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선생

by 친절한 햇살씨

점심을 교실에서 먹고, 급식 당번에게 뒷정리를 잘하라고 일러 놓고, 교무실에 와서 모둠 일기에 답글을 달고 나니 5교시 시작종이 울렸다.


5교시 수업이 우리 반이었다.


수업을 들어갔는데, 교탁 위엔 김이 들어 있던 빈 상자와 집게가 놓여있고 , 책장 위엔 식판이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 발 밑으로는 까만 김이 바람에 날리고 있고, 종이조각도 여기저기 뒹구는 데다가, 심지어 숟가락과 젓가락도 굴러다니고 있었다. 거기에다 쓰레기통은 엎어져서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이렇게 엉망인 교실을 보는 순간 화가 났다.


그렇게 잔소리를 많이 했건만, 뒷정리는 하지도 않고, 쓰레기도 내가 줍지 않으면 절대 줍지 않는 녀석들의 모습이 너무나 이기적으로 느껴지면서 서운하고 화가 났다.


급식당번인 녀석을 불러서 교탁 위를 치우게 하고, 나는 식판을 밖으로 내놓고선, 빗자루를 들고 날아다니는 김 조각과 종이들을 치우고 쓰레기통을 세우고 뒷정리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수업할 준비는 전혀 하지 않고 교실이 떠나갈 정도로 시끄럽게 이야기하면서 떠들어댔다.


빗자루로 교실을 쓸면서, 자꾸만 콧등이 시큰해졌다.


내가 직접 교실을 쓸고, 쓰레기를 줍는 것은, 녀석들이 나를 보고 스스로 정리하고 치울 줄 알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는데 녀석들은 내가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여기고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 내가 아무래도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 내가 어리석게 느껴지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얘들아~!
조용히 하고 수업 준비 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도, 녀석들은 도통 조용해질 생각이 없었다. 너무 화가 났다.


빗자루를 청소함에 집어넣고, 아이들 앞에 섰다.



다 눈 감어.


어떤 녀석이 소곤거렸다.


쌤, 진짜로 화나셨나 봐!


누가 눈 뜨고 있니?
얼른 눈 감아!



아이들을 눈을 감게 한 후에, 나는 잔소리를 시작했다.


왜 자기 편한 것만 생각하느냐, 자기 일을 왜 미루느냐부터 시작해서, 공부는 왜 하느냐, 도대체 꿈이 있느냐, 살아가는 이유는 알고 사느냐....


한참 동안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는데, 녀석들이 너무나 진지하고 엄숙해졌다.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꼭 이 녀석들을 혼내야겠단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한참 이야기하다 보니, 너무 엄숙하게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녀석들을 보니, 갑자기 녀석들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나라도 녀석들에게 웃음을 주고 기쁨을 줘야 하는데... 내가 지금 왜 이렇게 녀석들을 힘들게 하고 있나. 평소처럼 그냥 웃으면서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갑자기 후회가 되었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창밖을 보고 있는데, 눈물이 울컥한다.

녀석들에게 이제 눈을 뜨라는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녀석들의 눈을 바로 볼 수가 없을 것만 같았고, 이렇게 화를 내놓고 나서 수업을 할 자신이 없었다.



“모두 그냥 엎드려 자!


이렇게 이야기하고선, 혹시라도 붉어진 내 눈시울을 한 녀석이라도 보게 될까 봐 교실 뒤쪽에 있는 사물함 쪽으로 갔다.


그리고 이면지를 하나 찾아서, 나의 감정 상태를 써 내려갔다.


모두 엎드려서 그냥 자라고 했음에도 녀석들이 소곤소곤 거리는 것이 들렸다.


그러더니, 한 녀석이 불쑥 이야기했다.



쌤 , 죄송해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녀석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쌔앰!
정말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내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조심스럽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데, 사실, 녀석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더 어쩔 줄 모르겠는데, 녀석들이 잘못했다고 소리를 지르는 순간, 내 눈에서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눈물로 얼룩 진 내 추한 얼굴을 녀석들이 다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계속 눈물이 쏟아지고 거기에 콧물까지 나오는 바람에 더 이상 교실에 있을 수가 없어 교무실로 내려왔다.


교무실에 내려오니, 부장님과 수학샘은 놀라셨을 텐데도 모르는 척하시면서 계속 일을 하셨다.

조금 있다가 재종이 녀석이 내려왔다.


쌤..죄송해요!
얼른 오세요.


내가 녀석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손짓으로 올라가라는 것만 표시하자 , 수학 샘이 대신 말씀하셨다.



얼른 올라가 있어~짜샤~!


6교시 수업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6교시 수업이 없었다.


그래서 녀석들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4반! 얘들아! 너희들에게 화를 내서, 먼저는 미안하구나. 되도록 화내지 않고 즐겁게 1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오늘은 선생님도 더 참을 수가 없더구나~~~.”


