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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Aug 13. 2021

우리는 각방을 꿈꾼다.

우리는 너무 다르잖아

얼마 전 부모님의 사이가 매우 안 좋아지셨다. 두 분 모두 서로에게 다정다감한 부부는 아니었기 때문에 평생 사이가 좋았다고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극히 더 안 좋은 상태가 되셨다. 엄마와 아빠에게 각각 와 있는 갱년기는 기본이고 평생 서로에게 쌓인 감정을 제대로 풀고 살지 못한 것이 두 분의 마음 깊숙이 언제나 깔려 있었고, 그 모든 것은 언제 터지나 준비되고 있던 시한폭탄 같은 것 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시한폭탄에 장치가 켜진 것이다.


엄마 아빠와 각각 얘기를 나눠 본 바로 최근 사건의 가장 큰 발단은 엄마가 다른 방에서 주무시기 시작한 것이었다. 엄마는 관절이 너무 안 좋아져서 이곳저곳이 저리니까 찜질팩도 계속 바꿔가며 하고 주물주물 마사지도 하고 싶은데 그러다 아빠가 깰까 봐 잘 못하겠고, 게다가 원래부터 예민해서 아빠의 코골이가 힘들었던 엄마는 몸도 안 좋으니 그게 더 힘드셨던 거였다. 그래서 자식들이 쓰다가 이제는 주말에 놀러 와서나 쓰는 침대가 있는 방에서 주무셨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아빠에게는 엄청나게 큰 충격이었으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부가 한침대 한 이불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20대 초반 다니던 회사의 상무님은 부부 사이가 아주 좋으셨다. 근데 각방을 쓰신다고 했다. 왜 그러시냐고 여쭸을 때 온도차가 너무 심해서 그렇다고 하셨다. 그때는 이해를 못했다. 그래도 부부신데 그래도 되냐고…


30살에 결혼해 살면서 조금씩 상무님의 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 나는 하루에 잠을 4~5시간 자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새벽까지 놀다 들어와도 씻고 푹 자고 나면 피곤함 없이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 전 학원도 다니는 성실한 젊은이였다. 물론 '젊은이'여서 가능했을 수도 있으나 정말 항상 푹 잤던 것 같고, 그때까지 숙면이라는 단어를 별도로 생각해 볼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혼자 방을 썼고, 여자아이 방처럼 꾸미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하고 따뜻한 방이었다. 늦게 들어와서도 따뜻한 방에서 푹 자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근데 결혼을 하고 나서 숙면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연애를 할 때 나는 항상 남편의 모닝콜을 해 줬다. 출퇴근 거리가 멀기도 했고 출근 전 학원을 다니는 나의 일정 때문에 내가 항상 일찍 일어났으니까. 생각해 보면 그때 항상 남편의 전화 뒤에서는 TV 소리가 났다. 매일 TV를 켜놓고 자는 습관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게 나에게 큰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결혼을 하고 우리는 여느 신혼부부와 같이 더블침대에서 한 이불을 사용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조용하고 깜깜하고 따뜻해야 잠을 자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남편은 더운 게 싫고 TV를 틀어놓고 자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옆에서 코끼리가 지나가도 모르는 그런 비싸고 좋은 침대가 아니어서 그런가 남편이 옆에서 돌아 누울 때마다, 움직일 때마다 잠이 깼다. 그래서 나는 어는 순간부터 침대 끄트머리에서 모로 누워 자고 있었다. 남편은 코도 많이 골았다. 작은 빌라에서 시작한 우리는 안방에만 쓸 작은 에어컨을 샀는데 여름이 되면 열이 많은 남편은 에어컨을 켰고 추운 나는 겨울 이불을 코밑까지 끌어올려 덮고 잤다. 밤새도록 잠은 잤는데 자고 나도 계속 피곤했다. 처음에는 아... 왜 이렇게 피곤하지...라고만 생각했다. 얼마 지나서 이사를 하고 이번엔 그 에어컨을 거실에 달았다. 열대야에 지친 남편이 거실에 나가 자기 시작하고서야 알았다. 내가 푹 자고 있다는 사실을…


OO 씨, 미안한데... 따로 자니까 너무 편해~

얼마 후 술을 먹고 들어온 남편이 얘기를 했다. ‘OO 씨, 미안한데… 따로 자니까 너무 편해~’.

