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학급운영 세미나.
세미나를 마치고, 나눔을 할 때, 평택 모임의 허OO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었다. 학급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가장무도회를 하지 않나, 세족식을 하지 않나...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었다.
특히나, [세족식]이 참 인상 깊었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섬기는 모습으로 서고자 했던 그것을 본받아 학생들의 발을 씻어주었다는 말은 가슴에 깊이 남아 있었다.
학기를 마치면서 꼭 한번 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막상 1학기 말이 다가오자 마음속에서 약간의 부담감이 일었다.
‘아이들이 과연 발을 씻으려고 할까?’
‘세숫대야를 준비해 올까?’
‘힘들지는 않을까?’
‘다른 선생님들이 꺼려하고 불편해 하시진 않을까?’
온갖 생각들이, 세족식을 하고자 했던 나의 마음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이왕 마음먹은 것. 하기로 결정을 하고, 어제 종례시간에 아이들에게 수건을 모두 준비해 오라고 했다. 다행히 미술시간에 대야가 필요해서 아이들이 교실에 둔 대야가 네 개 정도 있었다.
수건을 가져오라는 나의 말에 녀석들은 아니나 다를까 아우성이었다.
쌤~ 수건은 왜요?
쌤, 또 무슨 일 벌이시려고요?
샘이 가져오라고 하면,
궁금해도 그냥 [네]하고 가져오면
안 되겠니?
내 말에 호☆이 녀석 온몸으로 대답했다.
쌤~ 궁금해 미칠 것 같아요~!
왜 수건을 가져와요?
끝까지 말을 하지 않으려다가, 혹시라도 내일 발이 너무 지저분해서 당황하는 녀석들이 있을 것 같아 운을 떼어 놓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응^^ 내일 [세족식]을 할 거야.
네? 그게 뭐예요?
글쎄... [세] 자가
무슨 [세] 자 일까?
나의 질문에 녀석들이 대답했다.
찍새요!
짭새요!
‘헉.’
얘들아~!
씻을 [세], 발 [족]! 오케이?
그러자 광☆이 녀석이 불쑥 물었다.
발을 왜 닦아요?
암튼, 내일 발을 씻을 테니
꼭 수건 준비해 와.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교무실로 내려왔다.
가만히 앉아있자니, 광☆이와 옆 반의 병☆가 나를 불렀다.
쌤~ 발을 왜 닦아요?
쉿~!
암튼.. 닦을 테니깐,
그렇게 알고 얼른 가!
다른 선생님들이 모르시게 조용히 하고 싶은데 녀석들은 교무실에 와서 큰 소리로 자꾸 질문을 해 댄다.
병☆는 한 마디 더 한다.
어?
저 그거 교회에서 전도사님이 해 주셨었는데,
설마, 남녀 남녀 짝지어서
시키는 거 아니죠?
그러면 안 돼요!
우리 반 여학생과 사귀는 옆 반 병☆는 혹시라도 자신의 여자 친구의 발을 우리 반 남학생이 씻어주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될까 봐 노심초사였다.
얼른 가~!
녀석들은 자기네들끼리 짝지어서 발을 씻게 할 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막상 세족식을 하겠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니, 가슴이 두근거려왔다.
‘잘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내 취지를 잘 이해할까?’
답답한 마음에 유O 샘께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어떻게 이야기하고 시작해야 하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등등...
드디어 오늘.
세족식을 하기로 한 국어시간은 3교시였다.
3교시 시작종이 울리고, 드디어 교실로 올라갔다.
근데, 왜 그렇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울컥거리기도 하고, 긴장이 되는 것인지.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조용한 음악을 틀어 놓고, 불을 끄게 했다.
그래도 어수선한 녀석들이 있어서 눈을 감게 했다.
“여러분~! 벌써 한 학기가 끝나 가죠?
한 학기 동안 고생 많았어요.
특별히 올해를 시작하면서 선생님은
우리 반이 [섬기는 모습]을
좀 배웠으면 하는 바람에서
급훈도
[섬기는 모습을 통해 성장하는 우리]라고 정했는데,
한 학기를 되돌아보니
섬기는 모습이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이제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우리의 삶을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어요.
