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사랑을 아니?

by 친절한 햇살씨

[즐거운 편지] 수업


먼저, 시를 들어가기에 앞서,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편지 받아본 사람?


저요~!


없어요~!


얘들아~편지 좀 써 주고 그래라..
편지도 못 받아봤댔잖니...



그러자 저쪽에서 한 녀석 왈,



저는 수 십 통씩 받아요!


진짜?


네.. 스팸 매일요!


크하하~!


스팸 메일 오면 기분 나쁘잖아!


아니에요. 좋아요~!



혹시...
이상한 메일 아냐?



이 말에 모두 킥킥거리며 웃는다.

시를 아이들에게 한번 읽게 했다. 읽고 나서 물었다.




얘들아~ 너~무 멋있지 않니?



네~ 멋있어요~~~ 오~~~!



그렇지?
이 시를 시인이
몇 살 때 썼을 것 같아?



스물요.



서른아홉.


마흔.


여든.

열세 살요!


이 시는 말이야,
시인이 고3 때 썼대.



우~~~~~~~~~~~~~~~~~~~.




모든 아이들이 놀라워하는데, 광☆이 녀석 왈,



학생이 한참 공부할 나이에
연애편지나 썼다는 말?



이 말에 모두 까르르 웃는다.




시인이 말이지,
대학생인 누나를 말이야,
짝사랑했다는 거야.



우~~~~~우~~~~~~~~우~~~~~~~!




녀석들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그래서, 어느 날,
누나에게 고백했지.
[누나, 누나 좋아해요]라고 말이야.


우와~~~~~~~~~!



녀석들, 흥분하면서 진짜 좋아한다.




그랬더니,
누나가 뭐라고 했는 줄 알아?


꺼져~!


즐~


됐다~

꺼지삼


아냐... 진짜 귀엽다는 듯이,
그냥 동생으로만 바라보면서

"이런 감정은 해가 뜨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야,
언젠간 자연스럽게
잊히고 흘러갈 거야"

라고 이야기를 한 거지.



어~ 마음 아프겠다.


여학생들은 애틋한 눈빛으로 인상을 써가면서 마치 자기가 실연이라도 당한 것인 양 이야기한다.


그러자 한쪽에선 "누난 내 여자니깐, 누난 내 여자니까~안~!♫" 하면서 노래한다.



그러고 나서,
이 시인이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니...
너희도 짝사랑하는 사람 있지?


녀석들, 킥킥거릴 뿐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분명히 누군가를 몰래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생각해 봐.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기의 진심을 몰라주는 거야.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들.



자, 너희들이, 이 시인이라 생각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다시 한번 시를 읽어보자.



시를 한 번 더 읽고 나서 물었다.



분위기가 어때?



슬퍼요~



어두워요!


멋있어요~



이 화자는 뭘 말하고 싶어 하는 거야?


기다린다고요.


끝까지 사랑한다고요.



그렇지? 너무 멋지지?



봐봐,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와~~~ 이 사람은 언제
그대를 생각한다고 하는 거야?



항상요~


그렇지?
[특별한] 때가 아니라,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사소한 그런 모든 일상에서
그대를 생각한대.



우~~~~ 와~~~~ 아~~~~~!



그리고, 그다음을 봐 봐.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그대가 힘들어하고 외로워하고, 아파할 때,
그때 다가가서 그대를 불러준다고 하지?
생각해봐.
너희가 진짜 외롭고 힘들고 아플 때,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누군가가 다가와서 조용하게
이름을 불러주면 어떻겠어?


좋아요~




그렇지?
감동이 돼서 울컥하겠지?


행복해요~


네~~~


이 대목을 읽으니깐,
노래가 떠올라.



무슨 노래요?


[서시]



윤동주의 서시요?


그건 시잖아...
신성우의 [서시]


불러보세요~



아냐, K가 불러봐.
저번에 노래방에서 부른 적 있잖아~



근데 K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부르지 않는다고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그러자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J 녀석이 중얼거린다.



내가 항상 여기~~


이~야, J가 불러본대!
모두 박수~~~!!!!!!!


이~야~~~~~짝짝짝.



해가 지기 전에 가려했지~


오~ 느끼해~


쉿!