남편은 남편 나름대로 자기 코골이 때문에 내가 잠을 못 자니까 코 골면서도 스트레스였나 보다. 자기는 대자로 팔다리를 벌리고 자면서도 내가 자꾸 끄트머리에서 자니까 자면서는 자기 팔다리를 꽁꽁 묶고 자는 것처럼 불편하게 자고 있었나 보다. 더워서 에어컨을 더 세게 틀고 싶은데 나 때문에 그나마 참고 살았던 거다. 후... 우리 둘 다 너무 불편하게 살고 있었구나… 그래서 그때 얘기했다. 우리 방 하나 더 있는 큰 집으로 이사 가면 그때는 각자 방을 쓰고 더 편하게 살자고……


작은 빌라 월세로 시작한 우리는 그래도 차곡차곡 돈을 모아 결혼 9주년이 되었을 때 20평 아파트를 은행과 함께 소유하게 되었다. 그래도 은행보다는 우리 소유가 컸음에 위안. 근데 안타깝게도 방은 2개였는데 큰방도 더블침대를 넣고 나면 화장대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는 작은 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침실과 옷방으로 나누어 쓰기로 하고, 궁여지책으로 우리는 더블침대를 나눔으로 비우고 슈퍼싱글 원목 침대 두 개를 방에 들였다. 아직도 남편의 코골이는 내 귓가에서 울리지만 팔다리를 맘껏 펴고 잘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 전보다 조금은 더 행복하게 잘 수 있었다.


아빠는 우리한테 지금까지 얘기하지는 않았었지만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우리 안방을 너무나 보기가 싫었다고 하신다. 아이도 없이 살면서 저렇게 한침대 한 이불 쓰지 않는 우리가 불안해 보이셨다고 이번 기회에 이야기하신다. 한참을 말씀드렸다. 서로 편안한 잠을 보장해 줘야 건강해지고 그래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머리로는 이해하시지만 마음으로 이해되지 않는 아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를 참지 못하셨다. 엄마가 본인을 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여기도 궁여지책으로 엄마에게 양해를 구하고 더블침대를 빼고 슈퍼싱글 침대를 두 개 놓아드렸다. 특별히 각자의 잠자리 차이를 이해하시기를 원하며 비싼 모션 베드로.


아직도 아빠는 한침대 한 이불이 아닌 것이 싫고 불편하시지만 최소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고 계신 것 같다. 모션 베드의 헤드 부분을 올려놓고 폰으로 고스톱을 실행하면서…


부부는 절대 따로 자면 안 된다. 부부가 싸움을 하더라도 절대로 각방 쓰면 안 되고 한침대 한 이불 덮고 자야 한다.



아빠의 어머니는 아빠에게 이렇게 교육하셨단다. 부부가 싸움을 하더라도 절대로 각방 쓰면 안 되고 한침대 한 이불 덮고 자야 한다고.


각자 편하게 자야지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해지지...

아빠의 딸은 얘기한다. 각자 편하게 자야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나는 아직도 방 하나 더 있는 집을 꿈꾼다. 남편과 각방을 쓰며 더 푹 자고 더 건강해질 수 있기를.

내 친구는 결혼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남편의 팔 베개가 없으면 잠자기가 허전하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똑같지 않고 모든 인생이 다 다른 것처럼 이것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그저 부부 두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아야 할 뿐.


오늘도 남편은 거실에 에어컨을 켜놓고 침대 옆에 선풍기를 켜고 자고 있고, 나는 한여름에도 구스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고 자고 있지만 내 팔다리를 大자로 뻗고 잘 수 있는 소확행에 우선 행복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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