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환 개인전 《대단한 좌대, 그 위에 올려진 알 수 없는 무언가》 서평
2023 공주문화예술촌 릴레이전
고동환 개인전 《대단한 좌대, 그 위에 올려진 알 수 없는 무언가》
2023. 9. 13. - 9. 24.
공주문화예술촌의 릴레이전으로 고동환 작가의 개인전이 올해 9월 열렸다. 한창 전시를 준비하던 작가를 만나기 위해 처음 레지던시 문을 열었을 때 마주한 합판 냄새와 목재의 먼지들, 그리고 페인트 냄새를 기억한다. 전기톱, 자, 목재들과 3D프린터기까지 누가 보아도 조각하는 작가의 분주한 작업실이었다. 전시 오픈을 며칠 남기지 않은 터라 자연스레 작업실을 훑으며 출품작들을 찾아보았지만 여기저기 잘려 나간 조각들의 잉여물과 꽤나 튼튼하게 만들어진 좌대들, 그리고 그 사이 존재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몇가지의 공산품들이 뒤섞여 있는 작업실에서 완성된 어떠한 하나의 ‘작품’을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작가의 ‘조각 작품’이 한눈에 인지되지 않은 이유는, 조형적으로 특색있는 물체라곤 기성품인 작은 캐릭터 인형이나 하수구 뚜껑 두 개를 맞붙여 놓은 둥근 형태의 물체, 의자의 발목 부분을 떼어내 색으로 칠해놓은 것들이며 나머지는 모두 작업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산된,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은 부산물들이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익명의 공산품들을 작품에 활용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한 물체가 아니라 어딘가의 한 부분을 담당하던 물체를 '조형 재료'로서 채택했다. 일상의 사물이 가진 형상이나 질감에 작가는 도색을, 혹은 조립을 통해 새로운 형태를 부여했다. 이러한 잡화들은 더 이상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마치 미니멀리즘이 전통적으로 조각이라고 부르기 힘든 대상들을 정당화하며 오브제에 생명을 부여한 것처럼, 기능이 탈락된 이 물체들(붓, 휴지조각, 상의 다리나 의자의 발통, 물감튜브, 혹은 못, 펜치, 망치와 같은 수공구 등)은 작가를 통해 ‘조각’이라는 형질로 다시 태어나 오롯이 그것이 가진 조형미에 주목받게 된 것이다.
한 층 더 나아가 흥미로운 점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린, 한때는 어디에서 제 역할을 다하던 물체들이 작가가 직접 제작한 좌대 위에서 새로이 위치하며 그 아이러니가 강화되는 지점이다. 작가는 각각의 형태, 사이즈, 높낮이와 함께 색과 패턴을 가진 좌대를 제작했다. 작가는 상대적으로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 ‘대단한’ 좌대를 만든 후 그 위에 놓여졌달까, 붙여졌달까 하는 외소한 조형물들을 위치시키며 작업을 완성시켜 나갔다. 미니멀리즘의 작가들은 좌대를 없앰으로써 물성 자체를 강조했다면, 역으로 고동환 작가는 좌대의 역할을 증폭시켜 ‘작품’에 내재하는 의미들을 뒤흔든다. 현대의 잡화들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작품같은 좌대 위에 놓여져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길 기다리는 존재가 되었다. 그 가치란 작가로 인해 정해지는 것은 명백히 아니었다.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을 통해, 혹은 조각과 좌대가 서로 연대하며 스스로의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인가, 혹은 그토록 원하는 특별한 가치가 필요하긴 한걸까?
전시를 통해 작가가 던지는 물음들은 결국 우리가 ‘안다’라는 인식 체계를 의심하게 하며 이는 ‘조각 작품’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데에도 매우 성공적이다. 글의 서두에 묘사했던 작업실의 첫인상은 작가가 현재 가지는 작업적 고민과 다양한 실험적 욕구들이 작업의 과정과 하나의 맥락으로 엮이며 결국 전시로까지 이어지는 것에 대한 방증이다. 기존에 작가는 집을, 움직이는 조각을, 그리고 공간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더욱 정적인, 그리고 고정되어있는 어떠한 물체로서의 조각을, 그로 인해 새롭게 발생하는 지각적 조합을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조각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특별한 재료를 활용하는 작가도 아니며, 그렇다고 손재주나 용접기술이 좋아서 본인만의 형상을 기술적으로 보여주는 작가도 아니다. 매 전시마다 새로운 미감과 감각, 그리고 의미들과 물음들을 던지지만 공통적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관통되는 미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참 아이러니다. 조각가라고 분명하게 부르기 힘든 작가가 조각의 본질을 꽤뚫는 질문을 던지니 말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공간 안에서 서로 관계하며 놓여진 아이러니의 조각들은 물성보다는 시각의 지각적 패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후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보면 작업 과정에서 발생된 흔적을 그대로 활용했다는 사실들을 발견하며 부산물이 주인공이 되는 현장을 목격한다. 꾸며진 좌대 위에 놓여있는 물체들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전시장 전체에서 전경으로서의 조각들이 서로 관계맺는 공간지각적 미감을 감상하다보면 계속해서 치환되는 갑을관계들을 마주하게된다. 이 과정에서 조형적 재료의 예상치 못한 변화가 나타나곤 하는데, 조각을 대면한 감상자는 왜 이 물체인지에 대한 질문에 앞서, 좌대와 색의 패턴들, 나아가 그 옆에 놓여진 조각들과의 관계들을 읽어 나간다. 그리고 무엇이 공산품인가라는 생각은 종종 잊혀진다.
공산품이 좌대 위에서의 새로운 가치를 기대하듯, 조각 작품은 전시장이라는 공간에 놓여짐으로써 확장되는 맥락을 생성한다. 전시를 준비하던 작가는 재발견된 공산품, 제법 잘 만들어진 좌대,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긴 조각들 사이에서 다양한 시도를 계속하며 이는 결국 전시장에서 설치해 봐야 알것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작가의 공간 속에서 들어와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에 대한 이타적인 관심으로, 관람객의 시지각적 인지와 신체의 움직임을 유도한다. 결국 이 모든것은 이타적인 작가의 개인적 성향에서 기인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공산품과 작품, 작품과 좌대와의 관계, 조각과 감상자, 나아가 감상자와 작가 스스로의 관계에 대한 관심은 작가 작업 전반에 기저해 있는 원초적 요소이다. 예술작품과 일상의 사물 사이에 본인의 조각 작품을 위치시키며 작품과 좌대의 사이, 그리고 조각과 감상자의 사이를 계속해서 비집고 파고든다. 작가는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조각의 범주를 갱신하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아가는 태도를 지켜가며 조각작품과 관객의 관계실험을 이어간다.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준 고동환 작가의 조각적 영역에 대한 사유와 관계에 대한 고민은 동시대의 조각 장르를 새로이 살피는 것과 동시에 공존하는 모든것들 사이에 발생하는 관계와 낙차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다. 이를 통해 '이게 과연 조각인가'라는 의문을 넘어 조각의 범주를 갱신하고 자유로운 관계실험들을 만끽하길 바란다.
이혜원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