너와 내가 있는
그 언덕 풍경 속에~~~
내가 항상 여기 서 있을게,
걷다가 지친 네가
나를 볼 수 있게~~~~~




으악~~~쌤~!
넘 느끼해요~
닭살 돋아요!

녀석들은 팔에 일어난 닭살을 털어내는 시늉을 하면서, 귀를 막으면서 경악(?)했다.


녀석들의 호들갑에 끝까지 버티면서 웃으며 느끼하게 노래하던 J가 노래를 멈췄다.


2연까지 읽고 나서 한 마디 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봐주진 않지만,
나는 내 사랑을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그것마저도 사랑한다.
나는 언제나 이 기다림의 자세를
잃지 않겠다는 이 화자의 고백.
진짜 멋있지 않아?




녀석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키득키득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또 생각나는 노래.


뭔데요?


인형의 꿈


그게 뭐예요?


그거 있잖아...
한걸음 뒤엔
항상 내가 서있는데,
그댄~~~~ 이런 거 말이야.



불러보세요~!
불러주세요~



에~이,
샘은 반주가 없으면 안 불러~


그런 게 어딨어요,
재종이는 반주 없이 시키고,
샘은 반주가 있어야 한다니,
불공평해요~!


그래?
흠흠...
한 번 해보지 뭐..
흠흠...



노래를 하려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데, 시작을 하려고 하니, K 녀석이 또 딴지를 건다.




쌤 , 그냥 노래하지 마요~!




뭐야~ 됐어,
노래할 거니깐, 너는 귀 막아.



내 말에 녀석들이 깔깔거린다.


그러자 창가에 앉은 호선이 녀석 왈,



쌤, 저도 듣기 싫어요, 안 들을래요.




그래! 너는 엎드려 있어~



이렇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해 놓고 노래를 시작한다.




그대, 먼 곳만 보네요.♬
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 ,
♫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날 볼 수 있을 텐데 ♩~~~


노래를 하는데 자꾸만 키득키득 웃음이 난다. 녀석들도 키득거리면서 나를 지켜본다.


근데, 갑자기, 수업 전에 생일파티하느라 나누어 주었던 초코파이를 [지금이 기회다]하면서 뱁새눈을 하고선, 내 눈치를 살피며 열심히 먹는 M의 모습이 너무 웃기다. 겨우 웃음을 가라앉히면서 노래를 계속한다.




처음엔 그대로 좋았죠~♬ ~



노래를 하는데, 이번에는 맨 앞에 앉은 D 녀석, 갑자기 엎드려서 자는 시늉을 하고, K는 귀를 틀어막으며 깔깔거린다.



하지만 끝없는 기다림~에
♫ 이제 난 지쳐 가나 봐♩




우~~~~~~~



후렴구를 막 들어가려 하는데, 녀석들. 노래가 끝난 줄 알고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른다.



야~ 너무하는 거 아냐?
샘이 노래하는데 말이야,
M양은 초코파이 몰래 먹으려고 난리고,
D는 엎드리고 말이야~



녀석들은 계속 깔깔거리기만 한다.


그러더니 어디선가 한 녀석 왈,



너무 웃어서 배고프다.


그 말에 갑자기 화제가 또 [급식]으로 바뀐다.




얘들아~제발.
이제 다시 책으로 돌아오자~
자.. 이제부터, 너희들이 이 화자라고 생각하고,
이 시를 쓰게 된 사연을
방송국에 보낸다고 생각하고 써보도록 하자.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네~~~~~



웃고 떠들던 녀석들이 갑자기 진지해진다. 그리고 뭔가를 열심히 끄적거리기 시작한다.


조금 있으니, 끝종이 울린다.


집에서 사연을 써 오라고 숙제를 내주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내가 다른 과목이 아니라 [국어교사] 임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진다.


아이들과 사랑, 기다림,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아이들이 가진 정서를 끌어낼 수 있는 시간임이 얼마나 감사한가!


아이들의 잠재된 감정과 정서, 그리고 끼를 맘껏 드러낼 수 있게 해 주도록 노력해야겠단 생각을 하면서, 녀석들이 다음 시간에 어떤 사연을 가지고 올지 기대하며 , 나는 참 행복한 교사라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 배시시 웃으면서 교무실로 돌아온다.


200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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