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인간을 천천히 죽이는 종교

사랑은 인류의 원죄이자 반복되는 비극

by sun

사랑은 신이 죽은 뒤에도 살아남았다.

인간이 신을 잃은 날,

그 자리를 가장 먼저 차지한 것은 사랑이었다.

사람들은 신을 예배하던 방식 그대로 사랑을 믿었다.

기도하듯 이름을 부르고, 헌신하듯 감정을 바쳤다.

그리고 구원을 기다리듯 누군가의 마음을 기다렸다.

사랑은 신이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이 스스로 만든 가장 오래된 종교다.


사랑의 교리는 단순하다.

사람은 누군가를 믿고, 사랑하고, 그 믿음 속에서 자신을 잃는다.

사랑은 복잡하지 않다.

단지 고통을 예쁘게 포장했을 뿐이다.

그 안에는 도덕이, 윤리가, 그리고 신앙이 있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 깨끗해지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욕망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사랑은 인간을 구원하지 않는다.

사랑은 인간을 천천히 죽인다.


사람은 사랑 안에서 자유를 포기한다.

사랑을 하는 순간, 인간은 감정의 신전 안에 무릎을 꿇는다.

그는 자발적으로 속박을 받아들이고,

그 속박을 운명이라 부른다.

사랑은 언제나 의식으로 시작된다.

그건 고백이라는 이름의 제사이자,

자신의 자존심을 제물로 바치는 종교의식이다.

사랑은 인간을 해방시키는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감정이라는 사슬로 인간을 훈련시킨다.

그 사슬을 스스로 걸고는 “이게 행복이다”라고 말한다.


사랑의 신은 잔혹하다.

그 신은 언제나 불평등하다.

사랑의 신전에는 제단이 하나뿐이다.

누군가는 그 위에 서서 축복을 받고,

누군가는 그 밑에서 피를 흘린다.

사랑은 대칭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쪽은 더 사랑하고, 다른 한쪽은 덜 사랑한다.

한쪽은 의존하고, 다른 한쪽은 지배한다.

그 차이가 감정의 무게를 만든다.

사람은 그 무게를 신앙의 증거라 착각하지만,

그건 결국 권력의 구조다.

사랑은 권력이며, 신은 언제나 힘 있는 자의 편에 서 있다.


사랑은 인간의 윤리를 가장 세련되게 부수는 종교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착하다.

그러나 그 착함은 무의식적인 자기희생이다.

사람은 사랑 앞에서 언제나 순종적이다.

그는 스스로를 깎고, 자신을 줄이며,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없앤다.

그는 말한다.

“이게 진심이야.”

그러나 진심은 신에게 바쳐진 제물이다.

진심은 결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진심을 통해 스스로를 태운다.

그 연기가 신의 향처럼 퍼질 때, 사랑은 완성된다.


사랑의 예배는 길다.

그건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

기다림이 있고, 의심이 있고, 용서가 있다.

사랑은 매일 반복되는 의식이다.

사람은 그 의식을 수행하면서 자신이 살아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은 환각이다.

사랑은 인간의 시간을 먹는다.

감정은 생명을 갉아먹으며 오래 유지된다.

그건 단번의 고통이 아니라 천천히 썩는 상처다.

사랑은 죽이지 않는다.

그 대신 오래 버티게 한다.

그 버팀이 곧 형벌이다.


사람은 사랑을 믿는 대가로, 스스로를 잃는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신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사랑은 인간의 주체를 파괴한다.

사람은 사랑 속에서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감정의 신전 속에서 매일 죽어간다.

사랑은 인간의 ‘나는’이라는 말에 칼을 댄다.

“나”는 “우리”로 변하고,

“우리”는 “너”로 흡수된다.

그 과정에서 자아는 분해된다.

사람은 사랑이라는 종교 속에서 자신을 잃고,

그 상실을 ‘행복’이라 부른다.


사랑의 신은 침묵한다.

기도해도 대답하지 않는다.

사람은 그 침묵을 해석하려 애쓴다.

“그 사람도 나를 생각하고 있겠지.”

그건 신의 침묵을 믿으려는 인간의 마지막 자기기만이다.

사랑은 응답하지 않는다.

사랑은 언제나 인간을 시험할 뿐이다.

감정의 신은 자비롭지 않다.

그는 인간이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는지를 보고 싶어 한다.

사람은 그 침묵을 구원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그건 냉혹한 방관이다.

사랑은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다.

그 독백이 길어질수록, 인간은 더 빨리 무너진다.


사랑은 신앙처럼 반복된다.

사람은 사랑을 잃어도 다시 사랑을 찾는다.

그건 교체가 아니라 순환이다.

감정은 죽지 않고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은 또다시 무릎을 꿇고

또다시 자신을 바치며,

또다시 천천히 죽어간다.

사랑은 인간의 가장 완벽한 자학이다.

그건 인간이 자신을 벌하기 위해 만들어낸 신이다.


사랑의 신전은 인간의 내면에 있다.

그곳에는 제단도, 향도, 신상도 없다.

그 대신 기억이 있다.

과거의 얼굴, 사라진 온기, 끝나버린 문장들.

사람은 그 기억들을 모아 제단을 세우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사랑은 이미 끝났지만 의식은 계속된다.

그건 예배가 아니라 습관이다.

사람은 매일 과거를 기도한다.

그 기도는 신에게 닿지 않는다.

그건 자기 최면이다.

사람은 자신이 아직 사랑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 믿음이 인간을 천천히 죽인다.


사랑은 잔혹하다.

신은 인간을 한 번만 죽인다.

그러나 사랑은 인간을 여러 번 죽인다.

그 죽음은 느리고, 고요하며, 정교하다.

사랑은 인간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매일 조금씩 잘라낸다.

기억을, 말들을, 온기를, 그리고 존엄을.

사람은 그것을 견디며 산다.

그 견딤이 곧 예배다.


사랑은 신보다 잔혹한 종교다.

그건 인간이 만든 가장 완벽한 고통의 구조다.

사람은 사랑 안에서 구원을 꿈꾸지만,

사랑은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사랑은 다만 죽음을 미루어 준다.

조금 더 고통스럽게, 조금 더 오래,

인간이 감정을 믿을 수 없을 때까지.


사랑은 결국 인간을 버린다.

그건 신의 버림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포기하는 행위다.

사람은 그 버림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성장이라 부르고 성숙이라 부른다.

그러나 진실은 잔혹하다.

그건 단지 감정의 시체를 아름답게 치장하는 일일 뿐이다.


사랑은 인간을 천천히 죽이는 종교다.

그 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이 존재하는 한 신은 부활한다.

감정이 남아 있는 한 인간은 다시 예배한다.

사랑은 끝나도 계속된다.

그리고 인간은 그 끝없는 의식 속에서

매일 조금씩, 아무 소리 없이,

천천히 죽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