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시 같이 걸을까요?

회상하기.

by sun

서울의 공기는 늘 무언가로 채워져 있었다.

먼지, 매연, 커피, 피로,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정적.

그 안에서 나는 매일을 버텼다.

누군가는 성공을 위해, 누군가는 사랑을 위해 살았겠지만

나는 단지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살았다.

그게 내가 이 도시에서 지킬 수 있었던 유일한 윤리였다.


혜화동과 성북동 중 가고 싶은 날에

한 장소씩 번갈아가며 좋아하는 빵집을 가서

늘 늦은 시간이라, 진열장엔 남은 빵 몇 개가 전부였다.

‘세일’이라고 적힌 손글씨 종이가 붙어 있었고,

그 종이의 기울기만 봐도 하루의 끝이 느껴졌다.

나는 그 떨이 빵을 종이봉투에 담아 들고 나왔다.

누군가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여전히 따뜻한 온기를 품은

그 빵이 이상하게 나와 닮아 있었다.

나는 그 빵들을 종이봉투에 담으며 이상하게 안심했다.

누군가의 선택에서 벗어난 것들이 주는 온기.

그 빵을 들고 나오는 길에 늘 들던 생각이 있었다.

‘아직 따뜻하다는 건, 누군가의 하루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가끔은 성수동으로 향했다.

거기엔 오래된 공장 벽돌을 개조한 카페들과,

벽면이 흰빛으로 칠해진 전시 공간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커피 한 잔과

사진 한 장으로 하루의 의미를 남겼다.

나는 그 풍경이 흥미로웠다.

이 도시에서 ‘여유’란 단어는 언제나 연출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잠시라도

멈추기 위해 그 연출에 몸을 맡겼다.

라떼 거품 위의 미세한 잔열처럼,

그들의 일상도 금세 식어버릴 걸 알면서도 말이다.


전시장 안의 조명은 유난히 따뜻했다.

누군가의 감정을 담은 사진 한 장 앞에 멈춰 섰을 때,

나는 잠시 이 도시의 속도를 잊었다.

모두가 움직이던 곳에서, 나는 고요를 봤다.

그 고요는 짧았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그건 어쩌면, 서울이 나에게 주는 가장 정직한 위로였다.


성북천의 바람은 늘 일정했다.

책장을 넘기면 바람이 따라와서 페이지를 밀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손으로 살짝 눌러 책을 붙잡았다.

그 손끝의 온도, 그 사소한 행위가 나를 안정시켰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으면, 시간이 느려졌다.

시계의 초침은 여전히 움직이는데,

마음의 초침은 멈춘 듯했다.

책을 덮고 다시 걷기 시작하면,

어느새 청량리에 도착해 있었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지만, 이상하게도 지치지 않았다.

내 안의 소음이 걷히면, 몸은 가벼워지는 법이다.


나는 새것을 싫어했다.

무언가를 ‘갓 산다’는 행위가 이상하게 낯설었다.

그래서 옷이 필요할 때면 동묘와 황학동을 걸었다.

골목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이고,

낡은 셔츠와 코트 사이에서 시간의 냄새가 났다.

나는 옷을 고르기보다, 그 옷의 세월을 고르는 사람이었다.

주름이 남은 천, 살짝 바랜 단추, 느슨한 바느질.

그런 것들이 내 마음을 편하게 했다.

황학동의 국밥집에 앉아 따뜻한 국물을 들이켜면,

그날의 피로가 잠시 녹아내렸다.

그 국물 속엔 고향도, 위로도, 말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괜찮다’는 기분이 들었다.


해가 기울면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쇼핑백 하나를 옆에 두고,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의 불빛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었다.

그 불빛들이 지나가는 속도를 따라 눈이 움직였다.

노래는 잔잔했고, 마음은 멍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꿈꾸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그때의 나는 비로소 ‘살아 있었다’.


나는 자주 오토바이를 타고 잠수교를 달렸다.

야경이 강 위에 비치면 도로는 잠시 물이 된다.

불빛이 길게 늘어지고, 그 위를 나는 미끄러지듯 달렸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과 나 사이의 모든 경계가 사라졌다.

헬멧 속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얼굴을 때리면,

모든 생각이 흩어졌다.

도시는 여전히 불안하게 숨 쉬고 있었지만,

그 위를 달리는 나는 잠시 그 숨결에서 벗어나 있었다.


어느 날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마음이 바빴다.

무언가를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둘러 카메라를 챙겨 나왔다.

목적지도, 이유도 없이 무작정 걸었다.

길을 몰라 헤매는 감각이 오히려 나를 편하게 했다.

해방촌의 골목은 미로처럼 얽혀 있었고,

가로등 불빛이 벽돌 위에 낮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는 그 그림자들을 따라 걸으며 셔터를 눌렀다.

피사체는 없었고, 목적도 없었다.

다만 그 시간의 공기와 온도를 남기고 싶었다.


달이 예쁘게 떠 있던 날에는

그것마저 피사체가 되었다.

나는 초점이 흔들린 채로 달을 찍었고,

그 흔들림조차도 기록으로 남겼다.

어쩌면 내 하루도 그렇게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목이 마르면 골목의 마트에 들렀다.

냉장고 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와 함께

형광등 불빛이 얼굴을 비췄다.

음료를 하나 집어 들고 계산대에 올려놓을 때마다

나는 잠시 ‘살아 있음’을 느꼈다.

이 도시는 이상하게도 그런 사소한 순간에만

조용히 나를 받아주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다른 날에는 서울역 쪽으로 흘러갔다.

광장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의 리듬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누구보다 정직했다.

나는 그들 곁을 조용히 지나,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은 높은 곳을 찾아 올랐다.

도시의 소음이 희미해지고,

대신 바람과 네온사인의 진동이 들려왔다.


