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가정방문의 마지막 날.
출근을 하면서, 오늘이 가정방문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니 그동안의 피로가 다 씻겨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마무리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정방문을 편안하게 마무리하도록. 하늘은 도와주지 않았다.
6교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우리 반 녀석들이 달려오더니, “날씨가 어둡고 비도 오고 천둥도 치니깐 종례시간에 꼭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세요.”라고 말하고선 들어갔다.
‘녀석들, 귀엽네...’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다가, 네이버 검색창에 “무서운 이야기”를 치고선 이것저것 봤으나 녀석들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깃거리를 찾지 못한 채 7교시 수업을 들어갔다.
그런데.
하늘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깜깜한 날씨.
천둥과 번쩍번쩍하는 번개. 그리고 바람과 빗줄기.
한 여름의 장마철이나 되는 듯했다.
‘아무래도 오늘 가정방문은 미루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하며 종례를 하러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가자 아이들은 창밖을 보며 지르면서 “벼락아 떨어져 봐라!”하고 소리치며 놀고 있었다..(ㅠ.ㅠ)
내가 교탁 앞에 서 있자 녀석들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쌤, 오늘 가정방문하세요?”
“하시면 안 돼요”
“천둥이랑 번개 좀 봐요~ 무서워요”
“글쎄...... 날씨가 넘 그렇지?”
내 말에 어디선가 들리는 음성.
“하나님이 도와주시겠지 뭐!”
순간, 어떤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보다 믿음이 크다 생각되었다.
오늘 방문하게 되어있는 세 녀석을 따로 불렀다.
“얘들아! 날씨가 이런데, 담에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안 돼요! 오늘 해야 해요”
“왜?”
“엄마가 오늘밖에 시간 안 된댔어요”
세 명중 두 녀석이 오늘 꼭 해야만 한단다.(ㅠ.ㅠ)
나를 훈련을 아주 단단히 시키신다 생각하며, 녀석들과 우산을 쓰고 가정방문을 나섰다.
한 시간에 한 대 있다는 마을버스는 20분이 지나도록 오질 않았다.
정류장에서 비 오는 와중에도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버스가 왔다. 작은 마을버스를 타고 20분 넘게 꼬불꼬불 골목길을 지나, 지☆의 집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데 어찌나 번개가 치고 천둥이 크게 울리던지. “으악~~~~!” 하는 소리를 몇 번이나 지른 후에야 지혜네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지☆네 다음이 인☆와 민☆네인데, 지☆네에서 인☆네에 가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는데, 40분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20분을 걸어가서 큰길에서 버스를 타야 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인☆ 어머님께서 데리러 오신다고 길을 잘 모르시니, 큰길까지만 어떻게 나와보라고 하셔서 우리는 열심히 걸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뭐가 이렇게 따갑지?’라고 생각한 순간 땅바닥을 보니, 하얗게 떨어져 있는 우박.
“으악~! 쌤~ 우박이에요~”
“쌤~ 피해요~ 차 지나가요~ 우리 다 젖어요~”
갓길도 없는 길을 차를 피해 가며 빗속을 걷는데 사실 속으로는 걱정이 되어 기도했었다.
걷는 게 힘든지 인☆가 한 마디 했다.
“쌤, 웬만하면 차 한 대 장만하시죠.”
“그러게...^^a"
인☆ 어머님이 마중 나와 계신 큰길까지 갔을 땐, 우리 셋의 옷은 몽땅 젖어있었고, 내 구두 안에는 물이 들어와 구두가 평소 무게의 두배는 넘게 느껴졌다.
차를 타고 인☆네로 이동.
문제는 계속되었다.
인☆네에서 방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머니~ 저기.... 제가 발이 다 젖어서.. 들어가기가....”
“아유.. 괜찮아요 선생님. 들어오세요.”
인☆어머니는 수건을 주셨다.
“네.^^a 그럼... 저.. 스타킹을 좀 벗을게요.^^a"
"그러세요 , 선생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타킹을 벗고, 맨발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ㅠ.ㅠ)
어머님과 인☆와 이야기를 나눈 후, 마지막 가정방문의 집... 민☆네로 향했다.
인☆ 어머님께서 데려다주시는데, 번개와 천둥에 어머님도 운전하시면서 깜짝깜짝 놀라셨다.