주저리주저리, 녀석들에게 편지를 써서, 36장을 복사해서 준비해 두었다.


종례를 들어갈 자신이 도저히 없었기에, 반장을 내려오라고 시켰다.


“반장!
이거 애들 한 장씩 나누어 주고,
모둠 일기도 나누어 주고,
청소 확실히 하고,
문단속 잘 하자.


반장은 죄송하단 말을 계속하면서 올라갔다.


나는 헤드셋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수행평가를 채점하고 있었다. 청소를 하고 이미 집에 갔어야 할 녀석들 몇몇이 밖에서 얼쩡거리는 것이 보였다.



얼른 집에 안 가고 뭐해?


녀석들은 죄송하단 말을 하면서, 교실에 한 번만 올라와 달라고 했다.



아냐.. 얼른 집에 가..
쌤 할 일 많아.

잠시 뒤엔 나와 함께 지☆가 오더니 편지를 손에 쥐어 주고선 돌아갔다.


수행평가 채점을 계속하고 있는데,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쌤..
제발 한 번만 교실에 올라가요.


아냐.. 바빠..
얼른 집에 가..


쌤..의자채로 샘을 들고
올라가는 수가 있어요.


광☆이와 기☆이 녀석은 내 의자를 들 기세를 하고 있고, 종☆이와 보☆를 비롯한 여학생들은 힘 좀 쓰라고 옆에서 난리였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화장실로 도망가려는데, 기☆이가 나를 잡더니 교실로 올라가도록 잡아끌었다. 힘이 어찌나 세던지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힘없이 끌려가는 것을 보고, 녀석들은 깔깔대면서 웃어댔다.


내가 따라 웃자, 호☆이 녀석 왈,


쌤! 웃으세요.
쌤은 웃으시는 게 예뻐요.


갑자기 마음이 찡 해져왔다.


‘그래.. 내가 먼저 녀석들에게 웃어줘야 하는데...’


교실에 올라갔더니, 책상 위에 떡볶이 , 김밥, 쫄면 등을 올려 둔 채 다른 녀석들도 기다리고 있었다.


쌤~! 죄송해요..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내가 괜히 녀석들을 신경 쓰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녀석들에게 더 미안해졌다.


누가 이런 걸 준비했어?


쌤! 그냥 얼른 드세요.


내가 젓가락을 들자, 녀석들이 말했다.



"쌤..먹을 땐, 기도 하셔야죠.


그래. 각자 기도 해.


그런 게 어딨어요~!
쌤이 기도 해주셔야죠.


아냐.. 그냥 먹어~!



쑥스럽게 기도를 해달라는 녀석들.


쌤~! 저하고 종☆이하고 보☆는 불교예요.
그래도 오늘은 특별히 기도해야 해요.
그러니깐 쌤이 기도해주세요.




광☆이 녀석의 말에,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근데, 기도를 하면 아무래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마지막까지 버텼다.


그냥 각자 먹자.

안 돼요.
절대 그럴 순 없어요.
기도해주세요.


녀석들이 끝까지 우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


근데, 도저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계속 눈물이 났다.


녀석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쌤! 기도 끝까지 하셔야죠~!


내가 계속 울자 녀석들은 진지하게 다시 기도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사랑스러운 4반과 만나게 하심에.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우리의 만남 가운데 함께 하시고,
3학년 마칠 때까지 늘 건강하고 ,
행복하고,
모두가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는
귀한 시간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아멘”을 하는 순간,

녀석들은 모두 교실이 떠나갈 정도로 큰 소리로 “아멘”을 외쳤다.


바보같이 눈물은 계속 흘러내리는데, 녀석들은 내가 먼저 젓가락질을 시작해야 자기네들도 먹을 수 있다면서 빨리 젓가락을 들라고 아우성이었다.


내가 눈물을 멈추지 못하자 옆에 있던 광한이 녀석이 들고 있던 쭈쭈바(?)를 보여주면서


쌔앰! 젤로 좋아요!


라고 말하며 웃었다.


쭈쭈바를 보니, 정말 이름이 “젤로 좋아”였다.


‘나도 너네들이 [젤로 좋아]’


녀석들. 너무나 사랑스러운 녀석들.


‘이렇게 부족한 교사에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 붙여주시고, 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하셔서 너무 감사하다.’


자꾸만. 생각할수록 자꾸만 , 눈물이 난다.


“선생님. 죄송해요.”라는 문자가 들어오니, 녀석들에게 더더욱 미안해진다.


나는 정말 바보 선생이다.


아이들은 늘 순수한 그대로의 모습인데, 내 마음과 내 상태에 따라 아이들을 다르게 보는...

나는 정말 바보 선생이다.


이렇게 바보 같은 선생님을 , 선생님이라고 걱정하고 사랑해주는 녀석들이 있음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되는 하루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머릿속에선 녀석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내일부턴 더 마음껏, 더 열심히 사랑해야겠다.



2005.06.16