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끝까지 책임진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마음
1년 가까운 준비의 결과 앞에
‘숫자’와 ‘침묵’이
마주하고 있다.
『시 한 점 바람 한 줄』 출간 이후
또 한 번의 출간을 한다.
마음으로 치르는 애프터쇼, 출간 블루.
긴장과 목표가 한꺼번에 빠져나간 시점.
출간 전까지 나를 붙잡고 있던
교정, 홍보, 일정들이 사라진 뒤
갑작스레 공허가 찾아온다.
판매 숫자와 리뷰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나는 나의 성과를
필요 이상으로 깎아내린다.
오랫동안 혼자의 집중력으로 버텨온 시간들,
그 끝에서 찾아오는 번아웃.
출간 후의 우울감은
성공보다 ‘존재의 의미’로
창작을 붙잡아 왔기 때문일까.
책 한 권을 끝까지 책임진 뒤
후폭풍처럼 밀려온다.
1년 가까운 준비의 결과 앞에
‘숫자’와 ‘침묵’이 마주 서 있다.
몸이 기대했던 현실은
외면당하는 감각으로 이어지고
마치 풍선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듯
나도 함께 가라앉는다.
‘돈’보다
‘관심’이라는 제스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명해지고 싶은 건 아니다.
내 글이
이 세상 어딘가에
한 번은 남아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시장과 구조, 타이밍이라는 언어로
내 마음을 설명해 보고 싶다.
조지 오웰은
글을 쓰게 만드는 동기를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이라 했지만
나는 이 네 가지 바깥에서
또 다른 갈등을 겪고 있다.
아니라고 부정하며
캘리와 그림으로 버텨오던 마음이
다시 흔들린다.
가짜였던 걸까.
조용한 통증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온다.
상처받은 나를
다시 살아 있는 나로
일으켜야 한다.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랑이 있기에
계속 쓸 수밖에 없어서
쓰는지도 모른다.
이유를 찾기보다
조건을 먼저 정해 본다.
내 마음의 기대선을
조정해 보기로 한다.
‘왜 쓰는지’는
한 번에 번쩍 깨닫기보다
계속 자문하며
조금씩 바뀌는 답을
찾아가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