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다르잖아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어떻게 그렇게 다른 사람과 사랑하고 결혼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너무나 신기하다. 진짜 친한 친구처럼 나랑 모든 것을 공유하고 같은 것에 웃고 울고 좋아하고 놀라고 하는 감정을 공유할 수 없는데 어떻게 같이 매일 평생 같은 집에서 제일 가까운 지인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놀라울 뿐이다.
우리는 극과 극이다.
남편과 나에 대해 누군가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극과 극이라고. 나는 여름을 기다리는 사람이고 남편은 겨울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우리 여행 갈까? 하면 나는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남편은 그 지역에 대한 책을 산다. 나는 여행 자체를 즐기고 남편은 여행 가기 전까지의 설렘을 즐긴다. 그래서 막상 여행을 가서는 피곤해하는 남편과 열정 뿜뿜인 나는 종종 다투기도 많이 한다. 나는 채소와 해산물을 좋아하고 남편은 고기와 튀김과 단것을 좋아한다. 나는 따뜻한 차를 좋아하고 남편은 얼음 둥둥 콜라를 좋아한다. 나는 로맨스 영화와 소설을 좋아하고 남편은 히어로물을 비롯 로맨스만 제외한 온갖 종류의 것을 즐긴다. 나는 조용하게 자는 것을 좋아하고 남편은 그런 분위기를 답답해한다. 정말 말을 하자면 몇 날 며칠을 밤이 샐 만큼 할 얘기가 많다. 게다가 남편은 '나를 위해서 한 번만 같이 하자'라는 애교 같은 (물론 내 애교가 충분치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으나) 부탁에 '그러자'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해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가끔 나는 너무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친구들이랑 하면 되지 않냐 하지만 여자들은 친구들이 출산을 시작하면서 20년 정도는 친구 없이 지내야 하는 것 같다. 결혼 전에는 엄마가 '너 6개월 동안 집에서 밥 한 번도 안 먹은 거 알아?' 할 정도로 친구들과 노는 것 좋아하고 여기저기 모임도 많았었는데, 어느 순간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시작한 이후로는 전화 통화도 힘들어졌고 농담처럼 10년 후에 보자 말한다. 그래서 남편이 제일 친한 친구였으면 좋겠으나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너무나도 다르다.
남편과 내가 잘 맞는 것은 단 하나, 산책이다. 자연을 좋아하는데 등산은 싫어한다. 산책은 서너 시간이고 할 수 있는데 산에 올라가는 것은 싫어한다. 그래서 우리가 집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변에 산책할 자연이 어느 정도 있느냐 였었다. 우리는 지금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주 주말 공원을 산책하고, 산책하다 차 한잔 하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하고 느긋 느긋 주말 일상을 즐긴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은 주말이면 으레 공원에 갔었겠거니 하고 얘기한다.
하지만 사실 여기에도 다름은 있다. 나는 남편보다 조금 빠른 걸음을 좋아한다. 근데 남편은 빠르게 걸으면 피로를 너무 금방 느껴버린다. 그래서 가능한 천천히 걷는다. 이렇게 걷는 산책은 운동효과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하고 나서 아픈 것보다는 나으니까 남편의 속도에 맞춘다. 가끔 산책하면서 대화를 하다 신이 나서 흥을 주체 못 하고 내 걸음이 빨라지는 경우도 있다. 남편은 또 그럴 때 얘기 없이 묵묵히 맞춰주지만 끝나고 나면 많이 힘들어한다. 이렇게 같은 듯 또 다르다 우리는...
얼마 전부터 나는 달리기가 하고 싶었다. 공원을 달리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그런 욕구가 계속 생기고 있었지만 한 번도 달려본 적도 없고 혼자 달리는 것도 좀 낯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제안을 했었다. 우리 올해 말쯤에 있는 마라톤 10킬로 대회 출전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러기 위해서 틈틈이 운동을 같이 하자고.... 하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흥분된 계획이었을 뿐....ㅠㅠ 주말 아침 유일하게 남편과 함께 하는 산책을 포기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두세 시간 산책하고 나서 혼자 달리기를 할 체력은 아닌 것 같고... 마음속으로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과 다투고 난 주말 아침, 혼자라도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집 밖으로 나갔다. 달리기를 도와주는 어플을 켜고 집 앞을 당당히 걸어 나가 한강에 도착한 순간 가슴이 탁! 트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 물론, 처음이라서 인터벌로 1분 달리고 2분 걷기 정도의 가벼운(처음 생각에는..^^) 운동의 시작이었으나 숨을 헐떡거리면서 1분 달리는 와중에도 뭔가 카타르시스 같은 게 느껴졌다. 아... 신난다~
남편과의 싸움이 끝난 후에도 나는 종종 혼자 한강으로 공원으로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달리기를 나가고, 심지어 혼자서 마라톤 10km를 완주하기도 했다. 남편도 나의 시간을 기꺼운 마음으로 응원해준다.
그렇게 나 혼자 충분히 달리기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서는 나도 조금은 더 기꺼운 마음으로 남편과의 슬로우 산책을 즐길 수가 있게 되었다. 항상 뭔가를 같이해야 하는데 못하는 불편함과 불만을 마음속에 가지고 살았던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아도 됨을... 결혼 15년이 지나가면서 절실히 느꼈다.
나 혼자 뛰면 당신과 더 행복하게 걸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