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힌 마음을 다시 펼치지 않기로 한 시간
접힌 마음은 시간을 덮고,
말을 가리고,
결국 나를 숨겼다.
사랑은 찢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프게 갈라지고, 소리가 나고, 흔적이 남는 것이라고.
그런데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랑은 찢어지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한 번에 접힌다.
마음을 내주는 일은
생각보다 큰 대가를 요구한다.
말은 쌓이고, 온도는 생기고,
서로 꽤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분명히 오는데
어느 날은 그 모든 것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접혀 있다.
쉽게 접을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감정은 씁쓸함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찢고 싶지 않았다.
없던 일처럼 버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접었다.
한 번 접으니 모서리가 생겼고
그 모서리는 얇은 마음을 가렸다.
접힌 마음은 시간을 덮고
말을 가리고
결국 나를 숨겼다.
요 며칠,
나는 내가 쓴 글들을 다시 필사하고 있다.
누군가의 문장이 아니라
나 자신의 문장을 한 줄 한 줄 옮겨 적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글을 써왔다는 걸 알았다.
그 필사는
과거를 미화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나를 분명히 하기 위한 시간에 가까웠다.
필사를 할수록
이제는 그 누구와도
지켜야 할 거리를 분명히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사람을 밀어내겠다는 뜻이 아니라
내 마음을 종이처럼 만들지 않기 위해서.
새롭게 도전 할 시집에 대해서도
아직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
준비는 하고 있지만
밀어붙일 마음은 없다.
첫 책을 만들 때는
멋져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공을 많이 들였고,
그래서 회수되지 않은 마음 앞에서
더 서운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책은
잘 보이기 위한 책이 아니라
남겨두었던 마음을 그대로 실은 책이 될 것이다.
자연스러웠던 시간들 전부를.
그래서 이제는
‘종이사랑’에 무게를 주지 않기로 했다.
이미 충분히 존중했으니
더 눌러 적지 않기로.
접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마음은 충분히 설명된다.
지금은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중이다.
한 편 쓰고,
한 편 남기고,
마음이 가는 쪽만 조용히 따라가면서.
사랑이 다시 펼쳐질지 아닐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이제는 쉽게 펼치지 않겠다는 것.
나이는 먹었는데도
여전히 맹탕 같은 부분이 있다.
그게 나라는 사람의 바탕이라는 것도
이제는 인정하게 되었다.
종이는 여전히 얇다.
그래도 예전처럼 아무 데서나 접히지는 않는다.
접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마음은 충분히 설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