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구원하려다, 서로의 신이 되었다

사랑이 구원을 가장한 지배로 변질되는 과정

by sun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구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어둠 속에 손을 내밀고 그를 건져내겠다고 믿을 때.

그때의 인간은 가장 고결하고 가장 착한 존재처럼 보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간은

그 순간부터 타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구원의 손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건 타인의 삶을 교정하려는 욕망의 형태이며,

그 욕망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정당화된다.


사람은 구원받고 싶은 존재이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구원하고 싶은 존재다.

그건 본능이자 환상이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의미를 느끼고

누군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착각 속에서 스스로의 공허를 메운다.

하지만 그 착각은 오래가지 않는다.

구원은 상대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행위이며

그 순간 우리는 타인의 자유를 침범한다.

그의 고통을 치유하고 싶다는 말은

결국 그가 고통받는 방식을 내가 정하겠다는 선언이다.


사랑은 그렇게 신의 역할을 흉내 낸다.

한 사람은 신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신의 피조물이 된다.

그리고 그 관계는 너무나 부드럽게,

너무나 아름답게 포장된다.

“너를 위해서야.”

“네가 아프지 않길 바랐어.”

그 말들은 구원의 언어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복종을 요구하는 주문이다.

사랑은 타인을 자유롭게 하지 않는다.

그건 상대를 자신이 정의한 구원 안에 가두는,

가장 세련된 형태의 감옥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변화란 결코 타인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변화는 그 자신의 고통을 통과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사랑은 그 고통마저 빼앗는다.

“내가 너 대신 아파줄게.”

그 문장은 가장 위선적인 선언이다.

인간은 결코 타인의 고통을 대신 짊어질 수 없다.

사랑은 단지 그 고통을 감시하는 권력이 된다.

그는 상대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그 무너짐을 통해 자신이 ‘필요한 존재’임을 증명받는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잔혹한 본질이다.

사랑은 구원을 가장한 의존의 계약이다.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려는 순간

그들은 동시에 서로의 신이 된다.

그러나 신이 둘인 세계는 존재할 수 없다.

하나는 반드시 다른 하나를 부정해야 한다.

결국 사랑은 승패로 귀결된다.

누가 더 강하게 믿었는가,

누가 더 오래 견뎠는가,

누가 먼저 포기했는가.

사랑의 끝은 항상 한쪽이 신으로 남고,

다른 쪽이 제물로 사라지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사랑은 서로를 살리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사랑은 언제나 살리기 위해 죽이는 행위였다.

그는 상대를 지켜주겠다는 명목으로 그의 자율성을 잘라낸다.

그는 상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가 불행할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의 폭력이다.

그는 상대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그의 세계를 대신 설계한다.

그는 그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그를 올바르게 만들고 싶어 한다.


결국 사랑은 인간의 신성 욕구와

구원 본능이 뒤섞인 일종의 신화다.

그 신화 속에서 인간은 타인을 구하려다 스스로를 잃는다.

그는 상대의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고

상대의 행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가 사랑한 것은 타인이 아니라

타인을 사랑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었다.

사랑은 타인에게 주는 감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는 가장 미묘한 자기애다.


그렇기에 사랑은 언제나 구원을 약속하면서도

끝내 아무도 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신이 되었다고 착각하지만,

그 신은 구원의 신이 아니라 심판의 신이다.

우리는 서로의 허물을 들여다보며

그 결함을 고쳐주려 들고, 그 실패를 용서하려 들며

결국 서로를 피폐하게 만든다.

사랑은 신을 닮았지만

신보다 훨씬 더 잔혹하다.

왜냐하면 사랑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신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권력의 작동 방식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소유하지 않고서는 사랑을 느낄 수 없고,

그를 통제하지 않고서는 안심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을 하면서 동시에 속박을 배운다.

“너는 내 사람이야.”

그 한마디 안에는 모든 종교적 믿음과

동일한 맹목이 숨어 있다.

사랑은 신앙처럼 요구하고,

복종처럼 작동하며

속박처럼 지속된다.

이 관계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받았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지배에 익숙해진 자의 안정감일 뿐이다.


사랑은 결국 신의 언어를 빌려 인간을 길들인다.

“널 위해서야.”

“이게 더 나은 거야.”

그 모든 문장은 결국, “내가 옳다”는 선언이다.

사랑은 이해의 언어로 위장된 교조적 지배이며,

감정의 이름으로 실행되는 종교적 폭력이다.

우리는 서로를 구원하려다, 결국 서로의 신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신들은 자신이 만든 믿음 속에서

서로를 천천히 파괴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