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것들은 내려 놓고 풀어내야 한다
- 유선미
나무를 부여잡고 통곡하는 비바람,
폭우 속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면
세상 모든 소리는 조용히
땅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저 멀리
빗속 끝에
그리움이 서 있다
잘 지내고 있냐고 아무리 외쳐도
튕겨져 나온 울림뿐
가장 길었던 낮 시간에
폭염처럼 뜨거웠을 사랑아
결국, 넘쳐나는 빗물을 뱉어내는 골목길
놓아야 무너지지 않는 둑처럼
헝클어졌던 과거를
풀어낸다
이 시에서 저는 우리 감정의 흐름을 장마라는 자연 현상에 겹쳐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장마는 이 시에서 단순한 계절적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시간입니다. 오랫동안 쌓였다가 한 번에 터지는 비처럼, 그동안 눌러두었던 그리움과 분노, 후회와 사랑이 한꺼번에 쏟아집니다.
이별 이후의 세계는, 장마 속 집안에 갇힌 사람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익숙했던 관계들은 멀어지고,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지만, 이별을 겪은 사람들은 정지된 시간 속에 머뭅니다.
중요한 점은 장마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비는 넘치면 흘려보내야 하고, 둑은 무너지기 전에 비워야 합니다. 이 시는 억지로 극복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무너지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놓아야 함을 전합니다.
이 시는 결코 사랑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별 이후에는 붙잡음이 아니라 비움이 필요함을 전하고자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