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떠난 집, 느린 음악과 소박한 밥상이 남았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서서히 오버랩되며,
아주 느린 속도로
마음속을 스크롤해 내려간다.
고요한 클래식 음악은 늘 마음을 가라앉힌다. 오랜만에 여유로운 휴일 아침, 클래식을 틀어놓고 밥을 짓는다. 예전에는 아침이 늘 분주했는데, 오늘은 음악과 함께 느린 시간 속에 있다.
품 안에 있던 두 아이는 어느새 성인이 되어 둥지를 떠났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일은 이제 특별한 날의 의식이 되었다. 집은 넓어졌고, 그 안에는 언젠가부터 서로의 익어감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평생의 동행인 둘만 남았다.
오늘의 메뉴는 간단한 주먹밥이다. 쌀을 씻어 압력솥에 안치고, 잔멸치를 볶는다. 올리브유를 두르고 편마늘과 청양고추를 먼저 볶은 뒤 멸치를 넣고, 마요네즈를 조금 더한다. 마지막으로 참깨와 참기름을 넣어 마무리한다.
그다음은 계란말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다. 파를 넉넉히 넣고 각을 잡아 예쁘게 돌돌 말아낸다. 별것 아닌 일상적인 요리지만, 오랜만에 이런 평범한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좋다.
갓 지은 밥에 볶은 잔멸치와 김가루를 넣고 조물조물 비벼 한 입 크기의 주먹밥을 만든다. 아이들이 어릴 적, 학교 가기 전 자주 해주던 식사다. 이제는 그 주인공들 없이 우리 부부만의 식사가 되어 이 밥상을 마주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소박하고 조촐한 밥상을 차리자, 남편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젓가락을 챙긴다. 그리고 시키지도 않은 컵라면을 하나 뜯어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 모습이 괜히 웃음을 자아낸다.
그렇게 클래식한 아침 식사가 끝나고, 차린 것에 비해 수북이 쌓인 설거지를 할 즈음 라디오에서는 클래식 음악의 페이지가 넘어가고 영화 음악이 흐른다. 비록 진수성찬은 아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침을 먹은 기분이다.
따뜻한 물로 설거지를 하는 이 느린 장면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처럼 마음에 겹쳐진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서서히 오버랩되며, 아주 느린 속도로 마음속을 스크롤해 내려간다.
아침을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행복은 특별한 날에 찾아오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여전히 밥을 짓고
누군가와 마주 앉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속에.
조용히 남아 있다는 것을.
[태그]
#브런치에세이 #일상의 기록 #아침풍경 #부부의 시간
#느린 아침 #집밥 #소박한 행복 #중년의 일상
#음악과일상 #클래식 #리틀포레스트감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