나도 속으로 엄청 놀라고 무서웠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이렇게 번개 치고 천둥칠 때는 차 안이 제일 안전하대요.^^”
내 말에 인☆ 어머님은.
“어머, 그래요? 아휴. 다행이네요. 근데 저 안테나를 치는 건 아닐까요?”
“ 글쎄... 그것까진 제가.. 잘..^^a"
드디어 민☆네 도착.
어머님이 문을 열어주셨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선생님.^^”
“저.. 어머님... 제가 맨발이라서 좀 추해요.ㅎㅎㅎ”
“아녜요, 괜찮아요. 안 그래도 스타킹 사 뒀어요.”
민☆ 녀석. 그 사이에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나 보다.
“선생님, 발 차가우실 텐데 스타킹 신으세요.”
“아니에요. 저희 집이 바로 여기 근처인데요, 뭘.^^a"
맨발의 교사가 불쌍하셨나 보다.^^a
한참 동안 민☆와 어머님과 셋이서 신나게 수다를 떨며, 민☆의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보며 아는 녀석들을 찾아서 보면서 깔깔대다가 민☆를 잠깐 다른 방에 있게 하고선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님은, 이런저런 당신의 어려운 삶을 이야기하시며 눈물을 쏟아내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드리는 것밖엔 없었다. 올해는 유독, 어머니들께서 말씀을 많이 하신다.
그동안 선생님들로부터 상처 받았던 이야기.
자식에게 더 잘해주지 못하신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시는 이야기.
그리고, 당신들의 삶의 이야기...
들어드리고, 고개를 끄덕여드리면서도 한 편으론 죄스런 맘이 든다.
‘이렇게 교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신들보다 한참이나 어린 내게 당신들의 부끄러운 속내까지 드러내시며 눈물 흘리시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되나.’
집을 나서는데, 어머님께서 눈물을 훔치시며 배웅하시면서 말씀하신다.
“선생님~! 집도 가깝고, 언제 한 번 같이 삼겹살 한 번 구워 먹죠~”
“네, 어머니~!^^”
인사를 하며 걸어오는데, 뒤를 돌아보니 아직도 들어가지 않으시고 서 계신 모습이 눈에 띈다.
이렇게. 올해의 가정방문을 마쳤다.
올해는 가정방문을 하면서 참 많이 운 것 같다.
너무 지치고 힘든 상태로 가정방문을 마치고 지역모임에 갔다가 괜히 그 따스함에 녹아서 울고.
또 때로는 녀석들의 삶의 버거움이 마음 아파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울고.
또 때로는, 몸이 지쳐 힘들어하면서 마음까지 지쳐가는 나를 보고, 나의 연약함과 작음에 부끄러워서 울고.
어떤 날은, 가슴은 먹먹해서, 울어야 맘이라도 시원해질 것 같은데 눈물조차 나지 않고 아이들 얼굴만 눈앞에 뱅뱅 돌아 생각을 놓은 채 멍 하게 앉아있기도 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녀석들 속으로 더 깊이깊이 들어갈 시간.
많이 알수록. 아니 , 아직도 많이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대 일로. 각 가정의 귀한 아들 딸인 녀석들과 만났던 이 시간들을 결코 잊지 않고.
녀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p.s
# 에피소드 1
가정방문을 그렇게 하기 싫다던 소☆이. 가정방문을 마치고 나니, 이렇게 물었다.
“쌤, 이제 가정방문 안 해요?”
“너희 집은 했잖아.”
“그러지 말고요... 41명 끝나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다시 또 해요. 일 년 내내..”
“헉!”
'헉. 나보고 죽으란 소리냐.(ㅠ.ㅠ)''
# 에피소드 2
수업시간에 엄청 더러운(?) 이야기를 들려준 써니쌤.
보☆이네 갔더니 보☆이 어머니께서 인사하시고 하신 첫 말씀.
“선생님! 보☆이가 선생님이 들려주셨다고 와서 더러운(?) 이야기를 해주는데 배꼽 빠졌어요!”
‘이걸 그대로 믿어야 할지... 핀잔인지...ㅠ.ㅠ“
# 에피소드 3.
민☆네 갔더니, 민☆ 어머니 왈,
“어머나! 선생님! 민☆가 선생님 다리가 너무 얇다더니, 정말 그렇네요~!”
ㅠ.,ㅠ 이걸.. 감사하다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해야 하나.. 결국은 우물쭈물...
2006.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