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싹 난 감자와 라디오

방향을 조금 틀었을 뿐인데

by 정써니

버리기엔 아깝고,
그대로 두기엔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다.


며칠 전,

부엌 한켠에서 싹 난 감자를 발견했습니다.

아스파라거스처럼 굵고 싱싱한 싹이

꽤 의욕적으로 자라 있었더라구요.


버리기엔 괜히 마음이 쓰였고

심자니 땅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잠시 망설이다

결국 손질을 시작했죠.


싹 난 감자엔 독이 있다지만

조심조심 깎고, 자르고.

하다 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아

괜히 더 망설여졌습니다.

이걸 굳이 여기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스쳤습니다.


그래도

그냥 버리긴 아까워

반찬 대신 감자전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와 함께

감자는 전혀 다른 얼굴이 되었고

애매했던 선택은

의외로 근사한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애매해 보이는 것들도

방향만 잘 잡으면

의외로 괜찮아질 수 있다는 걸요.


이 글을

라디오 사연으로 보냈다.

그리고 바로

방송에서 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감자의 변신은 무죄였음을

사연은 그대로 전파를 탔다.


신청곡으로는

Billie Holiday의

〈I'm a Fool to Want You〉 가 나왔다.

그 노래가 흐르는 동안

감자전과 라디오와

하루의 끝이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돌아보면

그날의 감자는

조금 애매한 상태였고

나 역시 그런 날들이 많았다.

버리기엔 아깝고

그대로 두기엔 마음에 걸리는 것들.


어쩌면 삶도 그렇다.

완벽하지 않아도

방향만 조금 바꾸면

의외로 무사해질 수 있다는 것.


그날,

싹 난 감자 하나가

그걸 알려주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