그것은 제자들을 섬기겠다는 의미였죠.
그래서 선생님도 한 학기를 반성하며,
앞으로 더 여러분을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발을 씻어주려고 해요.
엄숙하게 내 얘길 듣던 녀석들이 내가 발을 씻어주겠다는 말에 갑자기 눈을 뜨면서 술렁거렸다.
쌤이 저희 발을 씻어 주시는 거예요?
진짜로 발 닦는 거예요?
여기저기에서 난리였다.
쌤! 저는 불교예요.
발 안 닦을래요.
불교이든, 다른 종교이든, 그건 상관없죠.
선생님도 한 학기를 마치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깐,
여러분 한 명 한 명에게 더 깊이 있게 다가가지 못하고,
많이 도와주지도 못한 점들이 마음에 걸려요.
그래서 이 시간 여러분의 발을 씻기면서
반성도 하고, 새로운 다짐도 하고 싶으니깐,
발 안 닦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말에 녀석들은 다시 잠잠해졌다.
이렇게 세족식이 시작되었다.
다섯 개의 대야에 물을 받아 놓고, 1번부터 5번까지 자리에 앉힌 후 한 명 한 명의 발을 씻어주었다. 녀석들은 쑥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했고, 수건으로 닦아주려고 하니, 그것만은 제발 자신이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우겨서, 녀석들의 젖은 발을 수건으로 꼼꼼히 닦아주었다.
인☆이는 “쌤! 감사해요!”라고 말하고,
호☆이는 “우와~! 집에 가서 엄마한테 자랑해야지!” 하면서 발을 내밀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쌤~!
그럼 내년에는
머리 감겨 주시나요?
그 말에 다른 녀석이 받아치는 말,
아니지~!
등목 해 주시겠지.
그러자 녀석들이 모두 깔깔깔 웃어댔다.
우와~!
우리 우☆이는 발이 큰 거 보니깐,
키 많이 크겠다.
진짜요?
그럼~!
내 말에 우☆이 녀석은 싱글벙글.
윤☆이는 발이 참 작고 예쁘네.
부끄럼 많은 윤진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발 닦는 거 정말 안 하고 싶다고 영☆이 녀석이 이야기하자, 광☆이 녀석 왈,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선생님이 발 닦아 주시겠냐?
나는 두 번이라도 닦겠다.
이 말에 영☆이도 얌전히 발을 내밀었다.
녀석들이 어수선하고 정신없이 떠들까 봐 걱정했는데, 자신의 차례가 끝나면 새 물을 받아서 놓는 일을 잘했다.
여학생들은 자리에 앉아서 내가 발을 씻으려고 하면 , “쌤! 죄송해요” 라는 말을 연거푸 쏟아내었다.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우리, 2학기 땐 더 열심히 살자!
네~.
세족식을 다 마치고 나자, 녀석들은 여기저기에서 시원하고 개운하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발을 씻으며, 한 학기를 돌아보았다.
‘이 녀석과 개인적으로 얼마만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나. 이 녀석을 얼마만큼이나 이해하려고 노력했나...’
‘3월의 첫 마음이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꾸만 콧날이 시큰해져 왔다.
세족식을 하기 전, 그토록 긴장되고 떨렸던 마음은, 다른 게 아니라 한 학기 동안 내게 맡겨주신 아이들에게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될 것임을 직감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쌤~!
쌤 손에 무좀 걸리면 어떡해요~!
쌤~! 호☆이 발 냄새 때문에
한 며칠 동안은 손에 소독 많이 하셔야 할 거예요.
쌤! 짱이에요!
사랑해요!
발을 닦아주고 있는 나를 향해 아이들이 뒤에서 외치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나의 작은 수고에도 감동받는 아이들.
늘 사랑에 목말라 있는 아이들...
‘2학기엔 더 열심히 사랑하고, 더 열심히 섬길 수 있도록, 늘 첫 마음을 잃지 않게 하시고 힘 주세요.’
오늘도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아이들이 있음에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하루였음을 고백한다.
2005.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