다리 위에 서서 셔터를 눌렀다.

아래로는 차들이 흘렀고,

불빛들은 길 위에서 엇갈리며 서로 스쳐갔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 불빛들도 결국,

이 도시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속도와 닮아 있구나.

각자의 길을 향해 달리지만,

어디선가 잠시 겹쳐지고, 다시 흩어진다.

나는 그 교차점 위에 서 있었다.

잠시 멈춰 있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움직였다.


셔터 소리와 함께 한 장의 사진이 남았다.

그 사진엔 서울의 불빛, 바람, 그리고 내 체온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도시가 나를 지워내고 있었지만,

그날의 나는 분명히 존재했다.


서울에서의 삶은 언제나 빠르고,

그 속도 속에 나는 점점 느려졌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멈추지 않기 위해’ 달렸다.

멈추면 사라질 것 같았고,

가만히 있으면 내가 나를 잃을 것 같았다.

오토바이 시동은 걸었지만

목적지도 정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그래서 도로 위의 나는 언제나

도망치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도망이 아니라 사유의 이동이었다.

달릴수록 생각이 정제되고,

속도가 빨라질수록 내면은 느려졌다.

엔진의 소음이 내 머릿속의 잡음을 대신해주었다.

그게 나만의 기도였고, 나만의 명상이었다.


라이딩을 마치고 돌아오면,

도시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혜화동의 빵집, 성북천의 벤치, 동묘와 황학동의 골목.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떨이 빵을 사서 종이봉투를 들고,

벤치 위에 백팩을 올려놓고 책을 꺼냈다.

손끝에 기름 냄새가 남아 있었지만,

그 냄새는 나에게 이상하게 따뜻했다.

‘오늘도 무언가를 지나왔다’는 증거 같았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 조금씩 닮았다.

겉으로는 바쁘게, 속으로는 지쳐 있다.

성공을 말하면서도 불안을 숨기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끝없이 비교한다.

그러나 그 비교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도시의 경쟁은 결국 ‘의미 없는 생존’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노력”이라 부른다.


밤이 깊으면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꺼진다.

그러나 서울은 절대 잠들지 않는다.

택시의 불빛, 편의점의 조명,

그리고 여전히 켜져 있는 창문들.

누군가는 야근 중이고,

누군가는 새벽 공부를 하며 내일을 준비한다.

이 도시의 불은 그렇게 꺼지지 않는다.

불빛이 곧 인간의 불안이기 때문이다.


지하철 안은 언제나 하나의 작은 세계였다.

수많은 얼굴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숙였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공간에는 언어보다 더 많은 표정이 있었다.

피곤한 직장인의 어깨,

교복 차림으로 꾸벅거리며 잠든 학생,

손에 여행 가방을 든 외국인,

그리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세상을 듣는 듯한 이어폰 속 사람들.


나는 그 틈에서 종종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얼굴마다 다른 이야기가 붙어 있었고,

목소리가 없어도 그들의 하루가 보였다.

어떤 이는 명품 쇼핑백을 들고 있었고,

어떤 이는 낡은 작업복 바지의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언제나,

이 도시의 속도에 적응하려 애쓰는

'마음 속에서 할 말은 많지만

그마저도 거두는 사람들 뿐이어다.'


멀리서 들려오는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등

낯선 억양의 한국어가 뒤섞였다.

한 칸 안에 여러 나라의 공기가 공존했다.

그들은 대개 지도 앱을 들여다보며

낯선 역의 이름을 조심스레 발음했다.

그 순간만큼은 서울이 잠시 낯설어졌고,

나는 이 도시가 하나의 행성 같다고 느꼈다.

언어가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그럼에도 한 칸의 공간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홍대나 이태원으로 향할 것 같은 사람들은

이미 그들의 옷차림과 향기로 목적지를 말하고 있었다.

형광빛 헤어컬러, 낡은 가죽재킷,

혹은 은은한 향수 냄새와 느슨한 표정.

그들의 존재는 무심한 듯, 그러나 확실하게 공간을 채웠다.

서울의 지하철은 언제나

개성과 무표정이 충돌하는 장소였다.

누군가는 자신을 표현하려 애쓰고,

누군가는 그 표현을 피하려 애쓴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속도로 흔들리며

서로의 그림자를 스쳐 지나간다.


그때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움직임이야말로 서울의 진짜 얼굴 아닐까.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도착하며,

모두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세계.

서로의 눈빛이 한 번도 맞닿지 않아도,

그 잠깐의 공존이 만들어내는 묘한 온기.

그건 어쩌면 이 도시가 허락하는

가장 인간적인 형태의 ‘함께 있음’일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보낸 지난 2년은 그렇게 흘러갔다.

매일이 같았지만,

그 같음 속에서 조금씩 다른 내가 태어났다.

분노와 슬픔, 기쁨과 무기력,

그 모든 감정이 뒤섞여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도시가 나를 스쳐 지나가던 그 시간들...

그것이 바로 나의 가장 생생한 존재의 증거였다.


서울은 매일 밤을 축제처럼 태워버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즐거움만을 찾으며 바라보고

혼자 무언가를 하기 두려워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꼬집어 말하고 싶다.

젊어서 노는 것도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는 하지만,

젊어서 누릴 수 있는 것들 외에 건설적이고 가치있는 것들을

더욱 열정 넘치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

또 다른 특권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그 불빛을 즐거움이라 부르지만,

실은 도피의 다른 이름이다.

취하지 않아도, 떠들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살 수 있다.

서울엔 술잔 대신 사색을 채울 공간이 있고,

소음 대신 바람의 온도를 느낄 길이 있다.

진짜 여유는 소비의 끝이 아니라,

고요 속에서 자신을 마주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