당신이 좋아하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는, 청산
그곳에 집 한 채를 지었다
사라져 버린 시간 속의
형제 없는 언어들로 벽을 쌓아
눈이 내려도 무너지지 않을 튼튼한 집
가난으로 밥을 지어 상을 차리고
함박눈이 나리는 밤에는 당신을 덮으면 된다
그 말을 해줄 걸 그랬어—
당신이 내게 처음 말을 건넸던 순간의 떨림,
내 삶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모든 것은 괜찮습니다
청산보다 높은 곳에는 먼저
달이 도착했다
산은 늘 달이 그립고
눈은 오래전부터 그쳤다
내일은
달에 관한 시를 쓸 것이다
이 시는 눈 내리는 청산에 집을 짓는 상상에서 출발하지만, 그 장소가 실재인지 기억인지 끝내 규정하지 않습니다. 청산은 가장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공간으로 굳이 증명되지 않아도 되는 장소입니다.
말해지지 못한 고백과 이미 지나간 시간은 집을 짓고, 밥을 짓고, 밤에 눈을 맞는 생활의 이미지 속에 스며듭니다. 한때의 꿈꾸었으나 말로 다 하지 못했던 소박한 삶의 형태이기도 합니다.
달은 먼저 도착하고, 눈이 그친 뒤에야 화자는 비로소 다음 시를 쓸 마음을 갖습니다.
이 시는 사랑의 상실을 말하기보다, 사랑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질서를 조용히 받아들이며 사랑의 완결이 아닌 사랑의 '미룸'과 '연기'를 선택합니다.
참고로 이 시는 [프리시타일 시즌2] | 2주차 백석 오늘의 시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