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 사회가 만든 이성의 부재

가장 먼저 상처받은 자가 승리하는 사회

by sun

“이성이 없다”는 말은 차가운 것이 아니라, 감정에 질식당한 상태를 말한다.


‘이성’은 더 이상 존중받지 않는다.

냉정하다는 말은 비난이 되었으며,

침착함은 무정함으로 취급된다. 오늘의 사회는 뜨겁다.

화려하게 타오르되, 스스로 무엇을 불태우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열기 속에서, 사람들은 감정을 정당성의 무기로 삼는다. 이제 이 사회는 더 이상 ‘이성적이지 않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가장 위험하다.


감정은 논리가 되었고, 감정은 증거가 되었다.


“난 기분이 나빴어.”

“그 말에 상처받았어.”

“나는 그렇게 느꼈어.”


이 세 문장은 이제 절대적인 무기가 되었다.

반박 불가능한 자기 진술이자, 논쟁의 종결자.

누구도 상대의 감정을 함부로 의심하지 못하며,

감정의 진위를 묻는 순간 도리어 공격자가 된다.

감정은 사적 영역이 아니라, 공적 정당성의 무대로 올라섰다.


이 사회는 감정을 근거로 삼고,

이성은 그 감정을 지지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판단은 사라지고 반응만 남는다.


’그 사람의 말이 맞는가?’보다

'그 말이 나를 불쾌하게 했는가?’가 중요해졌다.

진실보다 감정이 빠르기에,

누가 더 먼저 불쾌했는가가 곧 정의의 선점이 된다.


‘분노’는 선함이 되었고, ‘슬픔’은 면죄부가 되었다.


이 시대는 분노하는 자를 정의롭다 말하고,

슬퍼하는 자를 선하다 여긴다.

감정이 크면 클수록 옳고, 감정이 많을수록 인간적이다.

감정이 없으면 비인간이고, 감정을 자제하면 냉혈한이다.


그러나 묻자.


“감정이 크다는 것은 과연 정의의 증거인가?”

“눈물이 많다는 건 도덕성의 보증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알고 있다.

누군가의 눈물은 사실 조작된 동정의 연출일 수 있고,

누군가의 분노는 자신의 열등감을 가리는 가면일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의 무게에 눌린 사회는 더 이상 그것을 묻지 않는다.

감정을 경계하는 사람은

‘무감한 자’, ‘사회 부적응자’로 취급당한다.


이런 구조에서 이성은 도망친다.

정확하게는 이성이 도망친 것이 아니라,

도망치게 만든 것이다.


감정의 과잉은 사고의 파산을 낳는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사회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사고할 능력을 잃어버렸다.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누구도 멈추지 않는다.

빠른 반응, 빠른 분노, 빠른 단죄.

논리적 사유는 지연된 반응으로 간주되고,

천천히 말하는 자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 자로 간주된다.


그리하여 사고는 사라지고, 반사신경만 남는다.

더 이상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느낄 뿐이다.

그리고 느낀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옳다고 믿는다.

이 사회에서 진실은 느껴지는 것이고, 판단은 개인의 감정에 묻힌다.


사람들은 말한다.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게 너의 진실이야.”

하지만 모든 진실은 동일한 무게를 갖지 않는다.

‘느꼈다’는 사실은 진실의 시작일 수는 있어도, 진실의 끝은 아니다.


이성은 감정보다 느리지만, 더 멀리 본다


감정은 즉각적이고 강렬하다.

그러나 이성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충분히 맥락을 보고, 충분히 정황을 듣고,

충분히 자기 내면을 되돌아보아야만 이성은 말을 꺼낸다.

그런데 지금의 사회는 ‘충분히’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 많이 말하면서도, 덜 사고하고

더 많이 반응하면서도, 덜 책임지고

더 많이 공감하면서도, 덜 검증하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이성은 그 자체로 도망친 것이 아니다.

그건 배제당했고, 조롱당했고, 침묵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은 감정보다 조용하고, 판단은 감정보다 덜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지 말라.


조용하다는 이유로,

느리다는 이유로,

덜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무시된 이성은 결국 사회 전체의 지도를 잃게 만든다.


감정은 진실의 동기가 될 수는 있으나,

진실 자체가 될 수는 없다. 감정을 느낀 것은 옳다.

그러나 그 감정이 진짜였는지,

정당했는지, 과장되지 않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판단은 오직 ‘이성’만이 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겪는 사회적 왜곡은

이성이 감정을 지배한 결과가 아니라,

감정이 이성을 몰아낸 결과다.


감정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감정은 칼날이 된다.

이성 없는 감정은 광기고 검증 없는 분노는 폭력이다.

이제 우리는 감정의 홍수 속에 빠진 이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모든 것을 느끼되, 모든 것을 믿지 마라.

모든 것을 말하되,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마라.

그리고 모든 감정의 진위를, 반드시 이성으로 다시 보아라.


그것이 진짜 ‘사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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